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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의 창을 통해 본 복음너무 십자가 복음만을 강조해왔으니 이제는 부활 복음을 전해야 할까?
강경호 목사  |  ikcp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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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12  10:3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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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기독교이단목회연구소장 강경호 목사(기독교포털뉴스DB)

오늘 새벽, 교회에서 묵상했던 말씀이 베드로전서다. 베드로전서를 살펴보면 복음이란 단어가 3회 나타나고 있다(벧전 1:25, 4:6, 17). 그 가운데 주목하고 있는 구절이 있다.
(벧전1:25)“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베드로가 전한 복음으로 지칭하고 있는 “이 말씀”은 무엇일까? “이 말씀”이 지칭하고 있는 것은 (벧전1:23)“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하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은 일반적으로 넓게 본다면 성경말씀 전체를 지칭하고 있으며, 핵심적으로 본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한다(요1:1-3). 따라서 베드로를 통해서 증거되는 복음이란 성경 전체임과 함께 특히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이라고 필자는 이해하며 믿고 있다.

따라서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신 분으로서 이 땅에 오신 그 자체가 복된 좋은 소식인 복음이다.
(눅1:45)“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눅2:10-11)“(10)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고 부활하신 그 자체가 복음이다.
(벧전1:3)“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사건은 기독교 진리의 핵심이다. 동시에 성경이 말하고 있는 복음의 핵심으로 기독교의 두 바퀴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는 중요한 사건이다. 실상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 위에 세워진 종교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복음이며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심으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것이 복음이다.
그런데 바울은 이 십자가 복음의 중요성을 다음의 고백에서 밝히고 있다.
(고전2:2)“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그러나 동시에 십자가 사건과 함께 바울은 분명히 부활 복음의 중요성과 확실성을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증거하고 있다.
(고전15:12-14)“(12)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3)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14)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분명 십자가의 복음과 부활 복음이 기독교의 핵심을 이루고 있기는 하지만 이외에도 예수 그리스도가 떠나가신 이후 보혜사 성령께서 임하신 강림의 사건도 우리들에게는 복음이며, 또한 승천하시고 다시 오신다는 그 약속의 소식이 복음이다. 그 시기를 일반적으로 종말론이라고 표현하고 있기는 하지만 필자는 종말론의 복음이라는 표현보다는 소망의 복음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왜냐하면 초대교회는 약속하신 그 말씀을 믿으면서 소망가운데 기다렸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말씀이 요한계시록에 나타나고 있다.
(계22:20)“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필자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만 복음이며, 부활 사건만 복음이라고 하기보다는 예수님의 모든 것이 우리들에게는 복음이라고 받아들이는 입장이다. 어느 하나만을 주장하며 복음이라고 하는 것은 왜곡된 시각이라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십자가 없는 부활은 부활이 아니며 반대로 부활 없는 십자가의 죽음만을 강조하는 것은 복음이 아니라 거짓된 복음이기 때문이다. 또한 십자가 복음이나 부활 복음을 부인하는 그 자체도 문제를 가진 시각일 것이다.

십자가가 담고 있는 의미에는 죽음, 고난, 희생, 단절, 실패, 비어냄, 절망, 슬픔 등이 있다고 한다면 부활에는 다시 살아남, 소성함, 생명, 소망, 기쁨, 잘됨 등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요12:24)“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예수님께서 주신 이 말씀에서 죽는다는 것은 십자가로 표상 한다면 열매는 부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부활) 것은 땅에 떨어져 죽을(십자가) 때에야 이루어질 수 있음을 교훈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죽지 않고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죽지 않고, 희생하지 않고, 십자가를 지지 않고 잘 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은 거짓복음이라고 피력한다. 치유만을 강조하고, 회복만을 강조하고, 잘 사는 것을 강조하고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심리나 욕구를 이용하여 복음장사를 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그럴듯 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하늘의 신령한 복음이 아니라 땅의 복음이며 거짓된 복음으로 대표적인 것이 기복신앙이 있으며, 그리고 번영신학 속에 담겨진 왜곡된 복음이라고 본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마16:24)“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10:38)“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따라서 십자가 없는 부활은 껍데기 부활이다. 죽음이나 고난 없는 부활도 가짜 부활신앙이다. 이에 참된 믿음에 대하여 바울은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다.
(갈2:20)“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믿음의 귀결은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분에게 있다. 그리고 참 믿음은 그분과 함께 십자가를 질 때에 그분 안에서만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하고 있다. 이것이 복음에 핵심으로 다시 오시는 그분을 소망 가운데 속히 오시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우리 믿음의 사람들인 것이다.

강단에서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 기쁜 소식인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전해 듣는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건강한 믿음의 사람으로 양육할 것인가?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 줌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며 구원받는 사람이 되게 하고자 하고 있다. 비유적으로 표현한다면 설교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밥을 요리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렇다면 필요한 영양소가 무엇일까? 부족한 영양소는 무엇일까를 신경 써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고 편식을 시킨다면 영적으로도 병들게 하는 신앙인이 되게 하거나 연약한 신앙인이 되게 할 것이다.

따라서 그 상황과 시대를 고려해야 한다. 믿음의 대상도 고려해야 한다. 건강한 신앙인으로 양육하기 위한 복음의 메시지를 전해주어야 하는 중에 영적으로 건강한 신앙을 가질 수 있도록 골고루 영양가 있는 만나의 양식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가 중요하며 우리들에게 필요한 모든 말씀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말씀을 편향되지 말고 골고루 전해줄 수 있어야 한다.

이 시대에 부족한 부분이 십자가 복음이라면 십자가의 복음을 강조하며 더 전해야 한다. 부활의 복음이 부족하다면 예수님의 부활 복음을 더 강조하여 전하여야 한다. 올바른 구원의 신앙을 위하여서라면 종말론이 담겨진 소망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피력하고 싶다. 다만 경계해야 할 것은 우리에게만, 우리 교회에서만 참복음이 있다고 하면서 전유물처럼 여기며 유혹하는 자들은 조심해야 할 것이며 참된 복음을 갖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 원인을 찾아 바르게 전파해야 할 것이다.

이제 복음서 중에 마가복음서를 통해서 살펴보면 어떤 말씀이 많이 나타날까? 그 중에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더 많이 기록하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하여 어떤 교수님으로부터 들었던 것은 초대교회 당시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이 많았기에 부활보다는, 죽음을 믿지 않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므로 십자가 사건을 더 많이 증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늘 묵상한 베드로전서 전체를 살펴보아도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보다는 십자가와 연관된 단어들이 더 많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1:6)“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1:7)“불로 연단하여도”, (1:10)“그 받으실 고난과”, (1:19)“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1:20)“죽은 자 가운데서”, (2:19)“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2:20)“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2:24)“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4:1)“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4:12)“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4:13)“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4:14)“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4:16)“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4:19)“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어떤 분이 전하는 말을 직접 들었다. 그것은 교회력에 따라서 40일 동안 십자가와 고난을 강조하지만 부활은 부활절 하루만 증거함으로 40대 1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너무 십자가 복음만을 강조하니 이제는 부활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면에서 맞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느 한편으로는 편향된 생각이라고 필자는 본다. 왜냐하면 교회력을 통해서만 보아도 사순절은 고난주간 포함하여 6주간이지만 부활절 기간은 부활절 이후 7주간으로 더 기간이 길다. 또한 매주일은 부활을 기념하고 기뻐하는 축제일로서 부활과 연관된 날이다. 문제는 치우쳐서 전하거나 전하지 않는 사람의 책임일 것이다. 또한 한 쪽에 치우쳐서 교인들이 필요하거나 달콤한 복음의 말씀만을 전한다면 그것은 인본주의 자의 자세일 것이다. 다만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은 하나님 편에서 전해야 하며 또한 하나님께서 다음에서 말씀하신 것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수1:7)“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제 필자를 포함하여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이 시대에 주시는 말씀이 무엇이며 어떤 말씀을 전해해야 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그리고 내 말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되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복음의 말씀을 전하고자 하는 것이 사명자의 자세라고 본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복음 전달자의 사명을 감당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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