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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은 가라’ 교회안 약장수 문화 사라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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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은 가라’ 교회안 약장수 문화 사라져야
  • 정윤석
  • 승인 2015.10.12 06: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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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셉 목사 “교회는 명절처럼 모든 세대가 함께 있는 곳”

 2015년 10월 9일 우리들교회에서 진행한 국민일보 창간 27주년 기념국제컨퍼런스에서 김요셉 목사가 강연한 주요 내용입니다.

원천침례교회 안에는 12개의 교회가 있다. 12개 교회 중에는 1년 내내 부모와 자녀들이 함께 예배를 드리는 교회도 있고 연령별로 나눠서 한 주씩 돌아가면서 예배를 드리는 교회도 있다. 예배 자체가 어린이, 어른 구분이 없고 다양한 실험이 있다.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방식의 세대 통합 예배가 존재한다. 어떤 교회의 모임을 갖더라도 모든 세대를 고려하지 않는 공적 행사는 없다. 구역장(원천교회는 성도들간의 소그룹 모임을 ‘포도원’이라고 부르지만 독자들 이해를 돕기 위해 ‘구역장’으로 표기함: 편집자주) 훈련이나 성경공부를 해도 구역장(원천교회에선 포도원지기)과 함께 오는 아이들을 위한 모임까지 고려한다. ‘다음세대에게 성경적 믿음을 성실히 물려주는 순례자 공동체’가 교회의 비전 사명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교회에 대한 생각은 뿌리가 짧다. 지금처럼 장의자를 놓고 어른만 따로 모여 예배를 드리는 형태는 역사가 길지 않다. 구약 시대에서는 세대 구별이 없었다. 초대교회도 가정을 중심으로 모여 예배를 드렸다. 익숙한 것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다.

다음세대는 자동차의 유리와 같다. 운전자에게 차 유리가 반드시 필요한데 문제는 운전할 때 차 유리만 보면 안 된다는 것이다. 다음세대도 이와 같다. 다음세대를 너무 강조하면서 분리해서 보게 된다. 밖의 장면과 차창은 같아야지 분리하면 안 된다.

마치 다음세대가 객체가 돼 기성세대가 보는 다른 존재로 비춰진다. 그러나 교회는 세대의 차이보다는 공통점을 발견해야 한다. 어른들과 아이들의 공통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어른 예배에 아이들을 맞추거나 아이 예배에 어른들을 맞추라는 것은 아니다. 본질적인 공통을 찾자는 것이다.

무엇이 공통인가. 성경은 스토리이고 하나의 메시지다. 성경은 이야기다. 그 이야기는 단순하면서 심오하다. 우리가 그 메시지를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교회가 회복해야 하는 것은 복음의 드라마이고 줄거리다. 교회는 그 고민을 해야지 방법만 찾으려 하면 다음세대를 놓친다.

교회에서 효율성이 강조되고 성공중심주의가 힘을 얻으면서 중요한 것을 잃게 됐다. 성공지향적 교회는 다음 세대의 생태계를 파괴할 공산이 크다. 성공지향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성공지향으로 한국교회 생태계가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일은, 여기서 밀리게 된 세대가, 어린아이들이라는 점이다. 이것을 약장수 문화라고 한다. 그들은 '애들은 가라!'고 했다. 성공이 주안점이 되면, 쿠데타도 성공하면 혁명이 되는 시대, 성공이 높은 가치가 될 때는 희생이 일어난다. 그 안에서 다음 세대를 황폐화시킬 공산이 크다.

내가 수원중앙침례교회에 있을 때였다. 교회를 새로 지으면 사람들이 모였다. 그러면 더 커지고, 새로 지으면 또 사람들이 모여 교회는 더 커졌다. 그런데 항상 주일학교 모임 장소는 가장 밀렸다. 조명과 스크린이 잘 나오고 냉난방이 잘되는 곳은 본당이었다. 우리는 돈내는 어른 중심, 성공을 척도할 수 있는 세대에 우리의 힘과 에너지를 집중한다. 성공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한 영혼이 구원받는 거, 중요하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성공지향적인 우리의 결과가 지금 다음세대의 약화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성실은 다음 세대, 아니, 모든 세대의 생태계를 건강하게 하는 더 중요하고, 더 높은 가치의 목표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그런다. 성실하면 성공하잖아! 아니다. 인과응보적인 게 아니다. 성실을 추구하면 성공을 목표로 할 수 없다.

예수님은 성공을 보장할 수 있는 많은 것에 집중하지 않았다. 사회학자, 경영학자들이 이렇게 하면 교회가 부흥할 수 있는 비결과 내용을 공개하기도 했다. 아픔이 많은 여성들을 모아서 부흥에 성공한 교회가 있다. 신학적 은사를 추구하는 것에 집중하는 교회도 있다. 그러나 성경은 사회학 원리와는 정반대다. 동질성이 아니라 이질성을 가르친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섞는다. 같지 않는 사람들을 모아 공동체를 이루고 군락을 이루고 생태계를 형성하는 모습이다. 성장은 빠르지 않다. 그러나 다음 세대를 위한 견고한 공동체를 만든다. 예수님은 성공하지 않았다. 성실하셨을 뿐이다. 십자가를 지기까지 성실하셨다.

효율성은 동질성의 원리를 사용한다. 같은 사람끼리 모아 놓으면 잘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장에는 도움이 된다. 그러나 성장한다고 건강한 것은 아니다.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산업화 시대의 성장주의의 패턴을 따라왔다. 교회를 성장시키기 위해 애들은 가고 어른들만 오라고 했던 것이다. 효율성을 강조한 탓이다. 그러다 보니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지 못하고 생산품만 만들었다. 유기적인 교회 공동체를 이루지 못하고 생산품만 만들었다. 유기적 교회 공동체를 이루지 못했다.

오로지 성장을 목표로 하다보니 교회는 무엇인가를 계속 생산하고 복사해야 했다. 교회 성장에 도움이 되는 방법이 유행하면 모두가 따라하는 현상이 그것이다. 그러나 아니다. 어떻게 특정 교회의 성장이론이 모든 교회에 적용될 수 있는가. 지역 교회는 각각의 특성이 있다. 마치 상주의 곶감, 안성의 포도, 수원의 딸기가 있는 것처럼 교회도 교회가 속한 지역 특성을 찾아 일종의 ‘특산물화’되어야 한다. 만약 하나의 방법을 모든 교회에 적용한다면 그것은 ‘제품’이지 ‘열매’는 아니다.

원천침례교회는 교회의 생태계 복원을 위해 지난 20년 동안 실험을 했다. 개척 8년 만인 2003년부터 가족중심의 공동체적 교회를 본격적으로 추구했다. 성장이나 효율성을 포기했다. 청년부의 예로 들면 2년 전 아예 청년부서를 해체했다. 19세 이후 그들은 결혼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청년부에 소속한다. 교회안에 자신들만의 모습을 갖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어른들의 공동체로 흡수시켜버렸다. 다이나믹한 맛이 떨어졌다. 청년 부흥에 역행하는 것인지 모른다. 그런데 지금 청년들의 반응은 달라졌다. 살아 있는 교회를 체험한다고 말한다. 청년부에 소속됐을 때는 결혼의 실체를 볼 수 없었다. 결혼에 대한 로망은 있었으나 가정이 무엇인지 몰랐던 것이다. 그런데 함께 모여 보니 건강한 결혼과 가정을 보게 됐다. 때에 따라 이혼의 현실도 목도했다. 자녀에 대한 현실도 눈뜨게 됐다. 청년과 어른들과 아이들의 생태계를 연결하는 것이 건강하다는 게 우리의 경험이었다.

지금 교회마다 다음세대가 사라진다고 아우성이다. 하지만 세대 간 벽이 존재한다는 것이 더 위험하다. 소통의 부재로 인한 이데올로기 갈등과 오로지 학업과 입시 외에는 경험을 쌓지도, 간접적으로 접할 기회도 없는 아이들. 심지어는 앞뒤, 전후 세대가 소통의 단절을 넘어 서로 싫어하기까지 한다.

교회는 이런 갭(Gap)을 치유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마저 연령으로 세대를 나누고 분리된 예배를 고수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명절처럼 모든 세대가 함께 있는 곳이어야 한다. 교회에 가면 세대간 장벽을 허물고 모두 만날 수 있어야 한다. 교회는 태생적으로 다세대적이었다.

다음세대를 위해 다양한 도구나 미디어 등을 동원한다. 잠깐의 관심은 끈다. 과연 아이들에게 관심을 끌까. 잠깐의 관심은 끌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시선을 압도하는 화려한 영상보다 구수한 이야기를 더 좋아한다. 아이들은 교회가 최신 유행을 따르고 눈이 휘둥그레지는 이벤트를 개최하는 것에 열광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에게 관심이 있는지를 눈여겨본다. 한 영혼을 성실하게 품어주는 한 사람. 그가 다음세대의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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