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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세이연>이 제기한 계시 문제에 답한다.“지금도 계시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이단적 직통계시인가?
진용식 목사  |  jin-bibl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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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28  10:2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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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용식 목사

진용식 목사(세계한인기독교 이단대책연합회 회장)

서론 : 필자의 계시문제에 대하여

필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것이 계시이며, 말씀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것이 계시 받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미주 세이연>은 다음과 같이 필자를 비판하였다.

“한편으로 현재는 계시가 없다고 주장하던 진용식 목사는 계시에 대한 이해를 잘못하고 있고 지금도 계시를 받는 주장은 스스로 모순된다. 성경이 완성된 후에 하나님은 계시를 주시지 않으신다.”(9월 20일 미주 세이연 보고서)

필자의 위 주장에 이단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 후에 <미주 세이연>은 더 발전하여 “진용식의 계시관은 직통 계시를 주장하고 있다.”(10월 1일 미주세이연 보고서)라고 하였고, 이인규 씨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계시에 대한 진용식목사의 주장은 완전한 직통계시이다.”(10월 15일 이인규 반박문)라고 ‘직통계시자’ 그것도 ‘완전한 직통계시자’라고 비판하였다.

과연 그러한가? 아니면 <미주 세이연>이 누구를 이단으로 잡기 위하여 저자의 의도나 그 내용을 깊이 파악하지도 않고 문자 하나, 글자 하나를 트집 잡아서 이단으로 만드는 행태는 아닌지 살펴보자.

언어가 같아도 의미는 다를 수 있다. 누구의 말이든 그 상황을 고려하고, 전후 문맥을 세밀하게 보고 판단해야 성숙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비판에서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내가 비판하는 그 기준이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뚤어진 잣대로 남을 재고 길다 짧다 하는 것은 미련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미주 세이연>과 이인규 씨는 두 가지가 다 잘못되었다. 누구를 이단으로 정죄한다는 것보다 영적으로 더 무서운 일은 이 지상에 없다. 이렇게 중요한 일을 상대의 의견을 잘 살펴보지 않고 몇 개의 단어나 몇 마디 문장으로 단정하는 것은 이단 연구가로 빵점 자리이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계시관’이 잘못되었다. 저들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들이다. 저들은 좁은 의미의 계시만 알고 넓은 의미 계시는 모르는 자들이다.

본론 :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것을 계시라고 하면 이단성이 있고 직통계시자인가?

1. 필자가 말한 ‘계시’는 ‘특별계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필자는 “계시는 예수그리스도를 보는 것이다. 말씀을 통하여 예수를 알아 가면 계시 받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계시 받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즉 주의 날에 사도 요한이 계시 가운데 예수님을 보았듯이 우리도 주의 날 말씀을 들을 때 예수님을 알아 가면 계시 받은 것이라고 한 것이다. 이때 필자가 말한 계시는 ‘특별 계시’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말씀을 깨닫게 되는 ‘성령의 조명’을 말하고 있다. 계시에는 특별계시와 조명이 있다. 물론 가장 중요한 특별계시는 성경이다. 성경을 기록 할 때 성령께서 감동하여 오류가 없이 기록하도록 한 행위를 ‘영감’이라고 한다. 또한 특별계시인 기록된 성경을 밝히 알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조명’이라고 한다. 둘 다 성령만이 하시는 일이지만 특별 계시의 역사는 완성이 되었고 조명의 역사는 모든 인간에게, 세상 끝 날까지 계속된다. 오늘날 개인적으로 성령의 조명은 받을 수 있으나 특별 계시는 받을 수 없다. 필자는 기록된 특별 계시인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을 알아가는 것”이라고 하여 성령의 조명을 말한 것이다.

특별 계시는 성경으로 종결 되었다. 그러나 말씀을 깨닫는 조명의 역사는 계속 되는 것이다. 필자가 ‘특별계시가 지금도 계속 된다’고 주장한다면 이단적인 주장이다. 그러나 필자는 특별계시가 지속된다고 한 일이 없다. 필자가 진술한 내용을 보면 분명히 조명을 말하고 있는 것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데 <미주 세이연>은 계시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니 특별계시를 받는다는 말이라고 하여 이단성이 있다고 필자를 정죄한 것이다.

2. 성령의 조명을 ‘계시’라고 말할 수 없는가?
<미주 세이연>과 이인규 씨는 필자가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을 알아가는 것이 계시를 받는 것’이라고 했으니 특별계시, 직통계시를 주장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계시’라는 용어는 성령의 조명에도 사용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성경이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11:27)라고 하셨다.

계시를 받는 자만이 하나님을 알 수 있고 예수님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만일 이곳의 “계시”를 “특별계시”라고 생각한다면, 성령의 영감을 받아 성경을 기록한 저자들 외에 누구도 하나님 아버지를 알 수 없다는 말이 된다. 여기 “계시”는 “좁은 의미의 계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넓은 의미의 계시”를 말한다.

이 계시에 대하여 존 칼빈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계시는 지식의 형태에 연관되고 있다. 이런 해설만이 말씀을 잘 연결시킬 수가 있다. 왜냐하면 신성의 충만이 자기 속에 거하심을 우리가 알도록 하시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는‘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라고 앞에서 하셨던 말씀을 확증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 모두를 종합하여 말하면 이렇게 된 다.: 아들을 아는 지식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왜냐하면 그의 성령으로 우리 마음의 눈을 여시고 다른 방법으로는 숨겨져 있게 될 그리스도의 영광을 볼 수 있게 하시기 때문이다.”(죤 칼빈, 신약성경주석1권, p455-456)

성령으로 마음의 눈을 열어 그리스도의 영광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조명)을 계시라고 하였다. 칼빈이 말하고 있는 ‘계시’는 성령의 영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조명’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사도 바울은 어떤가? 바울은 모든 성도들에게 계시의 영을 주시라고 기도하였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엡 1:17)라고 하였다. 하나님을 알게 되려면 지혜와 계시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만일 여기 ‘계시의 영’이 성경을 기록하는 특별계시라고 하면 에베소 교인들이 모두 영감을 받아 성경을 기록하라는 말이 된다.

신학자들도 이 본문의 계시를 좁은 의미의 계시가 아니라, 넓은 의미의 계시 즉 성령의 조명이라고 해석한다. “한편 '지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사역을 이해하는 것이며(8절, 3:10, 5:15), '계시'는 하나님의 비밀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것을 시사한다.”(엡 1:17 호크마 주석) “우리는 말씀 안에서 성령의 계시를 가지고 있다. 만일 우리 마음 가운데 성령의 지혜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그 성령의 계시가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매튜핸리 신약주석, p1202)

‘우리는 말씀 안에서 성령의 계시를 가지고 있다’는 말은 조명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미주 세이연>의 필자에 대한 비판과 정죄가 맞다면 필자만이 아니라 마땅히 칼빈도, 매튜핸리 등도 이단으로 규정해야 정직할 것이다. 그런데 <미주 세이연> 11명의 상임위원들에게 그런 진실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이 서글프다.

3. 필자가 과연 직통계시자인가?

<미주 세이연>과 이인규 씨는 필자의 주장을 ‘직통계시’ 또는 ‘완전한 직통계시’라고 하였다. 필자는 직통계시를 주장한 적이 없다. 오히려 직통계시를 비판하는 사람이다. 직통계시란 무엇인가? 지금은 성령의 조명이 있을 뿐이지 특별계시는 없다. 이미 기록된 특별 계시인 성경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을 알아가고 깨닫게 되는 것이 조명 계시이다. 그러나 성경 말씀을 통하지 않고 직접 계시를 받는 다는 것이 직통계시인 것이다. 직통계시에 대하여는 칼빈도 강하게 비판하였다. “성경을 떠나 직접 계시로 비약하는 광신자들은 경건의 모든 원리를 파괴한다.”(존 칼빈, 기독교강요 상권, p161)라고 하였다. 기록된 특별계시인 말씀을 통하지 않고 직통으로 계시를 받는 것 즉 직접 특별계시를 받는 것이 직통계시인 것이다.

필자가 과연 직통계시를 주장하였는가? 필자의 진술을 다시 인용하겠다. “계시는 예수그리스도를 보는 것이다. 말씀을 통하여 예수를 알아 가면 계시 받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계시 받은 것이다”(9월20일 세이연 보고서) ‘말씀을 통하여 예수그리스도를 알아가는 것’ 그것은 직통계시가 아니다. 오늘의 모든 성도들이 말씀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견해이다. 그런데도 <미주 세이연>과 이인규 씨가 본인(진용식)을 직통계시자로 정죄하는 것은 두 가지 중에 하나가 분명하다.

하나는 직통계시가 무엇인지 몰라서 그럴 가능성이고, 하나는 직통계시가 무엇인지 알면서도 이단 몰이에 혈안이 되어 그렇게 했을 가능성이다. 둘 중에 어느 쪽이라고 하여도 저들은 이단 연구를 할 수 없고, 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 분명하다.

4. <미주 세이연>이 정직하다면 이인규 씨부터 이단으로 규정해야 한다.

사실 특별 계시가 지금도 있다고 주장한 사람은 필자가 아니라 <미주 세이연> 상임위원인 이인규 씨이다. 이인규 씨는 기적을 특별 계시로 분류하고 지금도 기적이 있으니 특별계시는 오늘날도 있다고 하여 합동측으로부터 “교류금지” 처분을 받았고, 고신으로부터 “예의 주시” 처분을 받았고, 자신이 속한 기감으로부터 신학적으로 문제가 많음을 지적 받았다.

<미주 세이연>은 “성경이 완성된 후에 하나님은 계시를 주시지 않으신다.”(9월 20일 보고서)라고 하였다. 성경이 완성된 후에는 계시를 주시지 않으신다는 것은 특별계시를 말한다. 특별계시가 성경이 완성된 후에는 더 이상 없다는 것이 진정으로 <미주 세이연>의 입장이라면, 필자를 정죄하기 전에 지금도 특별계시가 있다고 주장하는 이인규 씨부터 먼저 이단으로 규정했어야 한다. 이인규 씨는 “오늘날에도 기적과 이사라고 하는 특별계시는 지속적으로 존재한다”(이인규, 합동 이대위에 제출한 소명자료 p8)라고 하여 이단성을 지적 받고도 회개하거나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지금도 동일한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인규 씨는 이 특별계시관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 <미주 세이연>의 공식 입장을 듣고 싶다.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을 알아가는 ‘조명 계시’도 부정하는 <미주 세이연>이 특별계시가 지금도 있다는 이인규 씨를 왜 이단으로 규정하지 못하고, 필자는 억지로 엮어서라도 이단으로 규정하려고 하는지 모를 일이다.

다른 곳도 아닌 <미주 세이연> 홈피에 ‘계시와 특별계시 직통계시’라는 제목의 이인규 씨의 글이 지금도 버젓이 게재되어 있다. 그곳에서 여러 교단으로부터 이단시 결의된 이인규 씨는 그것을 철회하지 않고 지금도 특별계시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특별계시가 종결되었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인간에게 자신의 뜻을 전달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되어버립니다.”(이인규, 세이연 홈피, 특별계시와 직통계시)라고 했다. 특별 계시가 종결 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는 특별계시가 종결되지 않았다는 사상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여러 학자들의 책을 인용하였으나 그것마저 다 왜곡된 해석을 한 것이다. 이인규 씨의 엉터리 주장들이다. “루이스벌콥은 조직신학 상권을 통하여 특별계시에는 (1) 신현 (2) 전언 (3) 이적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박윤선박사는 특별계시에 (1) 하나님의 나타나심 (2) 이적과 기사 (3) 예언 (4) 꿈 (5) 이상 (6) 성경이 있다고 말합니다.”(이인규, 세이연 홈피, 특별계시와 직통계시) 이인규 씨의 이러한 주장은 본 저자의 주장을 왜곡한 것이다.

벌콥나 박윤선 박사는 신현, 전언, 이적, 등을 특별계시라고 하지 않았다. 이인규 씨는 이 책들을 잘못 이해한 것이 분명하다. 벌콥은 특별 계시의 수단으로 신현, 전언, 이적 등이 있다고 하였고(벌콥, 조직신학 상권, p145) 박윤선 박사는 특별계시의 방편 또는 방법이라고 하였다.(박윤선, 개혁주의 교리학, p27) 현현, 기적, 예언 등은 특별계시가 아니고 특별 계시의 수단이며 방편이다. 이인규 씨는 특별계시 자체와 특별계시의 수단과 방편을 구별하지 못하고 있고, 그것을 교단들로부터 지적 받고도 회개하거나 철회하지 않고 있는 자이다.

성경이 완성된 후에 계시가 없다고 하여 필자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있는 <미주 세이연>의 홈피에 지금도 특별계시가 있다고 하는 이인규 씨의 글을 내리지도 않고 사과하지도 않고 여전히 올라가 있어도, <미주 세이연>의 11명의 상임위원들은 필자를 이단으로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이인규 씨의 사상에는 문제를 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인규 씨의 계시관과 필자의 계시관 중에 누구의 계시관이 더 심각한 문제인가?

이인규 씨는 “진용식 목사의 계시관과 필자(이인규)의 계시관을 비교하여 보자. 누가 더 심각한가?”(10월 5일 이인규 반박문)라고 당돌하게 질문하였다. 당연히 여러 교단들(합동, 고신, 기감)이 지적한 것처럼 이인규 씨의 계시관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필자는 ‘넓은 의미의 계시’ 내지 ‘조명 계시’만이 있다고 하였다.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을 보는 조명 계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며 정통 신학적 계시관이다. 그러나 이인규 씨의 계시관은 다르다. 그는 지금도 특별계시가 지속되며 기적을 통하여 특별계시를 받는다는 것이다. 계시가 지금도 지속된다는 계시관은 기감 이대위에서도 지적을 받은 문제이며, 여러 교단에서 이단적 계시관으로 지적하였다. 필자의 계시관을 이단으로 규정하기 전에, 이인규 씨의 계시관을 이단으로 규정하는 정직한 <미주 세이연>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결론: <미주 세이연> 상임위원 11명(김순관, 서인실, 이종명, 이태경, 조남민, 한선희, 박형택, 백남선, 김성한, 현문근, 이인규)의 이단연구는 전혀 신뢰할 수 없는 것이다.

이인규 씨를 포함하여 11명의 <미주 세이연>의 상임위원들의 이단연구는 객관적으로도 모순되고 자가당착적 이단연구이지만, 주관적으로도 정직하지 못한 연구이다. 저들은 “성경이 완성된 후에 하나님은 계시를 주시지 않으신다.”(9월 20일 <미주 세이연>보고서)라고 하여 좁은 의미의 계시(영감)와 넓은 의미의 계시(조명)조차 구별하지 못하는 자들로 필자를 이단으로 만들려고 하면서도, 저들은 왜 노골적으로 지금도 특별계시가 존재한다고 하는 이인규 씨를 그대로 <미주 세이연> 상임위원으로 두는 것도 모자라, 그의 글을 자기네 홈피에 그대로 두고 있으면서 그것을 문제 삼지 못하고 나아가 오히려 옹호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혹시 앞으로 11명의 상임위원들끼리 무슨 다툼이 생기면, 그때 지금 필자를 공격하듯 이인규 씨를 공격하기 위하여 그를 그대로 두고 보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렇게 감정적으로 이단을 연구하고 이단규정을 하면서도 이단연구가로 자처하는 것이 얼마나 가증한 일인지 모르겠다. 저들은 더욱 필자를 이단으로 만들려고 온갖 노력을 다할 것이 분명하지만, <미주 세이연>의 필자에 대한 연구를 통해 볼 때, 저들이 한 다른 연구들까지 과연 한국교회가 신뢰할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 필자의 솔직한 심정임을 밝히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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