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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 손기철 장로의 HTM에 대한 비판과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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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 손기철 장로의 HTM에 대한 비판과 제언
  • 기독교포털뉴스
  • 승인 2015.06.10 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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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학술원 제 46회 월례회 및 발표회 - 김재성 교수(국제신대 부총장, 조직신학)
▲ 기독교학술원 제 46회 월례회 및 발표회 발제자들(가장 좌측이 김재성 교수)

서론
오방식 교수는 손기철 장로의 저술을 중심으로 비교적 온건한 문제제기와 우려를 제시하고 있다. 점점 더 혼탁해지는 한국교회의 건전한 성경적 성령론과 사역의 정립을 위해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도록 조언하는 내용이어서 심사숙고하면서 받아들여지기를 소망한다.

1. 오방식 교수는 사랑의 일치라는 개념으로 손기철 장로의 “헤븐리 터치”를 점검하는 독특한 접근 방법을 제시하였다. 매우 흥미로운 관찰이요, 평가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오 교수는 평가의 기준으로 기독교의 본질적인 관점, “사랑의 일치”라는 개념을 먼저 배치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과의 사랑의 일치”라는 것이 목회신학에서 어떻게 어느 분야에서, 혹 설교사역에서, 혹 목회자의 지도력이나 행정부분에서, 혹 예배사역에서 과연 어떤 사역에서 중심이 되어야만 하는 원리인지에 대해서는 다소 모호하다. 더구나, 손기철 장로의 사역에서 드러나는 핵심적인 문제점들을 검증하는데서 있어서도 가장 성경적인 분석적 모델인지에 대해서는 다소 미흡하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마태복음 5:43, 19:19, 22:39, 약 2:8) 거듭 말씀하셨는데, 그런 개념으로 손기철 장로의 사역을 분석하려는 것인지에 대해서 충분한 논의와 평가가 없다.

2. 성령의 이해와 사역에 대한 부분에서는 손기철 장로의 문제점을 오 교수가 잘 지적하고 있다. 성령의 부으심과 인치심, 능력전이를 혼동하고 있는 손기철 장로의 성령이해는 많은 혼란과 혼합적인 개념이 숨어있다. 성령세례, 성령충만, 성령의 인치심, 임재 등의 용어들에 대해서 신약성경에서 명확하게 관계와 상황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런 개념들에 대해서 손 장로의 구분과 해석에 대해서는 신뢰할 성경적 근거가 모호하다. 결정적으로 손 장로가 오해하고 있는 것은 “능력전이”라는 개념과 행위다. 성령님의 주권적 사역을 인간이 주체적으로 대체하는 행위라서 크나큰 문제가 발생한다. 심지어 오순절 은사운동을 하는 미국 하나님의 성회 교단에서조차 성령님의 주권을 훼손하는 행위여서 금지하기로 결정한 것인데, 이런 점에서 손 장로의 성령론은 종합적으로 정리되어야할 부분들이 많다는 지적이다.

3. 손기철 장로가 사용하는 “킹덤 빌더”와 “킹덤 멘탈리티” 등의 문제점을 오방식 교수가 지적하였는데, 정확한 지적이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구속 역사가 담겨있으며 성경전체가 연계된 엄청난 내용이며, 다양한 신학자들의 논의가 참고되어야만 온전한 성격을 이해할 수 있다. 특히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와의 연계성이 핵심으로 드러난다 (마 16:18-19). 그러나 손기철 장로가 사용하는 왕국개념에는 문제가 심각하다. 여러 한국의 신학자들이 비판하고 있듯이, 그가 인용하는 용어들이 신사도 운동가들이 사용한“왕국”개념에서 나온 것임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킹덤 멘탈리티”라는 용어의 경우에는 손기철 장로가 만들어서 사용하는 것이라면 더욱 더 큰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하나님의 나라와 관련된 용어들은 구속계시의 연속성, 통일성, 점진성을 고려하여 해석되기 보다는, 손기철 장로에 의해서 주로 영어단어로 직접 사용되고 있으면서, 전혀 한국교회 성도들의 신앙정립을 위해서 신학적으로 정립된 용어가 아니므로, 개인적인 주관적 관점을 표현하는 매우 어설픈 술어적 혼돈일 뿐이다.

거의 즉흥적이면서도 반복적인 감정적 열광주의, 매우 인본주의적인 간청을 흥분상태에서 외치는 “헤븐리 터치”를 연출하는 것이 바로 “킹덤 멘털리티”인가? “헤븐리 터치”라는 집회의 여러 행위들과 용어들과 내용들이 과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성경적 것인가? 미국 일부 극단적인 은사운동가들의 행태를 교묘하게 수입한 것이 아닌가? 사도적인 사역에서 그렇게 했던가? 초대교회와 정통 교회가 추구해온 복음의 사역이었던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의 나라는 의롭고, 선하고, 평안이 주어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하심으로서 이 세상에서 드러난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롬 14:17).

때로는 누룩과 같고, 때로는 겨자씨와 같으며, 때로는 성령의 열매로서 드러난다. “하늘로부터 내려다보는 관점”이라는 “킹덤 멘탈리티”라는 것을 가지게 되는 것인가? 우리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성령의 거듭난 사역으로 인해서 중생하고 변화를 받아서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이젠 자아가 아니라, 믿음으로만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런 성도에게 있어서 또 다른 멘탈리티가 필요한가? 성도는 믿음의 주, 온전케 하시는 분,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영광을 돌리고 살아가고자 한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함을 확신한다. 왜 또 다른 멘탈리티가 있어야 하는가? 참된 믿음을 가진 성도는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인데, 또 다른 멘탈리티란 무엇인가?

4. 손기철 장로의 사역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강조가 부족하다는 오방식 교수의 지적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필자는 한걸음 더 나아가서, 치유에 관련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치유와 관련된 내용들만을 인용하는 것은 전체적인 기독론을 왜곡하는 불건전하고도 왜곡된 기독교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사람들이 원하고 갈망하는 치유사역만을 중점적으로 증거하는 것은 세속화된 인본주의, 개인체험주의, 극단적인 개인 이기주의, 현재적 기복주의, 왜곡된 축복이다. 불건전한 사람중심의 주관적인 열정주의와 열광주의가 혼란스러움을 더 하다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면, 개인적인 영웅주의에 빠지고 말 것이다. 어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것인가?

성경적인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전체 사역과 가르침을 복음의 핵심으로 제시한다; 즉 하늘에서 인간으로 낮아지시고 영광의 보좌를 비우신 성육신, 인격적인 성장과 성숙, 모든 인간과 같이 고난 당하심, 시험을 이겨내심, 고통 가운데서 참고 인내하심, 십자가와 죽으심, 부활과 승천 등이 전체적으로 다 연계성을 가지고서 진행된 구원사역이다. 그런데, 손기철 장로의 사역에서는 성도가 직접적으로 연계되어져서 배우고 닮아가야 할 모든 그리스도의 사역들이란 이런 것들이 전혀 중심 진리로 언급되지 않고, 단지 질병 치유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일 뿐이다. 병고침과 치유는 분명히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초월적인 능력이요, 은총이다. 그러나 현세의 아픔과 고통을 벗어나려고 지나치게 열광하는 사람들의 신앙은 얼마든지 왜곡되고 치우칠 수 있다. 참된 그리스도의 사람들, 즉 구원받은 성도들은 무수한 시험을 당해야만 하고, 끊임없이 고난을 받아야만 하며,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나그네와 행인으로서 모욕과 비난을 당하면서 좁은 길, 좁은 문을 지나간다.

그러나 비전과 꿈을 가지고 마침내 예수님처럼 마지막에 승리하게 된다. 히브리서 5장 7-9절에,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신다”고 하였다. 성도의 고난과 역경과 시험은 마땅히 온전하게 되어나가는 성화의 과정에서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적인 자랑이나 승리감에 도취되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서 승리할 수 없다. 이런 복음의 핵심적인 내용들이 감춰지고, 그저 개인적인 병고침에 매달리는 것은 기독교적인 신앙행위라고 볼 수 없다.

요한복음 16장 14절에서, 성령은 오직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증거하고 영광을 돌리는 사역을 하신다고 가르친다 (요 14:26, 요 15:26). 5. 추가적인 제안: 문제를 충분히 제기하였으므로, 미래 방안에 대한 제안이 필요하다.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손 장로의 사역에 대해서 제시하려는 것이다. 지금 가장 최선의 길은 손 장로가 속히 정상적인 목회사역의 궤도로 전면 수정하는 것이다. 여러 용어와 사역들이 정통 교회와는 다른 치유사역에만 집중하는 단체가 되므로써, 각종 의구심과 혼란만을 야기시킬 것이 아니라, 손 장로가 정상적인 신학훈련을 받아서 말씀증거를 중심으로 함께 해야만 한다. 지난 세기의 복음 사역자들 중에는 가난하고 기회를 놓쳐서 정통 신학을 수학하지 못하여 순수한 복음을 왜곡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 시대는 얼마든지 성경을 배울 수 있는 시대이다. 다시 반복하지만, 지금 손 장로에게 필요한 것은 정통 신학을 수업하고서 인정을 받은 후에, 가르침과 사역을 하는 일이다. 우리는 한국교회에서 수많은 은사사역자들이, 특히 치유은사를 발휘했던 분들이 종국에는 넘어지고, 한국교회에 피해를 입히는 모습을 역사적으로 목격하여 왔다. 손 장로가 영향을 깊이 받았다고 말하는 존 윔버는 세계적인 성령신학자가 전혀 아니다. 일부 사람들에게는 그가 영웅일지 모른다. 그러나 극히 소수에 불과하며, 편파적인 치유 사역자로 잠시 혼란을 야기하다가 끝이 났다. 윔버야말로 정통신학을 공부하지 않았기에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다가, 풀러신학교에서 피터 와그너와 함께 개설한 치유집회 강좌폐쇄와 함께 쫓겨나고 말았다.

논평자는 손 장로의 신학적인 안목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 저급한 은사주의자들이 일으키는 혼란과 혼돈을 그대로 흉내내는 꼴이 되고 마는 것이다. 신학적 훈련을 받지 않았다는 점에서 손 장로의 여러 가지 저술은 정교한 신학적 논의를 거치지 않은 “오류”들이 드러나고 있다. 앞에서 지적한 바, 성령의 능력을 전달하는 전이의 개념, 특히 「기름부으심이 넘치는 치유와 권능」에서 성령의 내주, 구원 (칭의 혹은 중생)과 구별되는 성령의 세례와 충만, 그리고 기름부으심이라고 가르치면서, 3단계적으로 설명하는 것에 대해서 필자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손 장로의 「왕의 기도」는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문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입술로 선포되는 “치유하고 관계회복하며, 하늘의 축복을 누리고 묶임을 끊는 기도”라고 규정했는데, 이런 개념규정은 통치신학과 번영신학에 편승한 표명일 뿐이다. 왜 우리가 기도해야만 하고, 왜 하나님께서 기도를 사용하시는가? 기도론에 대한 성경적 조망이 있어야만 하는데, 기도의 성경신학적 성찰이 결어되어 있다.성경을 강론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원어 연구가 기초되어야만 한다. 동시에 말씀을 증거하는데 구약신학과 신약신학의 종합적인 안목이 필요하다.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분들이 가장 혼란을 겪는 부분이 삼위일체론이다. 오묘한 말씀이기에 인간의 한계를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현대신학자들 사이에서도 기독론, 신론, 특히 삼위일체론, 인간론, 성령론, 교회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 등에 있어서 전반적으로 혼란된 개념들이 너무 많다. 손 장로의 경우에, 삼위일체론적인 관점에서 성부, 성자, 성령을 이해하여야 하는데, 성령을 “한 분”이라고 하는 그의 용어사용은 문제가 있다. 성령은 인격을 가지신 “한 위격”이라고 해야만 합당하다. 이런 용어들은 헬라어 원문과 함께, 초대교회와 교리사적인 연구가 수반되어져야만 바르게 가르칠 수 있다. 끝으로, 성령의 사역 중에서도, 성경의 많은 가르침 중에서도, 치유보편주의만을 강조하는 손기철 장로의 헤븐리 터치는 누가 어떻게 재정을 조달하고 관리하며, 운영과 조직은 기독교 단체에 걸맞게 투명하게 공개하는가? 이 단체가 어떻게 해서 선교단체인가? 회계감사와 정기적인 예산, 결산을 공시하는가? 이런 의미에서, 필자는 이미 미국 신사도 운동가들이나, 직통계시파를 “공동체” “친교모임“ ”운동“ (fellowship, community, movement)등이라고 호칭하고 있음으로, 예수님의 몸된 “교회”(Church)라고 할 수 없다고 하였다.

비록 성령의 은혜를 입어서 거듭났다 하더라도, 여전히 옛사람의 습성을 갖고 있는 부패한 인간들이 사역자들로서 전면에 나서고 있는 한, 그 어떤 사역자라도 전적으로 의롭다고 할 수 없는 그저 인간일 뿐이다. 그러므로, 어떤 특정한 사역자의 절대적인 영향 하에 운영하는 기관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 아니다. 완전하게 순수한 마음으로 내려놓고, 가난하게 모든 것을 다 주님의 것으로 공개하지 않는 단체는 결국, 그 특정한 사람의 왕국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22-23).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령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점술과 헛된 것과 자기 마음의 거짓으로 너희에게 예언하는도다” (예레미야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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