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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쁘고 행복한 축제 날, 그건 바로 종말“정성욱 교수, “한국교회, 두렵고 어두운 종말론에서 벗어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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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1.30  16: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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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교회에서 설교한 정성욱 교수(덴버신학대학원)

정성욱 교수(美 덴버신학대학원)가 2016년 6월 29일 사랑의교회(담임 오정현 목사)에서 종말론을 주제로 수요예배를 진행했다. 정 교수는 '세상의 끝인 종말'을 '밝고 행복한 종말'이라고 표현하며 말문을 열었다.

정성욱 교수는 “오늘날 많은 사람이 종말에 대해 어둡고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하며 “두렵고 어두운 종말론, 이를테면 시한부 종말론(1992년 다미선교회 사건)이나 극단적인 세대주의(666과 베리칩) 같은 종말론을 경계하라”고 당부했다. 그는 성도들에게 “성경이 그리고 주님이 말하는 종말이란, 어둡고 두려운 게 아닌 밝고 행복한 소망이자 기쁨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 교수는 “여러분은 예수님의 신부입니까?”라고 묻는다. 그는 요한계시록 19장을 소개하면서 “예수님의 재림은 신랑되신 예수님과 신부된 교회의 혼인 잔치인데, 우리가 이 땅과 세상에 마음을 빼앗긴 채 재림을 생각지도 않고 기대치도 않는다”라며 탄식했다. 그는 결혼할 날을 고대하며 설레는 신부처럼, 재림에 대한 열망과 절절한 기다림이 성도들 마음속에 회복되기를 간절히 당부했다.

설교 중반부, 정 교수는 종말론의 두 가지 화제(개인적 종말론, 역사적 종말론)를 소개한다. 그는 개인적 종말론(3가지 죽음)을 설명하며 성도들과 함께 "우리는 죽음에 대해서 정리된 사람입니다"라고 외쳤다. 두 번째로 그는 역사적 종말론(재림 후 내용)을 영적인 의미에서 예수님과 우리의 영원한 허니문이라고 표현했다. 주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종말이 복되며 기쁘고 승리가 넘치는 축제날이기 때문이다.

이후 정 교수는 종말론에 대한 오해를 짚어주었다. 종말이 도둑같이, 멸망이 갑자기 이르는 것은 ’그들‘(데살로니가전서 5장 1~3절)에 대해서다. 곧이어 그는 성도들과 함께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는 말씀을 읽었다. 이 말씀을 근거로 정 교수는 “성도들에게는 종말이 도둑같이 임하는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설교 후반부, 정 교수는 성경 속 재림의 징조들을 조목조목 살펴보며 우리가 얼마나 흥미진진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를 상기시켰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소망(종말론)은 어두움과 두려움이 아닌, 복스럽고 행복한 소망임을 다시 한번 힘 있게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정 교수는 밝고 행복한 종말론이 성도들 마음속에서 뜨겁게 활활 타오를 수 있기를 당부하며 설교를 마쳤다.

설교자인 정성욱 교수는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석사학위M.DIV.를, 영국 옥스퍼드 대학 신학부에서 알리스터 맥그래스 교수 지도하에 조직신학 박사학위D.PHIL.를 받았다. 현재 미국 콜로라도 주 덴버 신학대학원DENVER SEMINARY 조직신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국제적인 선교단체인 큐리오스 국제선교회KURIOS INTERNATIONAL 대표로 섬기고 있다. 저서로는 <티타임에 나누는 기독교 변증>, <10시간 만에 끝내는 스피드 조직신학>(이상 홍성사), <한눈에 보는 십자가 신학과 영성>(이상 부흥과개혁사)가 있다.

다음은 정성욱 교수가 사랑의교회에서 설교한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마 24장은 기초적으로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말씀인데도 이에 대한 특별한 배경 설명없이 임박한 재림의 징조로만 본듯한 해석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유익한 내용의 설교라 판단해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제가 오늘 이번 주일과 다음 주일까지 밝고 행복한 종말론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오늘 읽은 본문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디도서 2장 13절: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자 거기 우리 그 13절에 보면 복스러운 소망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복스러운 소망.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주님을 우리의 주님으로 우리의 구원자로 영접해서, 주님과 믿음 가운데서 하나가 되고 나면, 우리는 복스러운 소망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복스러운 소망이란 말을 우리나라 현대말로 바꾸면 행복한 소망이에요. 행복한 소망. 행복한 소망이란 말을 조금 더 신학적으로 우리가 정리하면, 행복한 종말론이 되는 겁니다. 한 번 해볼까요. "행복한 종말론". 한 번 더. 행복한 종말론.

자 종말이란 말을 오늘날 우리가 듣게 되면 종말이라는 말을, 사실은 많은 사람들은 종말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마지막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고 할 때, 그것이 두려운 마음을 주거나 혹은 어두운 분위기를 자아내게 됩니다. 인생의 마지막이다. 역사의 마지막이다. 이렇게 할 때 그 마지막을 생각할 때는 어두운 마음, 두려운 마음이 들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사실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실 때, 특별히 역사의 종말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주님은 우리가 기다리는 역사의 종말은 결코 어둡거나 두려운 종말이 아니라 복스러운 소망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행복한 소망이다. 행복한 종말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에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종말론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되면 종말론은 어두운 분위기 두려운 분위기가 팽배해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은 시한부 종말론으로 주님이 오실 날짜를 정해놓고 그 날짜에 주님이 오신다고 막 우기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과거에 1992년에 한국에서 다미선교회라는 단체가 나타나서 1992년 10월 28일 날 예수님이 재림하신다고 했는데 재림하지 않으셨죠. 그 일을 통해서, 다미선교회를 통해서 약 30만 명 정도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고 수백만의 사람들이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아서 한국교회가 대혼란에 빠진 적이 바로 1992년에 있었습니다. 그 일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집을 팔고 또 직장을 내던지고 세상을 등지고 세상을 도피하고 하는 비정상적인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죠. 바로 그런 것들이 두렵고 어두운 종말론의 한 실례가 되는 것입니다.

또 극단적인, 극단적인 세대주의 종말론이 있습니다. 그것은 적그리스도나 666, 과거의 666이라는 것은 베리칩과 666을 관련시켜서 마치 베리칩을 받으면 그것이 666을 받는 것이다라고 주장하면서 또 그것도 한동안 교회 안에, 우리 한국교회 안에 혼란을 부추겼습니다. 그리고 환란 전에 휴거가 일어난다든가 또 이스라엘을 회복해야 된다든가 다양한 혹은 요한계시록을 더 이상 요한계시록에서 말하지 말고 요한계시록은 덮어둬야 한다든가 요한계시록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 이야기를 요한계시록의 이야기를 무조건 덮고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말고 중단하기를 권고한다든가 아니면 요한계시록을 자기 멋대로 자기 생각대로 해석을 해가지고 이상한 이단을 만들어내고 거짓 교리를 만들어내는 다양한, 어둡고 두려운 종말론이 한국교회를 지금 어지럽히고 있는 상황인데 우리는 이 시대에, 이 시대에 바로 성경 오늘 디도서 2장 13절이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복스러운 소망, 행복한 소망, 행복한 종말론을 '회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자 그러면 왜 성경이 말하는 종말론이 밝고 행복한 종말론인가. 그것은 우리 요한계시록 19장을 보면, 요한계시록 19장을 보면,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주고 있는데, 요한계시록 19장에 보면, 예수님의 재림이 바로 신랑 되신 예수님과 신부 된 교회의 '혼인 잔치'라는 겁니다. 예수님은 신랑으로 이 땅에 다시 오시고 우리는 영적인 의미에서의 예수님의 신부로, 예수님을 신랑으로 맞이해서, 예수님과 함께 교회가 결혼을 하고 혼인예식을 치르고 혼인 잔치를 벌이는 날이 바로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이다라고 요한계시록 19장이 그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의 신부입니까. 저와 여러분이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님으로 우리의 구원자로 구세주로 우리의 마음에 영접하고 그분과 더불어 이 땅을 살아가고 있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인 의미에서 예수님의 신부인 줄로 확신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예수님의 신부예요. 영적인 의미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 영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을, 우리의 아빠다 우리의 아버지다라고 부르는 것처럼 영적인 의미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신랑이 되시고 우리의 영원한 남편이 되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신부가 지금 결혼날짜를 잡아놓고 결혼식을 지금 기다리는 신부가 있습니다. 신랑에게 지금 사랑에 빠져서 신랑과 함께 이제 사랑을 속삭이고 이제 프러포즈를 받아가지고 결혼식 날짜를 잡고 결혼식을 이제 하려고 준비하고 있는 중인데 만약 그 신부가 정상적인 신부라면, 정상적인 신부라면, 예수 그 신랑과 함께 결혼할 그 날을 얼마나 고대하며 기다리겠습니까. 그 신부의 마음속에 그 신부의 생각 속에 무엇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하겠습니까. 결혼식 하는 날로 가득 차 있어야 되지 않을까요. 결혼식 하는 날 신랑과 함께 결혼식을 하고 혼인 잔치를 벌이는 그것에 대한 상상과 그것에 대한 기대와 그것에 대한 열망으로 그 신부의 마음은 꽉 차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 신부가 만약에 지금 결혼식을 해야 되고 신랑을 맞이해야 되는 그 날이 지금 다가오는데 그 신부의 마음속에 내가 옛날 친구들하고 같이 동창들하고 어디 좋은 데 가서 여행이나 할까 또 어디 가서 사업을 해서 돈이나 벌까 어디 투자나 할까 어디 가서 사람들하고 만나서 좋은 시간이나 보낼까 만일에 그 신부가 그런 생각만 하고 그런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면, 그 신부는 정상적인 신부가 아닌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진정으로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나의 구원자로 모셨고 그래서 믿음으로 주님과 연합해서, 영적으로 연합해서 주님의 신부가 되었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우리 그리스도 예수님의 신부인 그리스도인들의 마음과 생각에 꽉 차야 할 것은, 사실은 주님의 재림에 대한 기대와 재림에 대한 소망과 재림에 대한 열망과 재림에 대한 간절한 기다림이 신부된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신념과 생각에 가득 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자신을 포함해서 우리 여기 모이신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지체들 모두가 우리 자신들을 돌아보면 예수님의 다시 오심에 대한 그 기대와 열망과 대망은 어느덧 사라져 버리고, 우리는 이 땅에 속한 것, 이 세상에 속한 것, 이 땅에 있는 것들에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관심을 다 팔려버리고 다시 오시는 신랑에 대해서는 생각도 안 하고 주님의 재림에 대해서는 기대하지도 않는, 어떻게 보면 결혼식 날짜를 잡아놓고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신부와 같은, 그런 삶을 혹시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역사에 종말을 고하는 그때는, 바로 우리가 예수님과 더불어 결혼하고 혼인 잔치를 벌이는 날이기에, 우리 인생에 최고의 날이 되고 우리 인생에 최고의 행복한 날이 될 것으로 믿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에 대한 기대, 주님의 재림에 대한 기대,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우리와 함께 결혼하시고 그리고 주님을 배반하고 주님을 모독하고 하나님을 모독했던 악한 세력들을 공의로 심판하시는 그 주의 큰 날, 하나님의 그 큰 날을 기대하면서 우리는 밝고 행복한 종말론으로 무장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밝고 행복한 종말론으로 우리가 우리의 삶을 정돈하게 되면 우리는 세상을 도피하지 않게 됩니다. 현실에 발을 붙여 건강한 신앙생활을 추구합니다.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고 전인격적으로 주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일상의 영성을 길러주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에 대한 건강한 기대, 간절한 열망을 갖고 있는 사람일수록 이 땅에서, 정말 하나님 앞에서 건강한 삶을 추구하고, 그래서 우리의 현세의 삶과 주님이 다시 오시는 재림과 그 이후에 내세의 삶에 대한 균형감각을 갖게 된다는 거예요. 주님의 재림에 대한 간절한 기대가 있기 때문에 주님이 다시 오셔서 우리를 신부로 맞이할 그 날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도리어 이 현세에서 우리는 건강한 신앙생활, 균형 잡힌 신앙생활 그리고 주님과 날마다 동행하고 주님과 더불어 날마다 교제하고, 24시간 주님과 함께 친교하고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시선을 주님에게 고정하는, 정말 아름다운 정말 성숙한 그런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복이 여러분들에게 넘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종말론에 대해서 제가 몇 가지만 조금 더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덴버신학교에서 조직신학을 지금 가르치고 있는데, 조직신학 분야에 종말론이라는 분야가 있습니다. 우리 조직신학에는 뭐 신론이나 인간론, 기독론, 성령론, 교회론, 의외로 다양한 주제가 있는데, 종말론이라는 주제를 다룰 때, 종말론에서 두 가지 토픽이 있어요. 두 가지 큰 서브 토픽이 있는데. 그게 뭐냐면. 하나가 개인적 종말론입니다. 개인적 종말론. 한 번 해볼까요. "개인적 종말론". 개인적인 종말론 또 하나는 뭐냐 하면 역사적 종말론, 혹은 우주적 종말론이에요. 한 번 해봅시다. "우주적 종말론". 자 그러면 그게 무슨 뜻인가 하면 개인적인 종말론이라는 것은 우리 한 개인 그리스도인이, 우리 한 사람이 우리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맨 마지막에 경험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땅에서 말이에요. 우리가 지금 하나님 나라,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이 땅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제일 마지막 사건이 뭐죠? 죽음이에요. 그러니까 죽음에 대해서 다루는 거죠.

그래서 개인적인 종말론은 죽음에 대해서 다루고, 그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서 다루고, 죽음 이후의 삶, 그 이후에 있는 부활에 대해서 다루게 됩니다. 그것이 개인적인 종말론입니다. 그런데 개인적인 종말론에서는 그 죽음을 다룰 때, 죽음에 대해서 3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성경은 3가지 죽음을 말하고 있어요. 첫째가 뭐냐면 육신적인 죽음이에요. 육신적인 죽음이라는 것은 저와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부르실 때에 우리의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거죠. 그게 육신적인 죽음, 생물학적인 죽음입니다.

영적인 죽음이 있습니다. 두 번째 죽음. 영적인 죽음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졌을 때 나타나는, 영이 죽어버리는 건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 이후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면서 그들의 영혼이 죽어서, 죽게 되었죠. 그래서 아담과 하와의 모든 자손은 영혼이 죽은 채로 이 땅에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도, 저나 여러분 모두도 이 땅에 태어날 때 영적으로 다 죽어서 태어났어요. 영적으로 죽어있는 상태로 태어났지만 저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믿고 의지함으로, 주님을 우리의 주님과 구주로 영접함으로, 우리의 영혼이 거듭나고 중생한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은 이제 새로운 영혼이 된 거죠. 그런데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영혼은 아직 죽어있는 거예요. 살아있어 보이지만, 살아서 지금 막 돌아다니고 많은 일들을 하고 있지만, 그들의 영혼은 죽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적인 죽음이에요.

영원한 죽음이라는 것은 뭡니까. 세 번째 성경에서 말한. 영원한 죽음은, 믿지 않는 사람이 부활을 하게 되고, 부활한 그 사람이 영원한 지옥의 영원한 불못의 형벌을 경험하게 되는 것, 영원한 지옥 영원한 불못으로 들어가서 영원히 하나님의 형벌과 저주와 심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 영원한 죽음이라는 거예요. 자 그런데 문제는 뭐냐하면 저와 여러분이 이 땅을 살아가면서 이 땅에서 마지막으로 경험하게 되는 죽음이라는 사건이, 사실은 올 때는 순서 있게 오지만 갈 때는 아무 순서 없이 간다는 것. 저와 여러분의 마지막 날이, 이 땅에서의 마지막 날, 이 땅에서의 개인적인 종말의 날, 개인적인 마지막 날이 오늘이 될 수도 있고 내일이 될 수도 있고, 내년이 될 수도 있고 5년 후가 될 수도 있고 10년 후가 될 수도 있고, 분명한 것은 분명히 그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재림, 예수님의 재림이라는 역사적 종말론, 우주적인 종말론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우리 개인의 종말론을 이야기하더라도, 개인의 종말은 지금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개인의 종말, 우리가 맞이해야 할 생물학적인 혹은 육체적인 죽음의 그 날이, 성경은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 '죽음의 날'이 우리 인생에 사실상 '가장 복된 날'이라고 주님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으십니까? 왜 그러십니까? 그것은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이 나그네 인생길을 살아가면서, 고난과 아픔과 환란과 질병과 그런 모든 시련들을 거치면서, 우리가 성화의 과정을 겪어가고 있는데, 주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그 날, 우리가, 우리의 개인이 종말을 맞이하는 그 날, 우리는 이 땅을 떠나서 주님을, 우리의 영혼으로 주님을 대면하고, 주와 함께 낙원에 들어가서, 주님과 함께 직접 만나는 그 날이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신랑 되신 주님을 만나고 신랑 되신 주님과 함께 낙원에서 영원한 생명을 실제로 더 풍성하게 누리는, 누리게 되는 바로 그 날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종말의 날, 우리의 죽음의 날이, 죽음에서 오는 것이 다 사라져 버렸고, 우리의 죽음의 날은 도리어 우리 인생의 최고의 날, 최고로 복된 날, 최고로 행복한 날이 되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으십니까.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누구입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다양한 의미에서, 다양한 차원에서 우리가 설명할 수 있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이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라는 거예요. 죽음에 대해서 정리된 사람이라는 거예요. 한번 해봅시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서 정리된 사람이다". 우리 자신이 개인적으로 죽는 날, 그 죽음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아직도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고통의 날이고 슬픔의 날이고 그것은 정말 어두운 날이고 두려움의 날이지만은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는 순간, 물론 우리 남아있는 가족들에게는 슬픔의 날이 될 수 있지만, 사실은 그것은 잠시 잠깐 일뿐이고. 소망이 없는 자와 같이 슬퍼하지 아니하게 되고 우리는 정말 그 날 주님을 만나서 주님과 함께 주님과 포옹하고, 영적으로 포옹하고 주님과 함께 만나서 기쁨의 잔치를 벌이는 정말 인생의 복되고 행복한 날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게 바로 개인적인 종말론 역시도 밝고 행복한 종말론이다 이 말입니다. 우리의 종말이 결코 어둡거나 두려운 종말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 지금 개인적인 종말론 말씀드렸고, 역사적인 종말론, 우주적인 종말론에 대해서 잠깐 말씀을 드리면, 아까 말씀드린 대로 주님이 다시 오셔서 우리와 더불어 혼인 잔치를 벌이고, 우리와 더불어서 정말 주님과 함께 영원한 결혼식을 거행하고 그래서 그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겁니까.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이제 우리가 들어가게 되는데,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삶이라는 것은 비유컨데, 저와 여러분이, 우리와 신랑 되시는 예수님과 우리가 하나가 되어서, 정말 영적인 의미로, 영적인 의미로 영원한 허니문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을 사모하십니까? 정말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이 정말 내 인생에, 정말 하나님 앞에서 가장 복되고 행복한 날이 될 것이라고 그렇게 기대하십니까? 자 그렇다면 자 오늘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걸 조금 요약을 하면 어떻게 되냐. 결국은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에 주님이 다시 오시든지 둘 중에 하나 아니겠어요.

그렇죠?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에 주님이 다시 오셔서, 우리가 살아있는 채로 주님을 만나든지 아니면 저와 여러분을 먼저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우리의 영혼이 예수님을 만나게 되든지, 우리가 우리 육신의 개인적인 종말을 먼저 맞이하든지 아니면 우주적이고 역사적인 종말을 먼저 맞이하든지, 그것이 어느 것이 먼저이든지 간에 상관없이 우리의 종말의 날은 행복한 날이고 복된 날이고 기쁨의 날이고 승리의 날이고 축제의 날이 되는 줄로 여러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쁘고 행복하고 밝은 종말론으로, 우리 개인적인 종말론도 그렇게 무장해야 되고, 역사적인 종말론도 무장을 해야 되는데. 바로 주님께서 오늘 이 지금 2장 13절의 말씀은. 거기 다시 한번 보세요. 2장 13절. 다시 한번 우리가 읽어보겠습니다. 2장 13절. 다 같이 시작.

#디도서 2장 13절: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다

여기 이 13절에서는, 복스러운 소망을 말씀하시면서 지금 어디에 포커스를 두고 있는 겁니까? 그것은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시는 날, 이날이 무슨 날이에요. 주님이 재림하는 날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오늘 디도서 2장 13절은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에 대해서, 재림하시는 날에 대해서 바로 그 날을 우리가 기대하고, 우리가 기다려야 할 복스러운 소망, 행복한 소망, 행복한 종말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종말론에 대한 오해가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 예수님이 오시는 것이, 예수님이 다시 오시고 재림하는 것이 도둑과 같이 온다. 도둑과 같이 온다는 그런 오해가 있어요. 정말 예수님이 도둑과 같이 오시겠습니까? 자 이 부분을 분명히 한번 정리하고 넘어갑니다. 데살로니가전서 한 번 가봅시다. 성경 말씀 가지고 계시죠. 데살로니가 전서 5장에. 데살로니가 전서 5장 한번 보시면, 5장 4절, 5절, 6절입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장 4절 5절 6절 다 같이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다 같이 5장 4 5 6절. 시작.

#데살로니가전서 5장 4~6절: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날이 도둑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아멘."

지금 5장 1, 2, 3절을 제가 좀 잠깐 보면요.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자 여긴 또 밤에 도둑같이 이를 줄을 알기 때문이라. 그런데 3절을 잘 보셔야 돼요.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여기서 지금 도둑같이, 주님께서 도둑같이 임해서 그들이,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라 할 때, 그들은 누구죠? 여기서, ‘그들은’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에요. 예수님을 배반하고 예수님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에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주님을 알지 못하고 주님을 배반하고 주님을 떠나 있는 사람들에게는 주님의 재림의 날이 도둑과 같이 임하게 됩니다.

그러나 4절을 보시면,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여러분 ‘아멘’ 하십니까. 한 번 해봅시다. "도둑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정말 우리의 신랑으로 모시고, 날마다 신랑 되신 주님과 24시간 교제하며, 교통하며 살아가고, 주님이 다시 오셔서 우리와 함께 결혼하실 날, 혼인 잔치를 벌인 날 그 날을 기대하며 살아가게 되면, 주님의 재림은 우리들에게 도둑같이 임해서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날이 아니라, 주님의 날은 결코 도둑같이 우리에게 임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5절에 보세요. 5절에 보니까.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자 우리는 밤에 속한 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두움에 속한 자들이 아니에요. 우리는 빛의 아들이고 빛의 딸이고 우리는 낮의 아들들이고 낮의 딸들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재림이 결코 도둑같이 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삶의 자세와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야 되느냐. 6절에 보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한 번 해봅시다.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사랑하는 여러분, 정신을 차리시겠습니까. 잠에서 깨어나시기를 바랍니다.

종말론에서, 역사적인 종말론 우주적인 종말론을 다룰 때 굉장히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가 뭐냐 하면은, 재림의 징조에 대한 이야기. 우리가,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낮의 아들이고 빛의 아들들이고 낮의 딸들이고 빛의 딸들이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의 신랑이시기 때문에 도둑 같이 임할 수가 없어요. 우리들에게 어느 정도의 느낌과 암시를 주시면서 오시는 겁니다. 그것에 대해서 주님께서 뭐라고 말씀했냐 하면은, 내가 다시 오는 날에 일어날 여러 가지 징조들이 있다는 걸 주님이 말씀하셨어요. 내가 다시 오는, 오는 그 날이 오기 전에, 특별히 주님이 재림 오시기 전에 여러 가지 징조들, 여러 가지 사인들이 나타날 것이다.

여러 가지 징조와 사인들이 나타나기 때문에, 그런 징조와 사인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 너는 내가 문 앞에 이른 줄을 알아라.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자 그 주님의 다시 오심, 주님의 재림에 대한 사인 혹은 징조에 대해서 우리 마태복음 24장을 한 번 가보겠습니다.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주님께서 주님의 재림에 대한 여러 가지 징조를 말씀하고 있어요. 24장, 특별히 3절로 14절에 여러 가지 징조가 나옵니다. 주님의 재림의 징조들이 무엇이 있을까요. 여러분. 여러분. 아마 여러분들도 알고 계시는 것들이 있을 겁니다. 지금 오늘날 나타나고 있는 여러 가지 지진들, 기근들, 전쟁들 또 다양한 그죠, 지금 여기 다양한, 지금 주님의 재림의 징조가 있는데, 24장 14절을 한번 보면, 주님이 오시는 재림의 날이 오기 전에 이것이 마지막 징조에요. 마지막 사인이 있어요. 마지막 징조가 있는데, 이 징조가 거의 이루어지게 되면,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게 나오는데 24장 14절, 마태복음 24장 14절,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다 같이 시작.

#마태복음 24장 14절: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한 번 해봅시다. "그제야 끝이 오리라." 언제 끝이 온다고요? 그렇죠.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될 것이다. 이게 주님의 예언이에요. 주님의 약속입니다. 주님의 예언과 약속이 무엇입니까?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된다는 겁니다. 자 천국 복음, 주님의 그 피 묻은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고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면 그제야 끝이 온다는 거예요.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신 거예요.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자 그런데 오늘 여기서 우리가,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어서 온 세상에 전파된다 할 때에, 지금 그럼 어느 시점에 우리가 지금 와 있나? 2016년 오늘 06월 29일 수요일 날, 오늘의 이 시점에서 봤을 때, 천국 복음이 어느 정도까지 지금 전파되어 있나. 자 오늘날 우리 UN에 속한 국가가 200개에서 220개가 된다고 하는데, 그 나라에 사실은 모든 나라에는 복음이 다 증거되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도 복음이 증거되었고. 쿠바 공산권에도 복음이 증거되었고. 북한에도 믿음의 우리 사람들이 있고. 복음화율이 가장 낮은 나라라고 하는 일본에도 이미 복음이 증거되었고. 거기서 교회들이 세워져 있습니다.

국가들로, 국가들을 말하고, 나라들을 말한다면, 모든 국가와 모든 나라에 이미 다 복음이 들어갔어요. 그런데 오늘 여기서 지금 민족이라고 말하는 이 민족, 모든 민족이라고 말하는, 민족이라는 단어가 헬라어로 '에스노스'(ἔθνος)라는 단어인데, 에스노스라는 단어가 뭘 의미하는 거냐면, '종족'을 의미하는 거예요. 종족. 나라가 아니고. 그러면 종족으로 이야기 한다 그러면 이 지구상에 현재 종족은 11,000개 종족이 있다고 합니다. 11,000여개 종족이 있는데. 11,000여개 종족 중에서 그 종족이 사용하는 언어를 우리가 취합을 해보면 언어가 7,000개가 된다는 거예요. 7,000개 언어 중에 복음서 한 권, 복음서 한 권이라도 번역이 되어 있는, 성경 전체가 번역이 되어있거나 아니면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복음서 한 권, 쪽 복음이라도 번역이 되어 있는 단어가, 언어가 3,000개 언어입니다. 4,000개 언어로 아직 성경이 번역이 안 되어 있어요. 단 권이 번역이 안 되어 있다는 거예요. 전체는 물론이고. 자 그런데, 위클리프 성경 번역 선교회(Wycliffe Bible Translators)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성경 번역을 많이 하고 있는 단체죠. 아마 그 단체가 역사가 100년 가까이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거기서 지금 성경 번역을 하면서 2025년까지, 2025년까지 남아있는 4,000개의 언어로, 적어도 성경 단권이라도 번역이 되도록, 번역을 착수하고 번역을 시작하자, 2025년에. 번역을 착수하고 번역을 시작하자라고 지금 계획을 세우고, 대대적인 지금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번역운동이 2025년에 시작되면 언젠가는, 전체 성경이 다 번역되려면 시간이 좀 꽤나 걸릴 거예요. 그러나 단권이라도, 단권이라도 성경의 한 권이라도 번역이 되면 얼마 걸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결국 무슨 말인가 하면, 저와 여러분은 매우 흥미진진한, 흥미진진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 오실 날이 지금 카운트다운이 되고 있다고 할 정도로, 주님이 오실 날이 정말 가까워져 오고 있다는 거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바로 이러한 시대를 지금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주님의 재림에 대한 행복한 소망, 복된 소망, 주님의 다시 오심에 대한 행복한 기대, 주님이 다시 오셔서 나와 우리와 결혼하시고 혼인 잔치를 벌이시는 그 날에 대한 정말 복된 소망, 복된 희망, 기쁨의 날, 그 날에 대한 기대와 열망을 여러분의 심령 속에서 다시 회복할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랍니다. 자 그것만을 우리가 천국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리라는 것과 더불어 오늘날 또 다른 징조가 있다면 12절, 24장 12절 말씀 보면, 24장, 마태복음 24장 12절 말씀을 한번 보면. 같이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12절 시작.

#마태복음 24장 12절: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불법이 성하다는 거예요. 오늘날, 이 불법이 성한 것, 특별히 어떤 불법이 성합니까? 제가 살고 있는 미국 땅에서 얼마 전에 동성애자들이 결혼하는 것이 합법으로, 합법으로 인정이 되었어요. 대법원, 연방 대법원에서 합법으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불법을 합법화시켰습니다. 그런데 그 미국에서 굴러오는 나쁜 바람이 그 악한 바람이 우리나라에도 지금 불고 있는 거 아니에요? 동성애 문제로 지금 우리나라가 지금 시끄럽고 들끓고 있지 않아요? 동성애자들의 결혼을 허가해달라는 그 청원서가 지금 법원에 올라가 있고 이걸 막으려는 우리 한국교회의 노력도 지금 열심히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며 막으려고 하지만, 뭔가 모르게 우리가 지금 역부족인 걸 느끼고, 정말 불법이 지금 성하다는 것, 사랑이 식어져가고 있습니다. 2016년 전반기 1월부터 6월까지 우리가 6개월을 되돌아보면, 정말 우리가 과거에 상상도 할 수 없는 천륜을 어기는 범죄가 발생하고 있잖아요.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자를 죽이고, 손자 손녀가 할머니 할아버지를 죽이고. 도저히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그런 일들이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줄 아세요?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일이 아니에요. 이 일이 지금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불법이 자행되고 있고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고 있는 거예요. 또 오늘도, 오늘인가 어제인가, 뉴스를 보니까 터키에 또 테러가 발생했잖아요. 누가복음에 보면 주님께서 무서운 일이 발생하리라. 그것 자체가 뭐냐. 내가 다시 오게 될 '재림의 징조'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의 재림의 징조가 지금 이렇게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이 시대에, 우리가 지금 배격하고, 우리가 이제 벗어나야 할 것은, 주님의 재림에 대한 기대, 이 역사의 종말에 대한 기대가 결코 어둡거나 두려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에요. 아멘. 주님의 재림은 우리 모두에게 신랑 되신 주님이 오셔서 우리와 함께 결혼하시며 혼인하시고 우리의 눈물을 씻어주시고 우리의 고통과 아픔을 위로해주시고 교회를 힘들게 하고 교회를 아프게 하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그리스도인을 대적하던 모든 마귀와 적그리스도와 악한 세력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 공의로 심판하시는 그날이기 때문에, 우리는 기쁘고, 기쁜 마음과 기대의 마음과 설레는 마음과 흥미진진한 마음으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릴 수 있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소망은, 복스러운 소망입니다. 행복한 소망이에요. 행복한 종말론이에요. 주님이 저와 여러분을 먼저, 주님 오시기 전에 우리를 먼저 부르시든지 아님 우리가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에 주님이 오시든지 간에, 어떤 일이 벌어지든지 우리의 종말은 행복한 종말이다. 그러한 믿음과 그러한 기대와 그러한 확신이 여러분의 심령 속에서 더 견고해지고 그런 복스러운 소망에 대한 열망이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서 여러분 마음속에서 타오를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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