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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교 교주, 박태선은 누구인가?육체 영생교 신천지 이만희 교주도 10년간 다녀
임웅기 객원기자  |  killerzi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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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1.04  14: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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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가 경주 토함산에서 1040구의 시체가 발견됐다고 2016년 11월 3일 보도했습니다. 사체가 발견된 땅의 소유주는 소위 신앙촌, 전도관, 천부교로 불리는 한국천부교전도관부흥협회라고 합니다. 포털 사이트 다음에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면서 이곳의 교주인 '박태선' 씨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습니다. 박태선 교주는 누구일까요? 신천지의 이만희 교주는 자신도 이곳에서 10년 동안 있다가 나왔다고 주장합니다. 육체 영생교 신천지의 이만희 교주에게도 영향을 미친 박태선 교주는 어떤 사람일까요? 임웅기 객원기자가 발표한 글을 요약 게재합니다[편집자주]

   
▲ 신천지 이만희 교주의 약력, 전도관 출신이다(과거 신천지 홈페이지 갈무리)
   
▲ 성경의 98% 마귀의 글이라고 주장했던 박태선 교주의 모습. 

1) 박태선은 누구인가?
박태선은 1917년 11월 22일 평안북도 영변에서 출생했다. 박태선은 덕천군에 있는 덕천교회 주일학교에 다니면서 십계명에 입각하여 주일을 성수하였으며 십일조 생활을 하였다. 박태선은 고향에서 소학교를 마친 후, 형편상 상급학교로 진학하지 못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낮에는 우유배달을 하고 밤에는 야간 고등공업학교를 다녔다. 그러나 생계는 안정되지 않아 며칠씩 끼니를 거르는 생활과 타국에서 받는 멸시와 천대의 삶은 어린 박태선에게 너무나 큰 고통으로 다가왔다. 결국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견디다 못해 여러 번에 걸쳐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방황하는 삶의 기로에서 자신을 바로 잡아 준 것은 어린시절 황모 목사의 은혜로운 임종의 모습과 비슷한 어떤 장로의 죽음을 목격하고 난 후였다. 평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에서 박태선은 삶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되었다. 졸업을 한 후에는 일본에서 정밀기계공장을 경영하였으며, 동경 시내에 있던 대대목(代代木) 한인교회(韓人敎會)를 다니면서, 1941년 2월 8일에 결혼을 한다. 그러나 10월에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1944년에 귀국한 후 1945년 7월 1일 경에 첫 아들을 낳는다.

박태선은 일본 동경시절 알고 지냈던 김치선 목사가 시무하는 남대문 장로교회를 출석하기 시작하였고, 성결교회의 부흥사로 유명한 이성봉 목사의 부흥성회에서 강한 불의 임재를 체험한다. 기계 부속품 공장을 경영하고 있던 박태선은 이 사건으로 인해 더욱 새벽기도와 노방전도, 그리고 헌금생활에 충실한 ‘열성교인’이 된다. 그러나 해방 후에는 한 때 통일교 문선명과 함께 김백문 이스라엘 수도원에서 수련을 했다는 주장도 있는데, 여기에 대한 정확한 자료나 증언이 필요한 상황이다.

박태선은 남대문교회에서 평안북도 정주군 출신인 이OO을 만나, 1948년 말이나 1949년 초에 삼각산 기도원장 정득은을 소개받는다. 박태선은 ‘피가름의 교리’와 ‘두 감람나무’ 또는 ‘두 촛대’의 사상을 이어 받는다. 두 감람나무 사상은 박태선을 통해 신천지 증거 장막성전 이만희에게로 전수되며 통일교 문선명과 신천지 증거 장막성전 이만희가 공통으로 주장하는 ‘합성일체(合性一體)’나 ‘신인합일(神人合一)’ 교리는 정득은의 『生의 원리』에게서도 발견된다. 정득은과 결별을 한 박태선은 1950년 6.25 전쟁 당시에 공장을 정리했지만 피난을 가지 못하고 구들장 밑에 숨어 지내는 동안 ‘하늘로부터 오는 생수를 마시면서 버텼다’고 한다. 그리고 9월 28일 경에 서울 수복이 이루어졌지만, 1.4후퇴로 인해 피난길에 올라 평택에 당도했을 때 ‘온 몸의 더러운 피가 소변을 통해 나오고, 대신 옆구리와 손과 발에 흘리시는 예수님의 피를 자신이 받아먹었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박태선은 폐결핵으로 죽어가던 아이를 자신의 기도로 살리는 체험을 한다.

서울로 돌아 온 박태선은 1953년경 공장을 다시 경영하게 되고, 남대문교회 김치선 목사가 개척한 창동교회로 출석하게 된다. 경북 용문산 기도원 나운몽 장로(1914년 생)와 변계단 권사가 인도하는 신유집회에 참석하여 영향을 받는다. 어느 날 변계단 권사가 창동교회 집회 인도를 취소하게 되자, 박태선이 담임목사 김치선의 허락으로 집회를 인도하게 된다. 그 시간에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난다. 이때부터 박태선은 공장을 형 박태국에게 맡겨버리고 나운몽 장로가 인도하는 부흥집회에 조력자로 따라 나서게 된다. 어느 날 나운몽이 박태선에게 성경통독과 기도생활을 권유했지만, ‘성경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말하면서, 기도대신 안찰하는 방법을 연습하였다. 대구에서 바브 라이스 선교사가 운영하고 있던 기독교부흥협회가 1개월간 전국을 순회하며 집회를 주최하기로 하였는데, 처음에는 나운몽을 강사로 내정했다가, 창동교회 김치선 목사의 권유로 박태선으로 변경한다. 1954년 12월경에 김치선 목사는 집회를 위해 박태선에게 장로 안수를 준다.

   
▲ 신앙촌에서 생산하는 제품들(사진 인터넷 신문 교회와신앙)

(2) 전도관과 신앙촌 건립
박태선은 창동교회와 1955년 1월 1일 무학교회를 시작으로 전국으로 순회하며 부흥집회를 인도하기 시작한다. 박태선이 사람들의 뇌리에 부흥사로 각인을 확실하게 남긴 집회는 남산공원 부흥집회였다. 1955년 7월 3일에 한강 백사장에서 열린 부흥집회에서는 ‘두 개의 불덩이가 천막을 비추는’ 신비한 일이 발생하였다.

그러나 1955년 11월에 대한 예수교 장로회 경기노회에서 김한이 1949년 2월과 3월에 걸쳐 행해졌던 혼음사건에 대해 박태선이 연루되었다고 폭로함으로 1955년 7월에 한국기독교연합회(NCC)에서 박태선을 이단으로 규정하였고, 그 후 창동교회와 1976년 2월 15일에는 경기노회에서 이단결정과 함께 제명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태선의 부흥집회는 계속되었고, 걷혀진 헌금과 귀중품으로 1955년 12월 25일에 원효로 3가 52번지에 2,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전도관(傳道館)’ 건물을 짓는다. 그리고 1956년 7월 3일에는 청암동에 ‘중앙 전도관’을 건설하였고 11월 11일에는 전도관 신도들이 전국에서 모여 박태선을 ‘감람나무’로 추대한다. 1957년에는 전도관 숫자가 17곳이나 되었다.

박태선은 1957년 11월 1일에 제1단지 ‘소사 신앙촌’을 경기도 부천군 소사읍 일대지역 15만 평을 매입하여 건설하고, 신도들 7,467명을 입주시킨다. 그러나 1958년 8월 27일 전도관에서 안찰을 받던 신도가 숨지는 사건을 시작으로, 9월 10일에는 경기도의회의 신앙촌 조사사건, 9월 14일에는 가짜 성화사건, 폭행사건, 검찰협박 사건들이 일어났다. 결국 1958년 12월 27일에 검찰은 상해위증죄를 추가하여 박태선을 기소하게 된다. 1959년 1월 10일에 문교부에서 전도관을 사교(邪敎)로 규정하지만, 박태선은 1959년 당시 집권당의 자유당의 선거 승리를 도와줌으로써 1960년 3월 26일에 석방이 된다. 그러나 자유당의 부정선거를 도운 혐의가 결국 탄로가 나서 1961년 1월 27일에 제 2차 구속기소 된다.

1962년 1월 10일에 출감한 박태선은 ‘덕소 신앙촌’으로 명명한 제2신앙촌을 1962년 7월 21일에 경기도 양주군 와부읍 덕소리 한강변에 건설한다. 소사 신앙촌이 경공업 중심으로 운영되었다면 덕소 신앙촌은 경공업부터 중공업에 이르는 담요, 메리야스, 양재, 제강, 슬레이트를 제조하게 된다. 입주 신도는 6,000명 정도이다. 그리고 1970년 2월 28일에는 경남 양산군 기장면 죽성리 해변가(현재는 부산시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 일대)에 제3신앙촌을 건립하고 약 5,000명 교인을 입주시킨다. 현재는 개발제한 구역으로 묶여 있으며 시온그룹으로 불리고 있다.

전도관 교인들을 바깥세상과 격리시키기 위해 만든 신앙촌은 내부에서 끊임없는 문제점들이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1967년 1월 1일에 덕소 신앙촌에 화재와 대홍수 사건, 1968년에는 전도관 신도들이 ‘신앙촌 정화 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박태선을 규탄하는 사건, 기장신앙촌에서는 생수를 마시면 모든 병이 치료된다고 했다가 죽는 사람들이 발생한 사건, 1972년 4월 4일에는 국세청 직원 폭행사건, 1972년에는 세금 포탈 고발 사건, 1975년에는 아들 박동명이 연예인과 일으킨 스캔들 및 외화 유출 사건 등이다. 1972년 2월 26일에 박태선은 최대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는데 ‘신앙촌에 거주하는 신도들은 영생한다’고 했던 호언장담과는 달리 부인 박정원이 3남 2녀의 자녀를 남긴 채 사망을 하였다. 이 때 전도관 신도 이용세가 『격암유록』이라는 책에 ‘박정원은 죽게 되어 있으며, 후처로 최옥순과의 결혼이 예언’되어 있다고 주장하여 이 난황을 헤쳐 나간다.

김하원은 자신의 저서 『격암유록은 가짜, 정감록은 엉터리, 송하비결은?』에서 박태선과 전도관이 의도적으로 위서(僞書)인 『격암유록』을 이용하고 있다고 폭로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위대한 예언서’로 취급하는 분위기에 대해서 심한 우려를 표명하였다. 통일교 문선명이 『격암유록』을 사용하고 있으며, 불교계, 기독교계, 증산도계, 정역계, 단군계 등을 합쳐 300여 개의 단체가 『격암유록』을 이용하고 있는데, 신종교 중에 영생교 조희성이『격암유록』을 가장 잘 이용하고 있다. 박태선 전도관 출신인 이만희도 자신의 출현을 『격암유록』에서 예견하고 있다고 신도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전도관 신도들에게 영생을 선포했던 박태선은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자 실의에 빠지게 되는데 1977년경에 조성기(趙聖紀)라는 사람이 찾아와『격암유록』에 박태선이 ‘말세 성군’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말한다. 천군만마를 얻은 박태선은 다시 재기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고자 하지만, 얼마 지나서 조성기는 자신의 이름이 『격암유록』‘진정한 성인’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말을 바꾸고 신종교를 창교한다. 이에 박태선이 크게 노(怒)하여 『격암유록』 사용을 전도관에서 금지시킨다.

   
▲ 천부교의 표시. 십자가 대신 면류관에 둘러쌓인 비둘기 형상을 달아 놓는다.

(3) 한국천부교전도관부흥협회(천부교) 설립과 박태선의 사망
1980년 2월쯤에 두 사람이 박태선을 찾아와 ‘주역’을 보여 주면서, ‘박태선은 5,700년 전에 태어난 하늘의 사람이고 구원자이며, 부인 최옥순과 별거를 해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듣자 최옥순과 이혼을 선포한다. 1980년 4월 5일에는 전도관 간부들을 모아 놓고 ‘성서는 98%가 가짜이고, 성서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개XX이며, 예수는 마귀대장으로 바울을 조종하여 자신을 신격화 했다’고 주장하기 시작한다. 또한 자신의 나이는 ‘5,700세로, 이긴자이며 감람나무인 자신은 영생 한다’고 가르치기 시작했다.

1980년에 들어와서는 교단명을 ‘천부교(한국천부교전도관부흥협회)’로 변경하였고, 1980년 11월 1일에는 재단법인 ‘한국예수교전도관유지재단’에서 ‘한국천부교전도관유지재단’으로 법인 정관변경 승인신청서를 제출하였다. 그리고 간부와 교인들에게는 ‘부부생활 금지조캄가 내려졌다. 1990년 2월 5일에 박태선은 서울 백병원에서 셋째아들 박윤명을 후계자로 지목하고 사망한다. 영생불사를 외쳤던 박태선의 죽음은 신도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신도들의 이탈을 가져왔다. 현재 천부교는 시온그룹의 명칭을 가지고 재기를 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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