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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역사 속에 나타난 이단들노만콘 <천년왕국 운동사>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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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2.22  09:5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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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들은 비단 한국 땅에만 활동하는 게 아니다. 중세 역사속에서도 한시대를 풍미했던 수많은 거짓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들이 있어 왔다. 그들의 특징을 노만 콘이 천년왕국 운동사에 잘 설명해놨다. 몬타너스(150년 경)부터 이사야 쉔베(1870~1935년)까지 자신을 재림주, 메시아, 예수의 대행자로 포장하며 교인들을 미혹했던 역사를 요약했다. 그렇다. 이 요약판을 보면 21세기 한국 현대사의 언저리에 나타난 이단들이 전혀 과거의 거짓 선지자들과 다른 점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속을까? [편집자주] 

몬타너스
활동시기: 150년~170년

몬타너스라는 사람이 스스로를 거룩한 영의 화신, 즉 제 4복음서에서 장차 일어날 일을 계시해 준 것이 ‘진리의 영’이라고 선언하였다. 그러자 많은 열광적 신자들이 그 사람 주위로 모여 들었는데,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환상의 체험을 하였다. 그들은 그 환상을 하느님이 보여주시는 것이라고 확신하였으며, 심지어 그러한 환상의 체험을 ‘제 3의 성서’라고 부르기까지 하였다. 그들이 본 환상의 주제는 하느님 나라의 임박한 도래였다. 새예루살렘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프리기아 지방에 임할 것이며, 그리하여 이 도시는 성도들이 거처하는 집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몬타누스 주의자들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프리기아로 모이게 했으며, 그곳에서 금식과 기도와 뼈를 깎는 참회 가운데서 재림을 기다렸다.”(노만 콘/ 김승환 역, <천년왕국운동사>, 한국신학연구소, 1993년, 27페이지).

몬타너스는 새로운 계시를 받았다며 마치 하나님의 영이 직접 그에게 음성을 들려 주고 그는 그것을 그대로 받아서 말하는 방식으로 기독교인들을 미혹했던 사람이다. 특히 그의 어법의 특징은 ‘일인칭의 표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즉 “내가 하나님께서 너에게 금식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을 들었다”는 3인칭 표현이 아니었다. 일인칭, “얘야, 너는 지금부터 금식해야 한다”는 식으로 하나님이 직접 말하는 특징을 보였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몬타너스는 큐렐이라는 여신의 사제 출신이었다고 한다. 이교 출신자였던 만큼 ‘황홀경’, 신접하는 습성을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도 버리지 못한 듯하다. 황홀경, 즉 영적 체험을 추구했고 그러다 직접 받은 것이 ‘그리스도의 재림’이었다. 아마도 그와 함께 했던 브리스길라와 맥시밀라라고 하는 여성 영매들도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한 영적 체험을 분명히 했을 것이다. 특정 장소도 지명했다. 페푸자(지금의 터키의 한 지역)라는 작은 촌락 들판에 그리스도가 재림하며 새예루살렘이 임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들은 엄격한 금욕주의를 표방했고, 재림을 맞을 준비에 불필요한 것들은 버리기 시작했다. 몬타너스파의 예언을 듣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는데 아내와 자녀와 가산과 소유물을 다 버리고 촌락으로 들어와 황홀경에 들어가는 체험을 추구했고, 엄격한 금욕생활을 했다.

유랑 설교자들
1)사도적 삶을 가르치는 유랑 설교자들이 기독교초기에 다수 등장했다. 설교자들은 자신을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예언자, 메시아, 심지어는 생육한 신이라고 주장했다.
2)이들의 활동에는 공통적인 패턴이 나타난다. 기도에 집중하는 은둔생활 -> 치유, 예언 등의 초자연적인 은사를 받았다고 주장함 -> 유랑생활을 하면서 설교와 기적을 행함 -> 추종자들 위에 신적인 존재로 군림함
3)유랑 설교자들은 자신을 메시아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들은 추종자들을 자신을 섬기는 교회로 조직했다. 추종자의 일부는 자신들의 메시아를 지키고, 종파를 퍼트리기 위한 무장된 군인조직이 되었다.
4)유랑설교자들을 따랐던 추종자들은 대부분 그 사회의 최하위층 계급의 사람들이었다. 가난한 농민, 어부들이었다. 그러나 드물게 대귀족이나 부유한 시민의 지지를 얻은 설교자들도 있었다.

익명의 ‘그리스도’(실명은 알 수 없음, ‘Christ’ 자칭) [천년왕국운동사 49-50p]
활동시기 : 6세기
특징 및 주장 :

프랑크 부뤼즈(Bourges) 출신의 한 남자는 은둔생활을 하다가 초자연적인 은사를 받았으며,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라고 칭하면서 유랑생활을 했다. 그는 회중에게 자기를 향해 절하도록 명령하면서 숭배받기 위해 군림했다. 그에게는 ‘마리아’라고 부르는 여자 동료가 따라다녔다. 자칭 ‘그리스도’라고 하는 이 인물은 미래의 일을 예언하고, 병을 고치는 등의 권능을 행해서 추종자들을 모았다. 추종자들을 무장부대로 훈련시키고 유랑하면서 여행자들을 습격하여 재물을 약탈했다. 그는 르 푸이(Le Puy)라는 지역에서 주교였던 아우렐리우스(Aurelius)에게 목 잘림을 당하고 죽었다. 그의 동료 ‘마리아’는 체포되었고, 추종자들은 흩어졌다.

알데베르(Aldebert) [천년왕국운동사 51-53, 61p]
활동시기 : 740년대(8세기)
특징 및 주장 :

알데베르는 비천한 가문 출신이다. 지역의 주교가 그가 설교하는 것을 금지했음에도, 스스로 ‘안수 받은 성직자’라고 했다. 알데베르를 따르던 추종자들은 주로 순박한 시골 사람들이었다. 알데베르는 자신이 치유의 기적을 행한다고 주장했다. 나중에는 ‘모태에서부터 거룩한 존재’, ‘살아있는 성자’라고 자처했다. 그리고 자기를 섬기는 사람에게 특별한 은사를 나누어줄 수 있다며 자기에게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알데베르의 영향력은 상당했다. 많은 사람이 성직자로서의 직무를 포기하고 그의 말을 듣기 위해 모였고, 많은 여성들이 그를 따랐다. 알데베르는 자신의 손톱과 머리카락을 추종자들에게 나눠주었다. 추종자들은 알데베르가 나눠준 손톱 조각과 머리털을 기적을 일으키는 부적으로 생각했다. 알데베르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자 당시 교회에서는 그를 심각한 위협으로 인식했다. 744년에 알데베르는 교회로부터 성직을 박탈당하고 감금당했다. 그러나 그는 탈출에 성공해 설교를 계속했다. 교회는 또다시 회의를 열었고 알데베르는 파면을 당했으며, ‘정신이상자’로 평가받았다. 746년까지 유랑 설교를 하다 얼마 안 있다가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은둔자 베드로(Peter the Hermit) [천년왕국운동사 77-78p]
활동시기: 1차 십자군 전쟁 무렵(1085-1090년대)

프랑스 아미앵(Amiens) 근처에서 태어난 베드로는 처음에 수도사로서의 삶을 시작하다 나중에는 은둔자로 생활하며 금욕적인 삶을 살았다. 그는 십자군을 설교하던 예언자였다. 그는 체구는 작았지만 사람을 압도하는 외모와 탁월한 언변을 소유해 사람을 끌어들였다. 베드로는 사람들에게 거의 반쯤 신과 같은 존재였고, 그의 추종자들은 그를 거역할 수 없게끔 사로잡혔다. 사람들은 그를 메시아라고 생각해서 그가 타고 있던 나귀의 털을 뽑아 거룩한 물건으로 삼으려 했다. 베드로는 편지를 소유했는데, 그 편지는 그리스도가 자신에게 나타나서 십자군을 소집하라고 건넨 위임편지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는 사람들을 선동해서 십자군을 조성했고, 사람들은 소유물을 다 팔아 그를 따랐다. 1096년에 베드로는 조직된 군중들을 데리고 프랑스에서 독일로 건너갔다.

에미코(Emico) [천년왕국운동사 92-93p]
활동시기: ?-1117년
특징 및 주장 :

다른 이름으로 에머리히(Emmerich)라고도 하는 그는 백작이자 난폭하기로 유명한 봉건영주였다. 추종자들에게 자신이 ‘종말의 날의 황제’라고 주장했다. 그는 하나님이 보여준 환상과 묵시에 이끌려 십자군에 참여하게 되었다고도 했다. 에미코의 주장에 따르면, 어느 날 그리스도의 사자가 자신에게 찾아와 몸에 문신을 새겼다고 한다. 이 문신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증표의 의미였고, 견갑골 위 혹은 그 사이에 십자가를 새기는 형태였다. 에미코는 이 표적이 그리스도가 친히 자신을 승리로 인도하고 때가 되면 그에게 왕관을 씌워줄 것이라는 예언의 보증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에미코의 십자군 원정은 헝가리인들에게 패배하며 허무하게 끝났다. 에미코는 1117년에 살해되었다.

에온(Eon) [천년왕국운동사 53-57p]
활동시기: 1145년경(11세기)
특징 및 주장:
브리타뉴(Brittany) 지역에서 ‘그리스도’로 활동했다. 정확한 이름이나 신분은 알 수 없다. 에온, 아이스, 에운, 에온스 등으로 다양하게 불린다. 그는 안수 받은 성직자가 아니었지만, 성직자만이 행할 수 있는 여러 특전들을 그래도 사용했다.
사도적 삶을 강조했던 에온은 금세 추종자들을 끌어들였고, 새로운 교회를 세우기에 이르렀다. 에온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불렀다. 그의 주변에는 많은 빈민들이 몰려들었다. 당시에는 가난이 지극히 극심할 때였다. 그의 추종자들은 대체로 약탈을 하며 생활을 유지했다.
에온의 영향력은 대주교가 무장한 군대를 파송할 만큼 대단했다. 에온은 자신을 가리켜 ‘물로써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기로 된 자’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1148년에 그는 죄인의 신분으로 감옥에 갇혔고, 극소량의 물과 음식으로 연명하다 결국 죽었다. 에온의 제자들은 함께 체포되었고, 에온의 가르침을 끝까지 부인하지 않다가 완고한 이단자란 죄목으로 화형 당했다.


탄켈름(Tanchelm of Antwerp) [천년왕국운동사 57-63p]
활동시기 : 12세기
특징 및 주장 :

탄켈름은 당시 성직자들의 전유물이었던 문자해독능력을 갖추고 있었고, 언변이 유창했다. 그는 1112년부터 유랑설교자로 활약했다. 야외에서 수도사의 옷을 입고 설교를 했는데, 수많은 군중들은 그의 뛰어난 언변을 들으며 마치 주의 천사가 하는 말을 듣는 것처럼 느꼈다고 한다. 탄켈름은 사람들이 교회와 세속적 봉건 영주들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활동했다. 그는 첩을 두는 타락한 성직자와 가톨릭교회 전체를 비판했다. ‘타락한 성직자가 집행하는 성찬식은 무효한 것이며, 교회는 거룩한 질서를 상실한 매음굴과 같다’고 설교했다. 따라서 사람들은 성찬식을 하지 않고, 십일조 내기를 멈추고, 교회도 가지 않기 시작했다. 탄켈름은 교회를 경멸하는 사람을 더욱 거룩한 자라고 추켜세웠다.
세력을 확장한 탄켈름은 자신들이 진정한 교회라고 믿었던 추종자들 위에 왕같이 군림했다.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와 동일하고, 성령을 소유하고 있는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면서 스스로를 신적 존재로 우상화했다. 호위대를 만들었고, 온갖 수단을 써서 주변의 넓은 지역을 지배했다. 이후 탄켈름은 1115년경 성직자에 의해 피살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요아힘(Joachim of Fiore, 1145-1202) [천년왕국운동사 140-143p]
활동시기 : 12세기 말-13세기 초
특징 및 주장 :

요아힘은 칼라브리아(Calabria)란 지역 출신의 대수도원장이자 수도사였다. 그는 오랜 기간 동안 성서 연구에 몰두했는데, 1190-1195년 사이에 새로운 예언체계를 창시했다. 이 예언체계는 새로운 유형의 천년왕국론을 제기한 것으로, 마르크스주의가 출현하기 전까지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예언체계가 되었다. 그의 예언체계에서 새로운 점은 성경해석에서 도덕적 혹은 교리적 목적을 위한 것도 있지만, 역사의 발전을 이해하고 장차 있을 미래를 예언하는 수단으로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요아힘은 성서해석에서 역사가 세 개의 연속적인 단계를 거쳐 진행된다고 해석했다. 그가 말한 세 단계는 하나님의 삼위 위격이 각각 통치하는 시대를 말하는데, 제1시대는 성부의 시대(혹은 율법의 시대), 제2시대는 성자의 시대, 세3시대는 성령의 시대라는 것이다. 좀 더 풀어서 말하면 첫 번째 시대는 공포와 예속의 시대이고, 두 번째 시대는 신앙과 성자에게 복종하는 시대이며, 세 번째 시대는 만인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지식이 직접 계시되는 기쁨과 자유의 시대이다. 특히 제3시대에 대해서 ‘세계는 광활한 수도원이 되고, 만인이 신비한 황홀경을 경험하면서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는 명상가가 된다’고 주장했다.
그의 철학은 후대에 가서는 반(反)교회적으로, 세속적인 의미로 새롭게 체계화 되었다. 그의 사상은 장기간에 걸쳐 영향을 미쳤고, 특히 관념철학자 피히테(Fichte), 철학자 헤겔, 마르크스주의적 유물변증법 등 교회의 반대를 받았던 역사철학 분야에서 나타났다.

●요아힘의 종말론
요아힘의 역사관에 따르면 매 시대는 그보다 앞서서 변화를 준비하는 기간(부란기, Period of incubation)이 있다고 한다. 그는 제1시대의 부란기는 아담-아브라함까지, 제2시대는 엘리야-그리스도까지, 제3시대는 성 베네딕트-요아힘의 저작까지라고 했다. 성경에서 마태는 아브라함부터 예수님까지 42대로 계산을 했는데, 요아힘은 구약성서를 모든 역사흐름의 원형으로 볼 때, 그리스도 탄생부터 제3시대의 성취까지 42세대 동안의 시간이 걸린다고 주장했다. 여기에서 그는 한 세대를 30년으로 잡고, 인류 역사가 완성이 되는 때를 1200년에서 1260년 사이로 보았다. 그리고 완성을 이룰 자는 수도회이며, 제3시대가 완성되기 전 3년 반 동안 적그리스도의 시대가 전개될 것이라고 했다. 또 부패한 교회를 응징하는 세속 군주가 나타나, 교회가 오늘 날처럼 완전히 파괴될 때까지 계속된다고 주장했다. 성령의 시대는 이 적그리스도를 타도한 후에 만개할 것이라고도 했다.

거짓 보드앙 [천년왕국운동사 115-119p]
활동시기 : 1224-1225년
특징 및 주장 :

거짓 보드앙은 걸은 모습을 한 은둔자였다. 행간에서는 콘스탄티노플 황제이자 초인적인 인물이었던 보드앙 백작이 죽지 않고 살아났다는 소문이 돌았고, 본인이 주장했는지 아니면 사람들이 그렇게 불러서 인정한 것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은둔자는 졸지에 보드앙이 되었다. 그는 일 년을 더 숲속에 머무르며 자기를 찾아오는 사람들과 상담하며 비밀결사를 조직했다. 지지자들을 방패로 하면서 자신이 진짜 보드앙이며, 가혹한 형벌을 끝내고 동방에서 귀환했다고 선언했다. 백작이 다스리던 지역으로 돌아온 그는 귀족과 주민들의 환영을 받고 주권을 장악했다. 백작의 딸 요안나가 자신을 사기꾼으로 지목하자, 그를 따랐던 사람들은 요안나를 퇴위시켰고, 이 일을 계기로 거짓 드보앙은 평범한 지도자가 아닌 거룩한 황후가 되었다. 사람들은 그를 경외했기 때문에 그의 머리카락이나 옷자락을 만지기 위해 앞을 다투었으며, 그의 목욕물을 마시기까지 했다. 거짓 드보앙은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 되었고, 프랑스의 왕 루이8세의 초청으로 그를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루이와의 대화에서 진짜 보드앙이 마땅히 알고 있어야 할 사실들을 기억해 내지 못해 가짜임이 들통 났다. 그의 실제 이름은 베르트랑 이었으며, 다른 사람 신세를 하는 농노였다. 그가 처음 백작과 황제라고 선언한 지 7달 만에 교수형에 처해져 죽었다.

※보드앙(Baldwin Ⅸ)은 플랑드르(당시 프랑스에 점령당한 지역)의 백작으로, 1204년에 십자군들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의 황제가 된 인물이다. 그는 지위가 취약했기 때문에 일 년도 채 목 가 불가리아사람들에게 잡혀 죽었다. 기이한 경력을 가지고 있어서 일반 민중에게는 초인적 특성을 가진 인물로 간주되었다.

프레드릭(Barbarossa) [천년왕국운동사 144-150p]
활동시기 : 1220-1250년
특징 및 주장 :

프레드릭 1세의 손자였던 프레드릭 2세는 독일인들의 메시아적 존재로 기대를 모았던 인물이다. 프레드릭 1세는 1190년 십자군 3차 전쟁에서 죽었고, 30년 후 손자가 프레드릭 2세에 올랐다. 프레드릭 2세는 ‘마지막 때의 황제는 미완의 사업을 완성할 것인데, 주님의 재림과 천년왕국을 예배할 구세주로 나타날 것이다’라는 당시 널리 퍼져있던 예언에 딱 들어맞았다. 그는 매우 영리하고 다재다능했으며, 지적인 면과 잔인한 면모를 함께 가지고 있었다. 1229년 십자군 원정을 해서 예루살렘을 재탈환하고 그곳의 왕관을 직접 쓸 정도였으므로 동시대 사람들은 그에게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교회가 타락한 원인이 재산이라고 지적하며, 교회 재산을 몰수하려고 했다. 그리고 교황과 주교들은 예배를 집도할 능력을 상실했으며, 타락한 이단자이므로 그들의 말을 듣지 말라고 명령했다. 대신 진실 되고 완전한 황제 프레드릭과 그의 아들 콘라드에게 기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레드릭은 1250년에 죽었고, 그를 따랐던 많은 사람들에게 그의 죽음은 곧 구세주의 상실이었다. 프레드릭 2세의 사망 후 독일에서는 자신이 부활한 프레드릭이라고 주장하는 사기꾼들이 나타났지만 대개 그들은 가짜임이 발각되는 즉시 처형당했다.

야곱(Jacob) [천년왕국운동사 121-123p]
활동시기 : 1250년대
특징 및 주장 :
야곱은 헝가리 출신으로 ‘헝가리의 도사(master of Hungary)'알려진 사람이다. 그는 배교한 수도사였고 금욕주의자였으며, 프랑스어, 독일어, 라틴어를 할 줄 아는 유창한 언변의 소유자였다. 야곱은 손에 편지를 가지고 다녔는데, 이를 ’동정녀 마리아가 천사들의 무리에 둘러싸여 자기에게 나타나서 건넨 편지‘라고 했다. ‘프랑스 기사들의 오만함과 탈선을 싫어하시는 하나님이 이제는 낮고 천한 자들을 선택하셔서 권능을 나타내보이실 것’이라는 게 편지의 의도라고 주장했다. 그는 편지를 증거로 ’목동부대(Pastoureaux)'란 수천 명에 달하는 군대를 조직했다. 여기에는 도적, 매춘부, 범법자, 살인자, 배교한 수도사 등이 주로 합세했다. 이들은 목동의 옷을 입고, 낫, 단도, 곡괭이 등으로 무장한 채 행군을 했다. 사람들은 이들을 성자들로 존경해서 먹을 것을 공짜로 제공하기도 했으나, 약탈을 해서 음식물을 취하기도 했다.
야곱은 목동부대와 다니며 사제들과 수도회, 로마 교황청을 비난하면서 ‘목동부대’만이 유일한 진리의 구현이라고 말했으며, ‘살아있는 그리스도’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야곱은 환상을 보고, 병든 자를 고칠 수 있다고 했으며, 심지어는 자신이 죄를 면제하는 권리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콘라드 슈미트(Konrad Schmid) [천년왕국운동사 186-190p]
활동시기 : 1360년대
특징 및 주장 :

수도원에 도서관에서 묵시문학 예언에 몰두하던 평신도였던 슈미트는 독일 편타고행 추종자들에게 스스로를 메시아라고 주장했다. 슈미트는 이사야의 예언은 바로 자기의 도래를 언급하는 것이라며 스스로를 신의 화신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튜링기아의 왕(King of Thuringia)'이라는 칭호를 썼다. 이것은 즉, 종말에 올 것으로 예언된 ‘구세주 프레드릭’이라고 주장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슈미트 종파에 입회하기 위해서는 슈미트에게 고해를 한 뒤, 손에 채찍을 맞아야 하며, 그에 대해 절대 순종의 맹세를 해야 했다. 입회한 자들에게 슈미트는 유일한 의무로 메시아인 자신에게 절대 복종할 것을 요구했다. 입회자들은 슈미트에게 기도했으며, 그를 ‘우리 아버지’라고 불렀다. 그리스도가 물을 포도주로 바꾸었듯이 슈미트 종파는 물의 세례를 피의 세례로 행했다. 그리고 하나님이 최후의 때를 위해 준비한 가장 좋은 포도주는 편타고행자들이 흘리는 피라고 믿었다. 이렇게 슈미트는 360년대 편타고행 운동을 지도하다가 박해를 받자 추종자들을 이끌고 독일의 중부 및 남부 도시들에서 비밀결사로 모습을 바꿨다고 한다.

※중세의 편타고행: 심판자인 하나님이 구도자들의 고행을 보고 당신의 매를 거두어 용서를 베풀며, 이 생과 내세에서 그들이 받을 엄청난 징벌을 면해줄 것을 기대하면서 자기자신에게 혹독한 고문을 가하는 행위였다.

자유심령파(The free spirit) [천년왕국운동사 194-200, 209-210p]
시기 : 13세기부터 약 18세기
특징 및 주장 :

1200년경 등장한 서구 그리스도교 세계의 한 이단이다. 박해에 시달리면서도 약 5세기동안 전통을 세우면서 존속했다. 영적자유파(Spiritual Liberty)라고도 하는 자유심령파는 11세기 서구에서 흥왕했던 신비주의의 한 변형으로 볼 수 있다. 신비주의는 신에 대한 이해, 신과의 직접적인 친교에 대한 갈망에서 생겨났으며, 직관적 경험, 의식을 통해 신과 만나는 것을 강조했다. 자유심령파는 얼룩덜룩한 옷을 입는 것과 같이, 12세기 스페인의 이슬람 수피 교도들의 특징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다. 또한 그들은 매우 주관적이었고, 그들 자신의 경험 이외에는 일체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자유심령파의 핵심은 ‘자신이 완전에 도달했기 때문에 자신은 죄를 범할 수 없다’고 믿는 것이었다. 그들은 도덕을 거부했다. 일반인에게 금지된 범죄를 하든지 상관없이 자신들이 완전한 인간이기 때문에 그 행위는 용서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자유심령파의 도사들은 기적능력을 갖추게 하는 금욕주의, 뛰어난 웅변술, 풍채로 신도들의 존경을 받았다.

아모리파교도 [천년왕국운동사 200-205p]
활동시기 : 13세기 초
특징 및 주장 :

13세기 초, 자유심령파의 교리는 포괄적인 신학, 철학적 체계로 만들어졌는데 그렇게 나타나게 된 것이 ‘아모리파’이다.
아모리파에서 철학적으로 지식이 있던 인물은 베네의 아모리(Amaury of Bene)라는 사람이다. 그는 파리대학교에서 논리학과 신학을 가르치던 유능한 강사였다. 그는 잘못된 교리를 가르친다는 죄목으로 고발되어 교황에게 유죄선고를 받았고, 공개적인 전향성명을 해야 했다. 그 충격으로 그는 1206년 아니면 1207년에 죽었다. 후에 아모리가 속해 있던 이단종파는 성직자들로부터 ‘아모리파’라고 불리게 되었다. 아모리 교리에 대해 알려진 것은 신플라톤주의 해석서에 영향을 받은 신비주의적 범신론이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만물은 하나이다. 왜냐하면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신이기 때문이다’라고 고백했다. 아모리파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은 자신은 신이기 때문에 아무리 고문을 해도 고통스럽지 않으며 불에 타지도 않는다고 주장했다.
아모리파는 또한 자신들을 통해서 사람들이 점점 영적인 존재가 되어 스스로 하나님이라고 말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로 상층 계급의 여성들, 특히 미혼여성과 과부들이 그들을 따랐고, 자유심령파의 이단운동에 큰 역할을 했다.


윌렘 코넬리스(Willem Cornelis) [천년왕국운동사 207p]
활동시기 : 1230년경 이후

12세기 이단 유랑설교자였던 탄켈름의 영향을 받은 인물로, 자유심령파의 핵심인 ‘도덕불요론(도덕이 있을 이유도, 지킬 필요도 없다)’과 ‘가난 예찬(가난함을 추구하고 따르는 것)’을 결합시킨 이단종파를 창시한 사람이다. 그는 청빈을 올바로 준수하면 모든 죄가 사라진다고 선언했다. 이런 전제라면 예를 들어 가난한 사람은 간음을 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코넬리스 자신은 완전히 탐욕스러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빈자회(the Society of the poor) [천년왕국운동사 229-230p]
활동시기: 1300년대

신비주의 남녀이단자로, 일반인들에게 투르루핀(Turlupins)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투르루핀’이라는 이름은 보통 ‘자유심령파 형제단(자유심령파 계열의 전도 집단)’에게만 붙여진 이름이었는데, 칭호가 그렇게 붙은 걸로 봐서 자유심령파가 14세기 말과 15세기 초에 북부 프랑스에서 주목을 끌었으며, 빈자회도 그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지도자는 쟌느 다벤톤(Jeanne Dabenton)이라는 여자였다. 그녀는 이단으로 간주되어 화형에 처해졌고, 그녀가 쓴 저술과 추종자들의 특수한 의복도 불에 태워졌다.

베트파(the Beghards) [천년왕국운동사 208-209p]
활동시기 : 13세기 말 이후
특징 및 주장 :

자유심령파에서 나온 한 종파로 13세기 말 경부터 중세가 끝날 때까지 자유심령파에서 추구하는 교리들을 전파했다. 이들은 평신도로 이루어진 탁발수도회를 조직했다. 회원들은 탁발을 했고, 청빈을 추구했으며, 수도사 복장과 비슷하지만 다른 특색을 가진 옷을 입었다. 무리를 지어 시끄럽게 거리를 돌아다니며 동냥을 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빵을!’이라는 독특한 문구로 구걸을 했다. 베트파의 행적은 자세히 알려진 것이 없지만 순례수도사들처럼 이곳저곳을 순례했다고 전해진다. 이들은 안락한 생활을 하는 수도사들을 경멸했고, 교회 예배를 방해했다.

블뢰마르딘(Bloemardinne) [천년왕국운동사 228p]
활동시기 : 14세기 말
상인의 딸이었고, 다른 이름으로는 ‘하일비야츠 블로마르트’라고 불렸다. 그녀는 독일 브뤼셀에서 ‘살아있는 성자’라는 권위를 획득했다. 그녀의 추종자들은 신분이 높은 귀족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범위가 다양했다. 볼뢰마르딘은 일종의 신비주의적 교리를 가르쳤고 1335년에 사망했다. 그녀의 추종자들은 그녀의 몸을 만지면 치유의 기적이 일어난다고 믿었다.

영지인(英知人) [천년왕국운동사 229p]
활동시기 : 1411년 전후
1400년대 조직되었던 신비주의 계열의 비밀결사이다. 원래 ‘영지인’이라는 말은 중세 신비주의 용어로, 신비한 영적 체험을 가능하게 하는 영혼의 최고능력을 의미한다. 상헤르스(Sanghers) 혹은 아에기디우스 드 레우베(Aegidius de Leeuwe)라 불리는 한 평신도가 경험한 계시의 결과로 창설되었다. 영지인 가운데에는 다수의 여성이 포함되어 있었다.

로이 프리스팅크(Loy Pruystinck) [천년왕국운동사 230-231p]
활동시기 : 1525-1544년
안트워프 지역의 젊은 슬레이트 직공이었던 그는 영적 자유(Spritual Liberty)라는 교리를 가르치며 추종자들을 모집했다. ‘영적 자유 교리’는 과거 자유심령파의 교리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이었다. 종교개혁을 했던 루터는 프리스팅크가 거짓 예언자라고 경고했고, 가톨릭 종교재판소는 이들이 벌이는 운동을 저지하려고 했지만 1530년에 심각한 역병이 돌면서 오히려 새신자가 늘어났다. 이 종파의 주요 구성원은 도적, 걸인, 매춘부였다. 그러나 부유한 상인들, 보석세공업자 같은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1544년 세속 당국이 프리스팅크 종파를 없애려 했을 때 이미 여러 지역에 퍼져있었다. 결국에 프리스팅크는 불 위에서 처형당했고, 그의 제자들 중 5명은 단두되었으며, 나머지는 영국으로 도주했다.

크윈티니스트파(Quintinists) [천년왕국운동사 231-232p]
활동시기 : 1500년대
중세 자유심령파 형제단의 무정부주의를 따랐던 이단 종파로, 창설자는 재봉사 출신의 크윈틴(Quintin)이다. 다른 이단 종파인 프리스팅크와 거의 같은 시기에 활동했다. 칼빈은 이들을 ‘영적 자유주의자들’이라고 불렀다. 1535년 크윈틴은 다른 재봉사와 배교한 성직자와 함께 파리로 이주했다. 파리에서 크윈틴과 그의 제자들은 비밀 설교와 소책자로 포교활동을 벌였고, 1만 명 가까이가 그들을 따랐다. 그는 ‘그리스도교 신비가’라 불리며 파리의 많은 귀부인들을 유혹하다가 심문을 받고 화형에 처해졌다.

니콜라스(Nicholas of Basle) [천년왕국운동사 247p]
활동시기: 알 수 없음
자유심령파의 이단 사설을 가지고 포교했으며, 스스로를 ‘새로운 그리스도’라고 주장했다. 1939년 이단자로 화형당한 그의 제자 마르틴의 말에 따르면, 니콜라스는 ‘구원에 이르는 길은 스승인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니콜라스는 엄청난 권위를 가졌다. 사도들조차도 해석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복음서를 해석할 수 있으며, 사제를 임명할 수 있는 권리도 자기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니콜라스의 명령을 따르면 죄를 범할 수 없다고 믿었다. 만약 그가 명령한 것이라면 간음이나 살인을 행한다 해도 죄의식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 유일한 죄는 그의 말에 불복종하고 그를 부인하는 것이었다.

카포크라테스타(Carpocratians) [천년왕국운동사 258p]
활동시기 : (?)

『정의에 관하여』(On Justice)fk 불리는 그리스어로 된 논문의 저자가 이 종파의 창설자라고 알려져 있다. 영지주의자가 논문을 썼다고 딱 잘라 말 할 수는 없지만,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은 이단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혜택을 제공하는 태양을 모델로 하여 절대평등의 교리를 내세우는 것이 특징이다. 종파의 창설자가 쓴 논문에서 ‘신’은 ‘평등의 공동체’를 의미한다. 신의 섭리에 따라 태양은 신분이나 선악의 차별 없이 똑같이 빛을 비추고, 아무도 자기 몫 이상을 소유할 수 없으며 이웃의 것을 빼앗을 수도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신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사물을 볼 수 있게 했으며, 똑같이 공평하게 음식을 먹도록 했다며 절대 평등을 내세웠다.

타보르파(Tabor) [천년왕국운동사 285-290p, 302p]
활동시기 : 15세기
특징 및 주장 :
체코슬로바키아의 종교개혁시기 얀 후스를 추종하던 후스파의 급진파이다.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이단시되었다. 15세기 후스 전쟁 당시 보헤미아에 신앙촌을 형성했는데, 이들은 이곳을 타보르산(Mount Tabor)이라고 칭했다. 본거지였던 타보르산을 따서 타보르파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들은 봉건질서를 완전히 부정했으며, 형제애에 기초해 질서를 유지해 나가는 사회를 형성하고자 했다. 타보르파는 그리스도의 천년왕국이 도래할 것이며, 질병과 죽음도 존재하지 않는, 일체의 율법과 강압에서 해방된 세상이 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매우 급진적이어서 교회의 부패한 것들이라고 판단되는 것들을 거부했다. 그들은 죄인에 대해서는 결코 어떠한 동정도 해서는 안 된다고 선언했고, 탐욕과 사치는 사형을 받아 마땅한 죄목이라고 강조했다. 타보르파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이었던 일부는 ‘진리를 해방시키고 죄인들을 응징하지 않는데 적극적으로 돕지 않는 사람들은 적그리스도의 졸개’라며, 지금은 복수를 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1434년에 타보르파는 리판(Lipan) 전투에서 패배하여 거의 전멸했고, 힘이 급속히 약해졌다. 그들을 진압한 것은 가톨릭 군대가 아니라 온건 후스파(우트라퀴스트)였다. 이후 타보르파의 전통은 ‘보헤미야 형제단’과 ‘모라비아 형제단’에 유일하게 전승되었다.

한스 뵘(Hans Bohm) [천년왕국운동사 307-316p]
활동시기 : 1476년 이후
특징 및 주장 :

독일 타우버 강 유역의 작은 마을 니클라스하우젠(Niklashausen)에서 일어난 민중십자군의 메시아로 칭해졌던 인물이다. 그는 목자였고, 북을 치고 피리를 부는 예인이었다. 그래서 ‘니클라스하우젠의 고수’라고 불렸다. 청년이었던 뵘은 어느 날 니클라스하우젠의 교회 앞에서 자신의 북을 태우고 설교를 했다. 성모 마리아가 하늘의 광채를 입고 나타나 자기에게 막중한 메시지를 주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니클라스하우젠 교회에 있는 성모마리아 상 앞이 세계 구원의 거점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모두 여기로 순례를 와야 하며, 순례를 행하는 사람은 모든 죄를 용서 받고, 그렇지 않으면 벌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처음에 그는 단지 회개를 말할 뿐이었다. 그러나 얼마 후 처음 성모마리아에게서 받은 놀라운 기적의 능력이 바로 자기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하면서, 어떤 영혼이든 자신의 손으로 지옥에서 끌어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성직자의 탐욕과 사치를 강하게 비판했고, 하나님은 성직자들을 버렸다고 가르쳤다.
뵘이 말한 또 하나의 핵심적인 주장은 ‘자연에 근거한 평등주의적 천년왕국이 도래한다’는 것이었다. 만인이 자연을 자유롭게 향유하고 계급과 신분의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똑같은 자유를 누리는 세계가 이룩된다는 것이었다. 그를 따르던 민중들은 뵘을 구세주, 초자연적 보호자, 지도자로 생각했다. 최후에 뵘은 교회 법정에서 이단사설과 마술을 행했다는 죄목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화형 당했다.
그러나 뵘은 사실 니클라스하우젠의 사제에게 이용을 당한 것이었다. 어릴 적부터 그는 바보 취급을 받아왔고, 죽은 날까지 주기도문도 몰랐다고 전해진다. 교회의 사제는 몇 번의 기적이 일어나면 헌금이 걷힌다는 것을 깨닫고 기적을 만들어 내 그 공덕을 뵘에게 돌렸던 것이었다.
16세기에 유럽의 하층민 사이에서 생겨난 급진적인 기독교도. 유아 세례를 받은 자도 다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종교에 대한 국가 간섭을 완강히 반대하였으므로 박해를 받아 북아메리카로 이주하였다.

보헤미아의 아담파(Bohemian Adamites) [천년왕국운동사 288-289p]
활동시기 : 15세기
특징 및 주장 :

피카르티는 피터 카니스(Peter Kanis)라 불리는 사제의 지휘 아래 활동했던 수백 명의 급진주의자, 극단적 무정부주의자 무리로, 피카르티파(Pikarti)고도 불렸다. 이들 안에는 성만찬에 관한 후스카의 사상에 동조하거나 자유심령파 교리를 믿는 극단주의자들도 일부 포함되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보헤미아의 아담파(Bohemian Adamites)’로 유명해졌다. 자신들을 마지막 날의 성도들이라고 일컬으면서 자신들 가운데 하나님이 임재함으로 그리스도보다 우월하다고 믿었다. 그리스도는 죽음으로 스스로가 단지 인간임을 증명했다는 것이다. 그들 안에 하나님이 있기 때문에 성경과, 신조, 성서학습 등을 무시하고 그들만의 기도문을 외우는 것으로 만족해했다. 그들은 천국과 지옥이란 의인과 악인에게 각각 있을 뿐이고, 자신들은 의인이기 때문에 지상 천년왕국의 시민으로 영원히 살 것이라고 주장했다. 1421년 4월 피터 카니스를 포함한 피카르티의 75명은 체포되었고 화형 당했다.
잡히지 않은 피카르피 구성원들은 새로운 지도자를 세우고, 그를 아담 또는 모세로 불렀다. 그 지도자는 장차 세상의 통치를 위임받을 사람으로 생각되었다. 또한 그 안에는 자칭 성모마리아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피카르티의 ‘아담파’는 정절을 지키는 자들은 메시아 왕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면서 자유연애를 추구했다. 또 자신들은 복수의 천사들로서, 모든 불결한 것들을 제거하기 위해 온 세상을 다니며 칼을 휘두르는 것이 사명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인근 마을을 야간에 공격하고 사람들을 죽였다. 특히 성직자들을 성육신한 악마로 여기며 도륙했다. 그러다 1421년 찌즈카라는 지휘관 군대에게 진압되었다.

얀 복켈슨(Jan Bockelson) [천년왕국운동사 364-380p]
활동시기: 1500년대

복켈슨은 재세례파가 뮌스턴에 새 예루살렘을 세워나갈 때 종말론적 메시아로 군림한 인물이다. 재세례파 안에서 또다른 예언자였던 마티스보다 한수 위의 정치적 수완을 발휘해 교도들의 믿음을 얻었다.
1534년에 이웃 도시에 온 대장장이인 두젠츄르란 사람이 예언자를 자처하면서 복켈슨이 새 예루살렘의 왕이라고 하면서 기름을 부었다. 그는 그렇게 왕이 되었고,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구약성서의 예언자들이 예언한 메시아가 바로 자신이라고 주장했다.
1534년 8월 말 복켈슨은 주교의 대공세를 막아냈는데 이때 그의 권위는 최고에 달했다. 그는 자신과 아내 및 친구들에 대해서는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도록 했지만 일반 민중에게는 매우 엄격한 생활을 요구했다. 또한 자신은 세상과 육신에 대해 완전히 죽었기 때문에 사치가 허용된다고 가르쳤다. 또한 그는 진리를 거스르는 자는 누구든지 왕 앞에서 사형을 받도록 했는데, 이때 수많은 여자들이 황당한 이유로 죽었다.
복켈슨은 하나님으로부터 낡은 제도를 새 제도로 대체하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하면서 정신적, 물질적 문제와 전 주민의 생사까지 결정하는 권력을 행사했다. 그는 규율을 마음대로 바꾸었다. 재세례파의 엄격한 성윤리를 일부다처제로 바꿨다. 그리고 새 법을 따르기를 거부하면 사형에 처하도록 했다.
1534년 말 복켈슨이 어마어마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을 때 그를 굴복시키려는 주교와 군대에 포위를 당했고, 뮌스터는 완전히 고립되었다. 뮌스터에는 식량 부족으로 기아가 발생했고, 복켈슨은 하나님이 자갈돌로 빵을 만들어 줄 것이라고 예언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버티다 못해 1535년 뮌스턴에 있다가 가톨릭 세력에 의해 진압됐다.
결국 1536년 복켈슨은 사슬에 묶여 끌려 다니면서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다가 빨갛게 달군 쇠로 고문을 받다 죽었다.

이사야 쉔베(Isaiah Shembe, 1870-1935) [천년왕국운동사 64-65p]
활동시기 : 19세기 말-20세기 초
특징 및 주장 :

쉔베는 뛰어난 웅변과 사람을 매료시키는 인품을 지닌 평신도 설교자였다. 백인들의 후원을 받는 교회에 대항하여 자신만의 독자적인 교회를 세웠고, 당시 식민 지배를 받던 줄루족(the Zulu)의 메시아가 되었다. 처음에는 자신을 예언자라고만 했으나 나중에는 ‘예수의 진정한 후계자이자 대행자’라고 주장했다. 예수가 행한 모든 것을 이제는 쉔베가 줄루족의 구원을 위해 행한다는 것이다. 쉔베 자신은 모태에서부터 주님의 부름을 받았으며, 때가 이르면 하늘의 예루살렘 문 앞에 설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때에 그는 백인들과 백인들이 후원하는 교회를 다녔던 흑인들을 쫒아내고, 오직 자신에게 속한 신도들만을 구원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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