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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대처와 성경연구를 함께하는 이단 특강[1]‘그 성경구절이 과연 그런 뜻일까?’
장운철 목사  |  kofking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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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5.11  01:3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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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운철 목사는 월간<현대종교>, 월간<교회와신앙>, 주간<교회와신앙>, 인터넷신문<교회와신앙>에서 이단사이비 문제 전문 취재기자로 20여 년 간 사역을 해 왔다. 신천지, 구원파, 하나님의 교회 등 이단 사이비 문제의 현장을 직접 잠입 취재, 보도했다. 또한 이단 사이비의 핵심 교리들을 분석, 비판하는 다수의 글도 발표했다. 신학교 강의는 물론 각 지역 교회와 연합 기관의 수련회와 집회에서 특강을 해 오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B.A.)와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TH.M)를 졸업했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아주사 퍼시픽 대학교(Azusa Pacific Uni., M.A.R)에서 공부를 했다. 두 편의 논문, <요한계시록을 오용해 나타난 최근 이단사상 비판>과 <An Evangelical Christian Perspective on Money>을 발표했다. 저서로는 <신천지 포교 전략과 이만희 신격화 교리>(장운철, 진용식, 정윤석 공저, 한국교회문화사, 2007), <그리스도인들이여! 세상을 읽자>(장운철, 솔로몬, 2012), <이단들이 잘못 사용하고 있는 33가지 성경 이야기>(장운철, 부흥과개혁사, 2013) 등이 있다. 지난 2007년 서울에 만나교회를 개척해 지금까지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이단특강을 원하는 경우 이메일로 연락하면 된다(kofkings@hanmail.net).

‘그 성경구절이 과연 그 뜻일까?’

본 특강은 집회에 참석한 한 성도의 반응 때문에 시작됐다. 필자는 이단 대처 집회를 할 때 종종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곤 한다.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을 잘 하는 어떤 성도가 있다고 해 봅시다. 그는 주일예배는 물론, 각종 모든 예배에 참석을 하고 있습니다. 말씀생활과 기도생활을 잘 하고 있으며 인격적으로도 훌륭합니다. 가정생활과 직장생활에서도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 더욱이 그는 날이 갈수록 더욱 더 잘 하고 있습니다. 이런 성도가 있다면 그는 점점 더 ‘사람’ 다워질까요? ‘신’ 다워질까요?”

신(神)처럼 보이기 위해 어떠한 흉내를 내려는 이단들의 모습을 비판하려는 게 질문의 주된 의도다. 동시에 거룩한 하나님 백성의 삶을 누리자는 권면을 위해서다. 위 질문을 받은 집회에 참석한 성도들은 웅성거린다.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확인해 보며 또 자신의 생각도 정리해 보려는 모습이다. 대체로 ‘사람’쪽 의견이 다수를 이룬다. 이때 어느 집회에서 독특한 일이 발생했다. 한 성도가 손을 높이 들었다. 의견을 직접 말하겠다는 표시다. 그를 편의상 ‘홍길동 씨’라고 지칭하겠다. 필자가 그를 지목하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큰소리로 “신 다워집니다”라고 말했다. 순간 집회에 참석한 모든 이의 이목이 홍길동 씨에게 집중됐다. 그는 말을 이었다. “성경에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며 요한복음 10장 34절이 바로 그 성경구절이라고 했다. 이미 그 성경구절을 외운 듯 역시 큰 소리로 그 성경구절을 읊기도 했다. 그 성경구절은 아래와 같다.

   
▲ 요한복음 10:34은 교주 신격화 이단들이 사람을 신이라고 할 수 있다고 오용하는 대표적인 구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율법에 기록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요10:34)

집회장은 조용해졌다. 필자는 성도들의 얼굴을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쭉~’ 둘러보았다. 어느 누구도 반대 의견을 제시하려는 이가 없어 보였다. 홍길동 씨가 성경구절까지 언급했으니 정답이 나온 것처럼 여기는 듯했다. 누가 그 성경구절을 반박을 할 수 있겠는가. 홍길동 씨가 당당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신의 의견을 뒷받침해 준다는 성경구절이 있다는 것 때문이다.

필자는 이 사건을 계기로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20여 년 간 이단 문제를 취급해 오면서 얽히고설킨 실타래 하나가 풀어진 듯했다. 바로 이단자들이 이단 교리를 언급하면서 당당해 하는 이유와 정통교회 성도들이 이단 교리를 듣고도 쩔쩔매는 이유가 동일하다는 것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성경구절을 제시한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이단에 속한 자들이 얼토당토 않는 이단 교리를 배우면서도 당당해 할 수 있는 이유는 그 교리를 뒷받침해주는 성경구절이 있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들이 성경적으로 정통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이 논리가 정통교회 성도들에게도 설득이 된다. 누군가 성경구절을 인용해 가며 특정 사상을 말하면 ‘올바른 것’이라고 여기게 된다. 왜 그런가. 바로 성경구절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누가 제시된 성경구절에 반박할 수 있겠는가. 특정 사상이 성경구절에 슬쩍 묻혀서 ‘정통’처럼 보여지게 되는 방식이다.

이제 그 틀을 깨보자.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필자는 다음과 같은 관점을 제시해 본다.

‘그 성경구절이 과연 그런 뜻일까?’

이단자들이 자신의 주장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제시하는 많은 성경구절들 앞에서 ‘그 성경구절이 과연 그런 뜻일까?’를 갖고 접근하면 상황은 많이 달라진다. 성경구절을 제시하는 이단자들 앞에서 우리가 당당해 질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경우에 따라서 ‘그 성경구절이 과연 그런 뜻으로 사용된 것일까요?’라는 말만 해도 이단자들이 당황해 하기도 한다. 자신들도 그런 생각을 미쳐 안 해보았기 때문이다. 위 관점은 이단 대처에 보다 안정감과 적극성을 준다.

과거 이단과 요즘 이단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과거 이단 문제는 단순한 면이 있다.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사용하지 않는다, 성경 이외의 경전이 있다, 교주를 신격화 한다, 여자 문제와 돈 문제가 발생한다, 특정 기도원을 조심하라’는 식으로 구분이 어렵지 않았다. 대처하는 법도 자연스럽게 보다 간단하다. 그러나 요즘 이단은 정통교회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과거의 기준에 해당되지 않는 곳이 많다. 오히려 정통교회 성도들보다 더 열심히 성경을 연구하는 것으로 이미지화 되어 있다. 이단자들이 대화하자며 성경을 내 밀고 다가오면 정통교회 성도들은 불안해진다. 두렵기도 하고 피하고 싶다. 물론 그들은 정통교회 성도들을 유혹하기 위해 훈련하고 접근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과 대면하는 것이 그리 좋은 일만은 아닐 것이다. 이제 이단 문제에 보다 진지하게 접근해 보자. ‘그 성경구절이 과연 그런 뜻일까’라는 관점을 가져보자. 당당하게 담대하게 말이다.

신앙생활을 너무너무 잘 하면 정말로 ‘신’이 될까? 사도 바울이 전도할 때 나타난 한 장면을 살펴보자. 사도행전 14장에 나타난 이야기다.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에서 전도를 했다. 그곳에 태어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사도 바울이 그에게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고 외쳤다. 그러자 그 사람에게서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그가 걷게 되었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일부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보고 ‘신’이라고 불렀다. 누가 아니라고 하겠는가. 신이 아니고서야 그런 일을 일으킬 사람이 있겠는가. 급기야 사람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대상으로 제사를 드리려고 했다.

바울과 바나바는 어찌해야 할까. 세 가지 경우의 수가 있을 수 있다. 첫 번째는 적극적으로 ‘YES’하는 것이다. 즉, 자신이 ‘신’이라고 주장하고 신처럼 행동하는 일이다. 두 번째는 묵인이다. 모른 척하고 그 상황이 이끄는 대로 가만히 있는 방식이다. 신으로 받을 수 있는 각종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자신이 신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는 핑계로 빠져나갈 수도 있다. 꿩 먹고 알 먹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세 번째, 적극적으로 ‘NO’를 선언하는 일이다.

오늘날 일부 정통 교회에서도 위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한다. 치병, 안수, 입신, 환상 등의 신비스러운 일들이 발생한 이후다. 대표자가 자신을 직접적으로 ‘신’이라고 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이단 단체 신도들조차도 그 정도로 무지하여 교주를 따르는 이가 많지 않을 정도다. 문제는 두 번째 경우다. 몇몇 성도들이 자신의 종교심으로 인해 교주 또는 담임목사를 필요 이상으로 추앙하려는 경향이 흔히 발생한다. 개개인 성도들이 갖고 있는 종교심 때문이다. 담임목사의 목소리만 들어도 은혜 받는다고 표현한다. 하루 종일 설교 테이프(또는 파일)을 틀어놓는 이도 있다. 어쩌다 악수를 한 번 하면 성령충만해진 듯 그 감동을 잊지 않는다. 꿈에서 그분(?)의 모습을 만나기라도 하면 마치 재림 예수님이라도 만난 듯 기뻐하며 간증(?)까지도 한다. 그분의 책은 읽지 않아도 무조건 구입하고, 그분이 단위에 오르면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지르기도 한다. 그 분은 아무런 행위를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신’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각종 혜택을 누리게 된다. 사도 바울은 어떻게 했을까? 그는 세 번째 방법을 택했다. 적극적으로 ‘NO’를 외쳤다. 다음과 같다.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행14:15)

사도 바울은 자신도 모인 무리들과 동일한 ‘사람’이라고 외쳤다. 비록 자신이 복음을 전하면서 걷지 못하는 사람을 걷게 하는 기적을 베풀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어떠함’을 알리려는 것일 뿐, 자신의 ‘어떠함’을 드러내는 게 아님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이를 위해 사도 바울은 옷까지 찢으며 자신의 신격화 현상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홍길동 씨가 제시한 요 10:34절로 돌아가 보자. 그는 그 성경구절이 ‘사람이 신이 될 수 있다’는 자신의 의견을 뒷받침해 준다고 했다. 이제 ‘그 성경구절이 과연 그런 뜻일까?’라는 관점을 가지고 직접 살펴보자.

필자는 그 접근법으로 4가지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아래와 같다.

1. 관주 사용하기
2. 다른 번역서 사용하기
3. 문맥 따라 성경읽기
4. 참고서 활용하기

정통교회 성도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작업이다. 그렇다고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이 접근법은 신학자나 목회자들이 성경 주해(exegesis)를 위해 사용하는 기초이자 핵심 방법이기도 하다. 필자는 <이단들이 잘못 사용하고 있는 33가지 성경 이야기>(장운철, 부흥과개혁사, 2013)라는 책을 낸 바 있다. 이단자들은 자신들의 교리의 정당성을 위해 성경구절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사용한 성경구절은 그들의 교리를 뒷받침해주고 있지 않다. 그것을 분석한 책이다. 이때 사용한 분석 방법이 바로 위의 4가지다. 이 방법은 필자나 어느 특정인에게만 주어진 것이 결코 아니다. 위 4가지 접근법이 또한 특별한 방법도 아니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당연한 작업이다.

‘그 성경구절이 과연 그런 뜻일까’의 관점은 이단 문제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일반적인 성경공부에도 그래도 적용된다. 그동안 배워서 알고 있던 성경구절, 암송했던 성경구절들을 다시 살펴보자. 알고 있던 내용과 동일하다면 그 의미가 배나 더 깊이 있게 전달될 것이다. 반면 잘못 알고 있던 내용이 발견된다면 자연스럽게 교정이 될 것이다.

이단 대처와 성경 연구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이단 대처를 근본적으로 잘 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잘 연구하게 되는 결과를 얻게 될 것이고, 반대로 성경을 보다 깊이 있게 연구하게 되면 이단을 대처하는 게 당연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성경구절이 과연 그런 뜻일까?’의 관점은 이 둘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연결해 주리라 본다.

이단 대처와 성경 연구를 함께하는 이단 특강

1. 관주 사용하기
2. 다른 번역서 사용하기
3. 문맥 따라 성경읽기
4. 참고서 활용하기
 

1. 관주 사용하기

이단 대처와 개인 성경 연구를 함께할 수 있는 첫 번째 방법은 바로 ‘관주 사용하기’다. 과거에는 ‘관주 성경’ 만나기가 어렵지 않았다. 많은 성도들이 그 성경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서점에 가보면 상황이 달라졌다. 성경 판매 코너에 가 보자. 성경의 디자인과 형식이 너무도 다양해졌습니다. 어린이용, 큐티용 그리고 신혼부부를 위한 성경도 있다. 한국교회에서 오랫동안 사용해 왔던 성경(개역한글판)은 진열장에서 이미 뒷자리로 옮겨졌다. 대부분 새로 개정된 개역개정판 성경이 진열장을 장식하고 있다. <쉬운성경>, <현대인의 성경> 등 현대어로 번역된 성경도 다수 눈에 들어왔다. NIV 외의 다양한 영어성경과 일본어와 중국어 등 외국어 성경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예전 신학교 서점에서나 구입할 수 있었던 헬라어, 히브리어 성경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각종 주석이나 해설이 곁들여진 성경도 많았다. 성경 구입 선택의 폭이 정말로 넓어졌다. 그런데 아쉬운 점이 있다. 바로 ‘관주’라는 이름이 붙은 성경이 쉽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관주 성경을 찾는 이가 없으니 출판사에서는 만드는 것을 꺼렸을 것이고, 또 시중에 없다보니 독자들도 찾지 않는 악순환의 상황이다. 그래도 관심 갖고 찾으면 만날 수는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관주란 무엇인가? 관주는 ‘꿸 관’(貫)과 ‘구슬 주’(珠)의 한자어다. 구슬을 꿴다는 말이다. 관주는 신구약을 오가며 관련된 구절을 연결시켜 주는 ‘연결 끈’이다. 관련된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 또는 단어와 문장 등을 이어줄 뿐만 아니라 인용, 비교, 참고 등으로 그 이유까지 설명을 알려주고 있다. 성경 전체를 하나의 네트워크 화 시켜놓은 셈이다. 이미 오래 전에 해 놓은 작업이라 관주 연결에 부족한 점이 없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주는 성경 하나만 가지고 성경이 성경을 해석할 수 있도록 돕는 아주 훌륭한 성경 연구 도구다. 성경 연구는 물론 이단을 대처하는 것에 필요한 성경구절을 찾고 활용하는 데에 효과적인 도구이자 무기다. 관주 사용하기를 적극 권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관주 성경>이 필요하다.

필자는 오랫동안 영어와 한글이 함께 있는 성경을 사용해 오다가 몇 년 전부터 <관주 여백 성경전서>(개역개정판, 대한성서공회, 2004)를 사용하고 있다. 두 권 모두 관주가 있는 성경이다.

이제 관주를 활용한 예를 하나씩 들어보자.

1-1. 모세 이야기

간단한 것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관주 성경이 있는 분은 직접 성경을 펼쳐서 함께 따라해 주시기 바란다.

출애굽기를 펼쳐보자. 출2:1-2절이다. 아래와 같다.

“1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 들어 2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출2;1)

레위 지파의 어떤 신혼 부부(?)를 언급하고 있다. 그들은 누구일까? 그들은 아들을 낳았다. 성경을 계속 읽어 가면 그 아이는 ‘모세’임을 알 수 있다(출2:10). 그 부부는 모세의 부모를 말한다. 과연 모세의 부모는 누구일까? 이때 관주가 도움을 준다. 필자의 성경에는 위 성구 첫 단어인 ‘레위’에 ‘ㅠ’라는 표시가 붙어 있다. 이것이 관주다. 그 관주가 연결해 주고 있는 성경구절을 보니 ‘출 6:20’라고 해 놓았다. 과연 어떤 구절과 연결해 놓은 것일까? 그 성경 구절을 찾아보자. 아래와 같다.

“아므람은 그들의 아버지의 누이 요게벳을 아내로 맞이하였고 그는 아론과 모세를 낳았으며...”(출6:20)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아론과 모세는 형제라는 사실과 그 부모가 또한 누구인지 이름을 말해 주고 있다. 그 부모는 ‘아므람’과 ‘요게벳’이다. 바로 이것이다. 위 레위 지파의 신혼 부부가 바로 아므람과 요게벳이고 그들이 아론과 모세의 부모라는 말이다. 물론 관주를 사용하지 않고 출애굽기를 6장까지 계속 읽어 가면 발견할 수 있는 사실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주가 출애굽기가 아닌 다른 성경과 연결을 시켜주고 있다면 상황이 어려워진다. 관주는 그것을 바로 연결해 주고 있어 우리에게 보다 쉽게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위 내용과 관련해서 한 가지 더 언급해 보자. 계속해서 관주 활용의 예를 살펴보고 있다. 계속 출 2:2이다.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출2:2)

아기가 태어났다. 모세를 말한다. 그 어머니(요게벳)는 아기가 태어나자 그를 석 달 동안 숨겼다. 이는 ‘아들이 태어나면 나일 강에 던지라’는 왕의 명령을 어기는 일이다. 이는 큰 문제다. 그들은 지금 애굽에서 노예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왕명을 어기는 것은 자신만이 아니라 가족 전체가 몰살당할 수도 있는 엄청나게 위험한 일이다. 이 사실을 모르지 않을 어머니는 왜 이런 행동을 한 것일까? 다시 언급하지만 자신만이 아니라 가족 전체의 목숨도 위태로울 수 있는 매우 중대한 일이다. 왜 그렇게 했을까? 모세가 성장하여 훗날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베풀며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킬 위대한 지도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당시 부모가 이미 알고 있었을까? 그렇게 보기 힘들다. 그냥 갓난아기일 뿐이다. 그런데 왜?

출애굽기 2장 전체를 읽어봐도 그 이유를 찾기 힘들다. 다만 출2:2 중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라는 것밖에는 없다. 한 마디로 잘 생겼다는 게 이유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 갓난아기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어머니는 자신은 물론 온 가족의 생명이 위험해 질 수도 있는 일을 벌이게 되었다는 말이 된다. 가능한 일일까? 당시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때 역시 관주가 도움을 준다. 필자의 성경엔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앞에 작은 글자 ‘으’표시가 있다. 이것이 관주다. 그리고 그 관주는 사도행전 7:20로 연결을 시켜주고 있다. 그 구절을 따라 성경을 펼쳐보자. 아래와 같다.

“그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의 아버지의 집에서 석 달 동안 길리더니”(행 7:20)

스데반의 설교 중 한 장면이다. 즉 스데반이 설교하면서 모세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다. 스데반은 모세의 부모가 죽음까지 무릅쓰고 갓난아기, 즉 모세를 석 달 동안 숨겼던 이유에 대해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라고 설명하고 있다. 무슨 말인가. 모세의 부모는 이제 막 태어난 갓난아기의 존재를 하나님의 시선에서 보았다고 스데반이 해설을 해주고 있다. 바로 그것이다. 재미있지 않은가? 성경이 스스로 성경을 설명해 주는 방식이다. 물론 신약성경이 구약성경을 설명해 주는 방식이어야 한다. 거꾸로 구약성경이 신약성경을 해설해 주는 방식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 시간의 논리상 그렇지 않은가.

하나 더 살펴보자. 점점 더 흥미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게 된다. 위 관주 ‘으’ 표시 행 7:20절 외에 성경구절이 하나가 더 있음을 볼 수 있다. 무엇인가. 바로 히브리서 11:23이다. 히브리서 기자도 모세의 출생 장면을 설명해 주고 있다는 말이다. 그것도 살펴보자.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히11:23)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 부모의 목숨 건 행위를 ‘믿음’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결국 모세의 부모는 하나님으로 인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목숨 건 행위를 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멋지지 않은가. 우리는 지금 어떠한 참고서를 접하지 않은 채 오직 성경 하나만을 가지고 성경의 의미를 파악해 가고 있는 중이다. 바로 관주를 통해서 말이다. 이것이 곧 주석(또는 주해)하는 기초 작업이다. 스스로 성경 공부를 할 수 있는 방법이며, 또한 이단 대처를 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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