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19-12-11 03:00 (수)
손기철 장로의 저서에 나타난 문제점
상태바
손기철 장로의 저서에 나타난 문제점
  • 평신도이단대책협회 이인규 대표
  • 승인 2014.04.14 05: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 평신도이단대책협회 대표 이인규

손기철 장로(헤븐리터지미니스터리 대표, 온누리교회 장로)는 그동안 주로 치유사역을 해왔다. 필자는 치유사역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기에 오늘날도 치유의 기적은 일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치유사역자들이 자신의 치유 행위와 관련된 특별한 교리를 주장할 때는 조금 달라진다. 치유의 배경과 바탕이 되는 나름대로의 교리와 사상을 말한다면 그것이 과연 성경적인지, 한국교회가 받아들일 만한 것인지 성도들이 분별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손기철 대표는 최근에 자신이 갖고 있는 교리와 사상을, <치유기도>, <알고싶어요 성령님>, <기적을 일으키는 믿음>, <기름부으심>, <왕의 기도>(이상 규장 출판사) 등 적잖은 저서를 통해 나타내왔고 이와 관련한 제보와 질의가 필자에게 많이 들어오고 있다.

▲ 헤븐리터치미니스터리의 대표 손기철 장로(HTM 홈페이지 갈무리)

손기철 대표의 몇 권의 책을 읽는 중에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발견되었고, 특히 예수님도 기름부음을 받음으로 그리스도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심각한 문제점을 느꼈다. 그의 교리적 사상을 요약하자면, (1) 영·혼·육을 분리하는 이원론 (2) ‘외부로부터 임하는 성령’(그는 이것을 ‘성령체험’이라고 설명한다)에 대한 비성경적인 주장 (3) 신사도운동의 임파테이션과 유사한 기름부음 (4) 신사도운동의 신비주의적인 집회 (5) 하나님나라에 대한 왜곡과 불균형적인 이해 등이다. 먼저 손 대표의 사상의 문제점을 좀더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 한국교회 주요 교단이 이단으로 규정한 지방교회·귀신파·다락방의 이원론적 인간론을 살펴보고자 한다.

1) 영에는 하나님이 거하고 육에는 사탄(죄)이 거한다는 이원론

인간의 구성요소에 따른 신학적인 견해에는 이분법과 삼분법이 있다. 물론 필자는 교단의 차이에 따른 다양한 신학적인 견해를 존중한다. 이분법이든 삼분법이든 그것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인간을 영과 혼과 육의 세 부분 또는 세 장소로 분리시키는 이원론적인 견해는 조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즉 살아있는 전인적인 사람을 영과 혼과 육의 장소적인 개념으로 분리시켜, 영에는 성령 하나님이 거하고 육에는 사탄 또는 죄가 거한다고 가르치거나, 혼과 육은 성령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거나, 영은 이미 구원을 받았지만 혼과 육은 구원을 받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지방교회, 베뢰아, 구원파, 다락방의 주장을 살펴보자.

(지방교회의 주장)
“죄는 사단의 체현이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체현이다. 이 두 체현들이 우리 안에 있다.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리스도는 우리 영 안에 있고, 사단의 체현인 죄는 우리 육신 안에 있다.”(위트니스 리, 세부분의 사람의 생명이 되시는 삼일하나님, 73쪽)

“우리는 우리 존재에 세부분이 있음을 알고 있다. 당신은 사단이 그의 거처를 당신의 몸, 즉 당신의 육체 속에 만들었다는 것을 아는가? 그리고 당신은 주님께서 당신의 영을 그분의 거처로 삼으셨다는 것을 아는가?”(위트니스 리, 왕국, 218쪽)
  
사단은 우리 몸 안으로 들어왔으며, 우리 몸으로부터 우리 혼에 대해 통제를 행사하고 있다. 이같이 사단은 밖에서부터 안으로 역사한다. 주님은 반대방향으로 즉 안에서부터 밖으로 역사하신다. 어느날 주님은 우리 존재의 중심이요 축인 우리 영 안에 들어오셔서 그것을 그분의 거처로 삼으셨다.”(위트니스 리, 왕국, 217쪽)

(베뢰아의 주장)
“우리의 심령은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졌기에 하나님의 처소가 될 수 있지만 육체는 하나님의 처소가 될 수 없습니다.” (김기동, 마귀론, 하 154쪽)

귀신은 사람의 영혼 속에는 들어오지 못하지만 육체 안에는 들어올 수 있습니다.”(김기동 마귀론 하 63쪽)

(구원파의 주장)
(1) 영혼의 구원: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영혼의 구원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육신의 죄성은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2) 구원받은 사람도 죄를 짓는 이유: 사단은 공중권세를 가진 자이며 인간육체를 통해 역사합니다.
(3) 구원받은 사람이 범하는 죄의 유형 첫째는 부지 중에 짓는 죄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육신이 아직 죄성 가운데 있기에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올라오는 죄입니다 (생명의말씀 선교회 홈페이지, 이요한, 대한예수교복음침례회)

(다락방의 주장)
(1) 영이신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요 1:14).
(2) 그러므로 그분은 죄가 없고 그 영은 하나님이십니다(고전 15:45).
(3)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4) 예수는 신성과 인성을 가진 분입니다(마 16:16~19) - 영은 하나님이시고 몸만 사람의 몸을 입고 계신 분이 예수님이다.” (복음편지,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아예 오신 것이다. 우리가 실패하는 것은 육이고, 우리의 마음이지 하나님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으신다” (류광수, 현장복음, 2과 - 새로운 생명 (3) 성령의 내주란 무엇인가?).

헬라철학적인 이원론자들은 이 세상의 근원을 영(선)과 물질(악)의 대결구도로 분리하며, 이 세상을 하나님과 사탄의 두 세력으로 양분하려고 한다. 즉 세상의 악, 질병, 사고나 불행은 모두 사탄으로부터 온다고 간주하며, 육체는 악한 것으로 간주하고 죄가 거하는 좌소로 간주하였다. 그러한 헬라철학은 초대교회 영지주의 이단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하나님이 우리를 죄인이라고 할 때에는, 우리의 육체만이 죄인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전인적인 인격이 하나님 앞에 죄인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육은 그 자체만으로 악하거나 악의 좌소가 되지 않는다. 예수님이 죄있는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다는 것은, 예수님의 육체에 죄가 존재한다는 뜻이 아니며, 인간 자체가 죄인이라는 뜻이다. 성경에는 ‘육체’라는 단어는 대부분 전인적이며 총체적인 인간 자신을 뜻하였고, 영이신 하나님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표현된다. 성경은 선악의 문제에서 육체와 영의 구별을 하지 않는다. 육만 더러운 것이 아니라 영도 더러운 것이며 전인적인 인간이 곧 더러운 것이다. 다시 말하여 육체에 사탄이 거하며, 죄가 있다고 하거나, 영은 죄가 없고 이미 구원을 받았으며, 영에 하나님이 거한다는 주장은 성경적이지 못하다. 우리의 죄는 전인적인 마음에 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살전 5:23)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고후7:11)

또한 성경은 육체에 사단이 거한다고 말하지 않으며 예수의 생명이 우리 육체에 나타난다고 말한다.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고후4:11)

또 육체만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과 혼도 죄를 짓는다.

“악을 떠나는 것은 정직한 사람의 대로이니 자기의 길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soul)을 보전하느니라.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spirit)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잠 16:17-18)

“내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내 영혼(네페쉬)을 고치소서 하였나이다”(시 41:4)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spirit)을 감찰하시느니라” (잠 16:2)

마찬가지로 육체가 죄악되고 더러운 것이 아니라, 육체도 영과 함께 전인적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을 찬양할 수도 있다. 이러한 성경적인 증거는 얼마든지 있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시63:1)

2) 손기철 대표의 이원론

손기철 대표는 구원파의 주장과 같이 영은 이미 구원을 받았으며, 혼과 육은 아직 구원을 받지 못하였다고 주장하며, 또 지방교회나 베뢰아와 같이 우리의 영 안에 성령이 거하며, 육과 혼에 죄의 세력과 악한 영들이 있다고 분리시킨다.

“우리는 이미 구원받았고, 성령체험을 하기 위해 모든 잘못된 것을 회개했으며, 갈망함으로 지금 구하고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과 독대하여 성령의 임재를 간절히 구할 차례입니다.
“주님, 제가 이 시간에 주님이 약속하신 성령이 임하시는 체험을 하기 원합니다. 비록 내 영은 구원받았고, 내 영 안에는 이미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만 내 혼과 육에 찾아주시는 성령체험 없이는 일상에서 그리고 모든 삶의 모든 부분에서 주의 자녀로서 주의 뜻을 나타낼 수 없습니다. 간절히 사모하오니 지금 이 시간에 임하시옵소서”(알고싶어요 성령님, 89쪽).

“성령님이 빛으로 사랑으로 영광으로 임하시면 하나님의 성전된 우리 육신이 반응하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빛이 임하실 때 우리의 육신을 붙들고 있던 악한 영들이 떠나가기 때문에 보기에 아름답지 못한 현상들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알고싶어요 성령님, 90쪽).

“그렇지만 우리는 죄 가운데 태어났고,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죄사함을 받은 존재입니다. 우리의 영은 새롭게 되었지만, 우리의 혼과 육은 여전히 죄의 세력에 노출되어 있고 자신의 상처와 욕심으로 죄를 짓게 됩니다. 이때부터 악한 영은 우리 자신이 지은 죄와 상처에 대해 본격적으로 시험하게 됩니다”(알고싶어요 성령님, 128-129쪽).
  
악한 영들은 그리스도의 영이 계신 우리의 영에는 결코 들어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여전히 상처가 있고 쓴뿌리가 있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삶을 사는 한, 죄의 세력은 우리의 육신을 죄의 법 아래로 사로잡기 위해 늘 우리 주위를 돌며 틈을 노립니다. 그러다가 우리가 유혹이나 두려움에 묶이거나 거짓말이나 참소에 넘어갈 때에, 그 죄를 타고 들어와 우리의 혼과 육을 사로잡고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됩니다. 그들은 우리가 우리 영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의 인도함을 받아 삶의 태도와 행동을 바꾸고 악한 영을 쫓아내는 비밀을 깨닫게 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 합니다”(알고싶어요 성령님, 132쪽).

“우리가 중생할 때 우리는 영적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요 3:6). 구원 받은 후, 비록 우리의 혼과 육은 여전히 죄의 세력 가운데 놓여 있다 해도, 우리의 영 안에는 2천년 전 육신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의 영 안에 계신 바로 그 하나님의 영이 계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내 영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의 영을 의식하고, 그분의 말씀을 통해 자기 자신과 세상을 보는 것이 임재의식입니다. 끊임없는 하나님의 임재의식 가운데 살아가는 훈련이 깊어지면 우리가 일상에서 그분께 예배하고 그분과 친밀함을 나누는 것이 가능해 집니다”(알고싶어요 성령님, 182쪽).

성경에서 바울은 거듭난 사람과 거듭나지 못한 사람을 대조시키면서, “육신에 있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다”고 말하였는데, 성경에서 ‘육체’라는 표현은 고깃덩어리의 부분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거듭나지 못한 인간 자체’를 말함으로서 ‘성령 하나님’과 대조한 것이다.

"육체의 소욕(인간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하나님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5:17)

즉 본문은 인간의 육체와 영을 대조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를 가진 인간과 ‘영’이신 성령하나님을 대조하는 것이다. 또한 ‘영’(프뉴마)이란 인간의 내적인 부분으로서 신적 실재와 접촉하는 직접성과 관련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성령을 가리킨다. 앞서 말하였듯이, 바울이 말한 ‘육신을 좇는 소욕’의 개념은 사람을 육과 영으로 분리하고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와 보호를 좇는 삶’과 거듭나지 않은 사람을 구별한다. 바울은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함을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다"고 표현한다. 다시 말하여, 바울이 "영에 있다"고 하는 것은 영과 육을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거듭남’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다시 말하자면, ‘육신에 있는 자’는 거듭나지 못한 자를 뜻한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8:9)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2:14)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요3:6-7)

즉 바울이 말한 ‘육체의 소욕’이란 영혼을 제외한 고깃덩어리만의 육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며, 성령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에 반대되는 총체적인 인간의 소욕을 말한다. 영이 거듭난다는 것은 없었던 영을 갖게 된 것을 뜻하지 않는다. "여호와께서 그 영을 강퍅하게 하셨다"(신 2:30)는 것처럼, 우리가 불신자였을 때에 그 ‘영’이 없거나 죽은 것이 아니라, 그 영이 하나님과 교제가 끊어졌음을 뜻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즉 하나님과 단절된 영은 죽은 것이며, 그것이 곧 ‘육신에 있는 자’로 표현된다. 하나님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실을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했을 때에, 그 죽음은 육체적인 죽음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영적인 죽음도 함께 포함되어졌다. 바울이 허물과 죄로 죽었으나(엡 2:1) 하나님에 대하여 산 자가 되었다(롬 6:11)고 말하였을 때에, 영과 육을 구별하고 분리하자는 뜻이 아니며, 전인적으로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이다(고후 5:17). 물론 인간은 죽어서 영혼과 육체가 분리된다. 야고보서 2장 26절과 같이, "영혼없는 몸은 사실상 죽은 시체"이다.

또한 손기철 대표는 성령이 내주하는 거듭난 성도들에게도 영에는 성령이, 육과 혼에는 악령이 동시에 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이러한 주장은 비성경적이다. 손기철 대표에게는 성령이 성도들에게 내주하는 이유가 개인에 대한 구원의 보증과 인도하심보다는 오히려 귀신을 쫓고 권능을 행하기 위한 신비적인 것만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요일 4:4)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요일 5:18)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약 4:7)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 (살후 3:3)

3) 성령세례와 성령체험에 대한 손기철 대표의 문제점

“개혁복음주의에서는 우리가 중생할 때(혹은 물세례를 받을 때) 성령의 내주하심을 성령세례로 생각합니다. 즉 물세례를 받을 때 성령세례도 임한다는 입장입니다. 한편 오순절 은사주의에서는 우리가 중생할 때에 이루어지는 성령의 내주하심과 성령세례를 다른 것으로 보며(우리가 물세례를 받을 때 성령의 내주하심과 성령세례가 동일하게 임할 수도 있지만) 대개 물세례 이후 별도의 경험으로 성령세례가 임한다고 봅니다. 저는 성령의 내주하심을 성령세례로, 오순절 은사주의에서 말하는 성령세례를 성령체험이라고 부르고자 합니다. 성령체험(성령의 임하심, 성령강림)은 외부로부터의 성령의 임하심으로 그 혼과 육이 성령님께 사로 잡히는 체험을 말합니다. 오순절 이후부터는 성령세례와 성령체험이 동시에 임할 수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성령세례 이후 진정한 성령체험을 하게 됩니다” (알고싶어요 성령님, 51-52쪽).

우선 손기철 대표의 신학적 오류부터 지적하여야 할 것 같다. 손기철 대표가 말하는 개혁복음주의는 아마 개혁주의와 복음주의를 총칭하는 것 같다. 어쨌든 손기철 대표의 신학적인 무지와 달리, 개혁주의나 복음주의에서는 물세례를 받을 때에 성령세례도 함께 받는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다만 개혁주의나 복음주의는 성령세례를 단회적인 성령내주로 보며, 성령충만은 이미 내주한 성령의 Full-fill 상태로 보며 반복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고 가르친다. 또 오순절 은사주의에 대해서도 손기철 대표는 잘못된 오류를 주장하고 있는데, 오순절 계열의 교회와 개혁주의, 복음주의가 모두 동일하게 물세례와 성령세례는 다르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오순절 계열에서는 성령내주와 성령세례를 동일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가르친다. 손기철 대표는 개혁주의나 복음주의도 사용하지 않고, 오순절도 사용하지 않는 ‘성령체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성령체험이 ‘외부로부터 임하는 성령’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거듭난 사람에게 성령이 내주하여 있으니 성령충만할 수 있으며 성령체험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내부로 임하는 성령이 따로 있고 외부로 임하는 성령이 따로 있는가?

4) 성령체험에 대한 이상한 주장

손기철 대표는 계속 성령체험을 성령내주와 다른 것으로 구별하여, 기름부음은 위로부터 성령이 임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성령내주와 그리스도의 나타남을 다른 사건으로 구별하는데, 그렇다면 성령 내주로는 그리스도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뜻인가?

그 성령님은 지금 우리가 기도할 때에도 위로부터 임하십니다. 그때 우리의 혼과 육이 영의 통치함을 받는 것을 비로소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지금도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와 함께 또 온 우주에 편재하시는 분입니다. 특별히 그 성령님이 우리에게 임하셔서 우리를 강력하게 사로 잡으실 때에 우리는 혼적 의식을 내려 놓게 됩니다. 그 때 이미 우리 심령 안에 계신 성령님으로부터 생수의 강이 흘러나와 우리의 혼과 육이 그리스도의 영의 인도함을 받게 되고 비로소 그리스도가 나타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알고싶어요 성령님, 35-36쪽)

“그러나 동일한 성령님이시지만 성령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것과 우리가 매일의 삶 가운데 그리스도의 영의 인도함을 받는다는 것은 다릅니다. 우리의 영이 거듭나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지만 내주해 계시는 성령님이 전부가 아니라, 성령님이 위로부터 임하셔서 우리의 혼과 육을 사로잡은 주권적인 역사가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실제적으로 그리스도의 영의 인도함을 받는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알고 싶어요 성령님, 48)

우리의 혼과 육이 온전히 사로 잡히는 체험적 과정을 통해 우리 안에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이 생깁니다. 성령체험을 통해 비로소 하나님의 영에 기초한 새롭게 변화된 자기 의식을 경험할 때 우리는 자기 죄성이 이미 없어졌으며, 우리 자신의 영 안에(자신의 혼과 육이 아니라) 새로운 하나님의 성품이 내재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알고싶어요 성령님, 58쪽)

장로교인인 손기철 대표의 주장은 개혁주의나 복음주의적인 입장도 아니고 그렇다고 오순절교회와 같은 주장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성령님이 위로부터 임하는 것이 성령체험이라고 주장하면서 성령내주와 그리스도의 나타남을 다른 것으로 구별하기 때문이다.

또 손기철 대표는 많은 그리스도인이 그들의 삶 가운데 그리스도의 영의 인도함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온전하지 못한 가르침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결과적으로 성령내주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분명히 손기철 대표의 성령체험에 대한 주장과 이원론은 정통신학적인 내용이 아니다. 그렇다면 손기철 대표의 사상과 다른 정통신학을 가르치는 개혁주의와 복음주의에서는 온전하지 못한 가르침 때문에 그리스도의 영의 인도를 받지 못한다는 것인가? 말을 바꾸면, 정통신학이 말하는 성령내주로는 그리스도가 나타날 수 없고 그리스도의 영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인가? 손 대표의 주장은 결과적으로는 지방교회, 또는 베뢰아나 다락방의 주장과 유사하다는 것이 문제이다.

“예를 들면 성령님이 임하실 때 쓰러지거나 몸을 떨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기침하거나 우는 일들을 보며 성령님이 역사하신다면 어떻게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느냐고 반문합니다. 그러나 그런 현상은 성령님이 우리의 혼과 육에 임하셨기 때문에 일어나며 또는 그 결과로 우리 육신 안에 있던 악한 영들이 드러나는 것입니다”(알고 싶어요 성령님, 45쪽)

Q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삶 가운데 그리스도의 영이 인도함을 받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A 지나온 역사를 볼 때 그것은 성령에 대한 편견적 이해와 성령사역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 그리고 온전하지 못한 가르침 때문입니다. 그것이 결국 말씀과 성령을 분리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알고싶어요 성령님, 63쪽)

“흔히 자신 안에 성령님이 이미 계시기 때문에 더 이상 위로부터 임하시는 성령체험이 필요없으며,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 나타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을 듣게 됩니다. 그러나 비록 우리 자신의 영 안에 성령님이 계신다고 하더라도 아직 온전히 구원받지 못한 우리의 혼과 육의 헌신과 노력으로 그 성령님을 알 수 없고, 그 분이 나타나게 할 수도 없으며, 나타나시는 것을 알지도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알고싶어요 성령님, 58쪽)

“성령체험은 누구나 추구해야 합니다. 칭의와 성화는 우리의 회개와 거듭남으로, 우리 안에 계신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미 완성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적으로 성화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성령체험이 필요합니다. 이 성령체험은 중생 또는 물세례와 동시에 또 이후에 이차적으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알고싶어요 성령님, 73쪽)

놀랍게도 손기철 대표는 칭의와 성화는 우리의 회개와 거듭남으로 이미 완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체험이 있어야만 실제적인 성화의 삶을 살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이것을 2차적으로 체험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성령내주만으로는 아무리 헌신하고 노력해도 성령님을 알수도 없고 나타나게 할 수도 없고 나타나도 알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결국 손 대표는 성령내주만 알고 있는 성도들은 도저히 성령을 알 수 없고 자신이 주장하는 위로부터의 성령을 체험해야만 성령을 알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정통신학적인 성령론으로는 실제적인 성화의 삶을 살 수 없다는 이상한 주장을 말하는 셈이다. 아래 글을 보면 손기철 대표는 분명히 성령세례와 성령체험을 다르다고 말하며, 사람들이 잘못된 견해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면 왜 성령체험을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왜 성령체험을 구하지 않을까요? 첫 번째로는 성령체험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성령세례와 성령체험을 혼동하여 성령체험을 하지 못했는데도 이미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성령님이 누구신지 모르고,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삶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세 번쩨로 자신의 혼적의지로 통제하지 못하는 영적인 것에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알고싶어요 성령님, 76-77쪽)

심지어 손기철 대표는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웨슬레의 회심 사건을 잘못 인용하고 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많은 신앙선배들의 삶을 보더라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존 웨슬레의 경우 그는 예수님을 영접했고 선교사로서 각별한 수고와 헌신을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믿었을 때 그에게 성령님이 함께 하지 않으신 것이 아닙니다. 그에게 성령님이 내주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행위와 노력으로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려고 했을 때 그는 아무 열매도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올더스케이트의 모라비안교도 집회에서 뜨겁게 성령을 체험함으로 그의 혼과 육이 영의 통치함을 받을 때부터 그에게 기름 부으심이 임했고 놀라운 성령의 열매가 맞히기 시작했습니다” (알고싶어요 성령님, 35쪽)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손기철 대표는 사실을 잘못 파악하고 있다. 존 웨슬레는 올더 스케이트 집회를 참가하여 사회자가 마틴 루터의 서문에서 롬 1:14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말씀을 읽을 때에 회심을 한 것이며, 웨슬레는 손기철 대표가 말하는 혼과 육이 영의 통치함을 받는 이상한 성령체험을 하거나 특히 기름부음을 받은 것이 아니다.

▲ 집회 중인 손기철 장로(HTM 홈페이지 갈무리)

5) 손기철 대표의 기름부음(크리스마, anointing)

손기철 대표는 기름부음이라는 용어도 성경과 전혀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손기철 대표가 말하는 기름부음은 소위 성령체험으로서 신사도운동이 주장하는 기름부음과 같은 것이다.

“또한 기름부음을 받은 자의 안수를 통해서도 성령체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물세례는 받았지만,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했을 때 성령체험을 하게 된 예를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행8:14-17, 행19:5-6 인용) (알고 싶어요 성령님, 53쪽)

안수를 통하여 성령을 체험한다는 이러한 주장은 신사도운동의 임파테이션과 동일한 주장이다. 성경에서는 안수라는 행위나 의식을 통하여 성령체험을 한 것이 아니라, 안수라는 기도를 할 때 성령을 받게 된 것이다. 손기철 대표는 행 8:12-17을 인용하여 안수를 통하여 성령을 받았다고 주장하지만, 행 8:15에서는 “성령받기를 기도하니”라고 기록되어, 기도를 통하여 성령을 받은 것이며, 특히 행 8:18에서 시몬이라는 자가 안수를 통해서 성령을 받는 줄로 착각하여 돈을 주고 그 능력을 사려고 하다가 행 8:20에서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라는 꾸중을 듣게 된다. 손기철 대표는 하나님의 선물을 안수를 통해 받았다고 생각하는 시몬과 같다. 행 19:5-6에서도 “그 전에는 성령을 받은 적이 없었다”는 구절로 볼 때에 그 사건은 성령체험이 아니라, 성령의 내주로 보아야 하며, 안수라는 의식을 통하여 성령을 받은 것이 아니라, 안수를 할 때 성령이 강림하신 것이다.

특히 ‘기름부음’에 대해서는 신약성경에서 몇구절이 기록되어 있다. 그 신약구절은 기름부음이 손기철 대표의 주장과 달리 “성령내주”라는 것을 말하여 준다.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크리스마, anointing)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요일 2:20).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일 2:27).

구약에서 ‘기름부음’은 왕과 선지자, 제사장 그리고 특별히 하나님이 임명하시거나 하나님의 선택하시는 제한된 사람에게 해당되었다. 그러나 신약에서 ‘기름부음’은 곧 성령을 받은 것을 뜻한다. 본문에서 요일 2:20은 “거룩하신 자에게서···받고” 요일 2:27은 “주께 받은 바”라고 언급한다. 자칭 사도나 목사의 임파테이션을 통하여 성령 혹은 성령의 능력을 전이시킬 수 있다는 신사도운동의 주장은 비성경적이며, 신약에서 ‘기름부음’은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은 거듭남의 상태를 뜻한다. 즉 요한일서에서 사도요한은 당시 영지주의자들이 성유식과 같은 인위적인 형식이나 의식으로 성령을 받는다고 주장하였을 때,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기름 부음이 곧 ‘성령의 내주’라는 것을 말한다. 특히 고후 1:21~22는 기름부음이 곧 성령의 내주를 뜻한다는 명백한 증거가 된다.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고후 1:21-22)

성령이나 능력은 안수 자체를 통하여 오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임하시는 것이다.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이 과연 안수를 통하여 오셨는가? 성령의 은사는 공동체의 유익을 위하여 성령께서 그의 뜻대로 각 지체에게 나누어주는 선물이다.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고전 12:11)

손기철 대표는 방언이 기름부으심을 흐르게 하는 유익한 기도라고 말하는데 성경적인 근거가 전혀 없는 주장이다.

“늘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도록 간구하기 위해 무시로 방언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왜냐하면 방언은 영의 기도이며 성령을 통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방언이 아니라 내 뱃속 깊은 곳에서 흘러 나오는 생수를 따라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은 자신을 비우고 기름부으심이 흐르게 하는 매우 유익한 기도입니다”(기름부으심, 177)

6) 임파테이션(Impartation)

▲ 기도 중인 손기철 장로(HTM 홈페이지 갈무리)

손기철 대표는 성령 혹은 성령의 능력과 은사를 안수를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있다는 신사도운동과 동일한 임파테이션을 주장한다. 이러한 임파테이션에 대해서 1949년 당시 미국 오순절 교단측에서도 늦은비운동(윌리엄 브래넘)을 이단으로 정죄한 적이 있다.

“나눔은 다른 말로 기름부으심이 나타나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게 하는 기도입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이 나의 육신을 뚫고 나타나는 것입니다. 과거 우리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쓴 뿌리나 상한 감정들이 들통 나지 않도록, 자신의 낮은 자존심이나 거절감 그리소 수치심을 들키지 않으려고 부인했고, 나의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수많은 방어기제들로 자신을 보호해 왔습니다. 성경에는 그것을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고후10:4)이라고 표현합니다”(기름부으심, 183)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하심으로 오랫동안 친밀함을 누린 사람은 그분의 기름부으심이 육신을 통해서 흘러 나가는 것과 흘러 들어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기름부으심, 184쪽).

“그러나 수없는 기도사역 과정을 통해서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언제부터인가 나는 자연스럽게 내 안에서 능력이 나감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손의 안수를 통한 접촉을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나중에는 직접적인 신체 접촉 없이도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기름부으심의 흐름으로 나타나는 현상들을 직접 보게 되었습니다”(기름부으심, 164-165).

‘안수’(lay hand upon)라는 의식이 어떤 효과를 가져온 것이 아니라, 안수는 일종의 의식이며 기도일 뿐이며, 기도에 의하여 하나님이 그 능력을 주시는 것이다.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마 19:1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행 13:3)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웠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행 28:8)

구약에서 희생제물이 되는 짐승에게 안수를 하므로서 죄를 전가시킨다. 그러나 과연 안수라는 의식 자체가 죄를 이동시키는 능력이 있어서, 사람의 죄를 짐승에게 전가시켰을까? 사람의 죄는 물질이 아니며 이동되거나 전가되지 않는다. 죄사함은 죄성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죄책을 묻지 않는 것이다. 즉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죄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속죄’를 뜻하는 ‘카파르’와 '푸림‘이라는 단어는 “죄를 덮는다”는 뜻이다. 그 짐승은 죄가 실제로 이동하여서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대신 죽음으로서 죄책을 면제 받은 것을 의미한다. 신약에서도 그 사상이 나타나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고후 5:14)

안수를 통하여 실제적으로 죄의 전가가 가능하다면, 지금도 짐승에게 안수를 하여 희생제사를 드리면 된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손기철 대표는 이와 같이 신사도운동의 비성경적인 임파테이션을 주장하고 있다. 신사도운동이 임파테이션을 성경적인 근거로 주장하는 것은 구절은 다음과 같다.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롬 1:11)

신사도운동에서는 바울이 신령한 영적 은사를 성도들에게 나누어준다고 주장한다. 이 동사의 단어가 영어로 impart이기 때문에 Impartation이라는 용어가 나타났다. 과연 사도바울은 신령한 은사를 성도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고 하였는가? 정확한 해석을 위해 사도 바울이 로마서 1장11절에서 말한 ‘어떤 신령한 은사’(some spiritual gift)라는 표현에 대해서 다른 번역성경을 살펴보자.

[공동번역] 내가 여러분을 애타게 만나보려는 것은 여러분과 함께 영적인 축복을 나눔으로써 여러분에게 힘을 북돋아주려는 것입니다.

[현대인의성경] 이처럼 내가 여러분을 간절히 만나려고 하는 것은 영적인 축복을 나눔으로써 여러분의 믿음을 강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은사’라는 단어를 영적은사로만 해석하였기 때문이다. 공동번역과 현대인의성경은 “축복”으로 번역하였으며, KJV와 NIV영어성경은 모두 "Spiritual gift"로 번역하였다. 성경에서 “은사”(카리스마)라는 단어는 언제나 고린도전서 12~14장에서 언급되는 방언이나 예언과 같은 영적 은사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영적, 정신적, 물질적인 “선물, 은혜”를 모두 포괄한다. 같은 로마서를 살펴보면,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을 갖고 간다고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나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bressing, 율로기아)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롬 15:29).

7) 기름부음에서 나타난 위험한 기독론

손기철 대표의 기름부음에는 매우 위험한 기독론적 주장들이 내포돼 있다. 손기철 대표는 “예수님이 기름부으심을 받은 후 그리스도라고 불렸습니다”는 이상한 주장을 한다.

“이 말을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많은 성도들에게 이런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는 것과 기름부으심의 차이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신앙생활에서 구원 후 매우 중요한 것이 ‘기름부으심’이라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기름부으심을 받은 후 ‘그리스도’라고 불렸습니다. 그리스도는 ‘메시아’ 혹은 ‘기름부으심을 받은 자’를 뜻합니다. 예수님이 기름부으심을 받은 자라면 우리도 당연히 그 기름부으심을 받은 자에게 속해야 합니다. 즉 우리에게도 동일한 기름부으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었을 때 비로소 공생애 사역을 하신 것처럼 우리에게 기름부으심이 임할 때라야 비로소 우리가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할 수 있게 됩니다”(기름부으심, 손기철, 2008년, 규장, 8쪽)

손기철 대표는 예수님이 기름부으심을 받은 자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동일한 기름부으심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와 같은 주장은 매우 위험한 주장으로 “사람은 그리스도가 될 수 있다”고 하는 지방교회와 같은 신화사상으로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더욱이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는 내주”와 “그리스도가 나타나는 기름부음, 성령체험”에 대한 이상한 차이점을 예수님의 경우에 비교할 때에 그는 위험한 지방교회의 주장과 연결되어진다.

메시아(헬라어: 멧시아스. 히브리어: 마쉬아흐)라는 말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 번역하면 “그리스도”가 된다. 구약에서는 주로 왕, 선지자, 제사장같은 높은 직분을 가진 자가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 불렸으며,(왕상19:16, 시133:2, 출30:22-30) 그 말의 의미는 신성한 지위를 부여하고 권위와 위엄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유대인들은 오랫동안 기름부음을 받은 자, 즉 약속된 “그 메시아”(호 크리스토, the Christ)를 기다려왔다.

다시 말하여, “메시아”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왕, 선지자, 제사장(출 29:29)을 의미하며, 그래서 그 세 직분을 “예수님의 삼중직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러한 직분을 모두 겸한 사람은 예수님 외에 누구도 없었다. 그래서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가장 크다는 세례요한도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말한다.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요1:20)

성경은 오직 예수만이 구약에서 예언된 “그 그리스도”(the Christ)이시며, 기름부음을 받은 자, 즉 구약에서 약속된 그 메시아라는 것을 명백하게 말해주고 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

몇몇 이단들은 기름부음(그리스도)를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모든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라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이미 2000년 전에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하여도 믿지 말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마24:23-26. 참고: 막13:21)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마24:5)

기독교의 교회는 예수를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베드로와 동일한 신앙고백 위에 세워졌다.

“당신은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마16:16)

“예수님은 세례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은 후부터 공생애를 시작하셨으며, 우리는 그때부터 그분을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 단지 물세례를 받은 것이 아니라 물 위로 올라오실 때 성령세례를 받았고, 그 결과로 기름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헬라어이고 히브리어로는 ‘메시아’이며, 그 뜻은 ‘기름부으심을 받은 자’입니다” (기름부으심, 18쪽)

“결국 예수그리스도께서는 기름부으심을 받으신 후에 권능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가르치심에 권세가 있고 하나님나라의 비밀을 선포하시고, 권능으로 기사와 표적을 일으키신 것도 바로 기름부으심이 임했기 때문입니다.”(기름부으심, 19쪽)

손기철 대표는 예수님이 물세례를 받으실 때에 성령세례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그 결과 기름부으심을 받은 후에 권능과 표적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하며, 그리스도가 되었다고 하는 매우 위험한 주장을 한다. 더욱이 우리도 그와 같은 기름부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8) 신사도운동의 신비주의 현상

손기철 대표는 누가 보아도 신사도운동을 추구하는 신비주의 성향을 갖었다. 그가 말하는 근거는 주관적이며 개인적인 체험일 뿐으로 억지로 성경적인 것처럼 만들고 있을 뿐이다. 그러한 체험은 힌두교, 불교, 이슬람교와 이단들에서도 볼 수 있는 ‘쿤들리니’ 현상이며, 아래와 같은 손기철 대표의 주장은 명백한 신사도운동의 집회로 볼 수 있는데, 이미 합동은 2011년에 손기철 대표의 집회를 교류금지와 집회참석금지로 규정하였고, 고신은 신사도운동에 대해서 2007년 지국히 불건전한 사상과 집회참석금지로, 합신은 2009년 신사도운동을 이단성과 참여금지로 규정하였으며, 통합교단은 2012년 직통계시, 쓰러짐과 입신등의 집회를 극단적 신비주의로 규정한 바 있으며, 2012년 미주한인장로교연합도 손기철 대표를 집회참석금자로 규정하였다.

“저는 침묵 가운데 깊은 곳으로 나아갈 때마다 머리카락이 쭈뼛 설 만큼 두려움을 주는 악한 영들이 저를 둘러싸고 공격하는 것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또 기도하지 못하도록 동굴 안에서 뱀이 똬리를 틀고 저를 노려보는 장면을 환상으로 보기도 했습니다.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영적세계로 나아갈 때는 누구나 이런 종류의 동굴을 통과하게 됩니다.”(알고싶어요 성령님, 134-135쪽)

“흔히 안수기도를 받을 때나 집회에 참석해서 찬양과 경배를 드리거나 말씀을 듣는 도중에, 성령님이 임하심으로 나타나는 다양한 현상을 보게 됩니다. 예를 들어 온 몸에 진동이 일어나고 떨리는 현상, 쓰러지거나 쓰러지지 않았지만 몸이 경직되는 현상,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저절로 음직여지는 현상(특별히 허리가 반복적으로 꺾이고 목과 팔다리가 제멋대로 움직이는 현상 등),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앉고 싶다거나 감각이 무뎌지는 현상, 눈꺼풀이 심하게 떨리는 현상 등입니다. 그 외에도 호흡이 가빠지거나, 몸이 무겁게 느껴지고 뭔가 내리누르는 느낌을 받거나, 온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거나, 마치 큰 형광등을 켜 놓은 것처럼 머리 주위가 따뜻하게 느껴지거나, 눈 앞에 형형색색의 빛의 움직임을 보거나, 심한 기침을 하거나, 수천볼트의 전기가 지나가는 것처럼 팔이 진동하고 감전된 것처럼 느끼거나, 손바닥이 뜨거워지거나,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하품을 계속 하거나,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괴로워하거나, 드물지만 갑자기 주체할 수 없이 웃기도 합니다” (알고싶어요 성령님, 142쪽)

“또한 육신이나 마음의 치유를 동시에 경험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 손을 잡고 정원을 거닐거나, 예수님의 품 안에 안겨있거나,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기도 합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방언을 하게 되거나, 환상을 통해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곳에 가보는 경험을 하거나, 자신의 의지나 생각과 상관없는 말을 선포하기도 합니다”(알고싶어요 성령님, 143쪽)

“성령체험의 역사를 통해서 다양한 현상들을 보게 되는데 그 중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이 ‘쓰러지는 현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찬양하다가 쓰러지기도 하고, 집회 후 기도시간에 안수기도를 받다가 쓰러지기도 하고, 자신도 미처 안식하지 못하는 상황 가운데 쓰러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현상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부정적으로 인식되거나 오해받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이렇게 쓰러지는 현상을 가르켜 ‘혼절하다’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령의 역사로 쓰러지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해 보지 못한 데서 나온 매우 부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됩니다.” (알고싶어요 성령님, 149쪽)

“제가 인도하는 말씀치유집회의 현장도 예외는 아닙니다. 말씀을 전하는 도중이나 또는 말씀을 마치고 기도하거나 찬양하는 시간에 한편에서는 기뻐 웃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악한 영의 나타남으로 여기저기 쓰러지고 울부짖고 기침하고 비명을 지르는 둥 소란스러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어떤 분들은 ‘어이쿠 여기 잘못 왔구나’, ‘이상한 데 왔구나’라고 생각하고 놀라 도망치다시피 자리를 떠납니다. 그것은 자신 안에 있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성령님이 임하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그 일은 성령님이 일으키신 일이 아니라 성령님이 임하시자 각종 더러운 죄악, 질병과 악한 영이 떠나가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우리 내면의 어둠 가운데 비춰졌을 때 우리 안에 숨어있거나 눌러 놓았던 슬픔, 우울, 염려, 걱정, 불안, 두려움, 비통, 원망, 거절 등 모든 상처와 악한 영들이 드러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 일들은 도리어 정말 기뻐해야 할 일입니다.” (알고싶어요 성령님, 162-163쪽)

이단들은 항상 성경, 신학, 이성보다 개인의 체험을 먼저 내세운다. 이와 같이 기적과 표적의 체험적 현상을 위주로 한다면 이러한 현상은 타종교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특히 쓰러짐의 현상에 대해서, 하루에 백번을 쓰러져도 구원을 받지 못하며, 오직 은혜와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뿐이다. 성경은 표적과 기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다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마 24:24).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살후 2:9-10).

따라서 온누리교회 장로이자 헤븐리터지 손기철 대표는 자신의 체험과 표적에 대해 그것이 과연 성령의 역사인지 검증과 재검증을 하는 심정으로 되돌아 봐야 한다. 그는 관절염 환자를 5명을 치료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주장하는데, 과연 손기철 대표는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는가? 자신의 느낌인가?

▲ 출판 기념 사인회에서 사인하는 손기철 장로(HTM 홈페이지 갈무리)

9) 손기철 대표의 선포기도, 대적기도

손 대표의 선포기도·대적기도를 살펴보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개념 정리부터 하고자 한다.

하나님나라는 원래 통치적인 개념으로서, 궁극적이고 장래적인 개념뿐 아니라 현재적이며 내면적인 개념까지 포함한다. 정통신학에서 말하는 하나님나라는 궁극적인 하나님나라와 함께 현재적인 하나님나라에 대해서 균형과 조화를 강조한다. 손기철 대표는 책에서 Already but not yet 이라고 써놓고 Already 만 읽고 있는 것 같으며 두 가지를 착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2000년 전 예수님과 함께 도래한 하나님나라”를 “손기철 대표가 선포한 하나님나라”와 동일시하고 있다. 둘째, “예수님과 함께 도래한 하나님나라”를 “이미 성취된 하나님나라”로 착각을 하고 있다. 손기철 대표는 자신의 집회에서 “하나님나라가 임하였기 때문에 아프고 고통받는 사람이 치유되어야 한다”라고 설교를 한다. 손기철 대표의 주장대로라면 이미 하나님나라가 임하였기 때문에 사람이 죽는 일도 없어야 할 것이다. 또한 그가 말하는 소위 기름부음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병도 고통도 가난도 불행도 없어야만 할 것이다. 이러한 주장이 바로 신사도운동의 대적기도와 선포기도이다.

성경적인 예를 들자면, 예수님이 직접 파송하신 칠십문도들이 돌아와서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들이 항복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예수님께 고한다.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눅10:17)

그 때에 예수님의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눅 10:20)

다시 말하여 귀신을 쫓는 권세를 받은 것은 기뻐할 일이 아니며 부수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이며 그것이 본질적인 것이 된다. 우리는 귀신과 악한 영에 대적하고 싸워야 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귀신과 마귀를 쫓아낸 것은 하나님나라를 전파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으며 그것이 곧 하나님나라의 목적이 아니었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한다. 성경에서 영적싸움은 구원을 위한 성화적인 과정을 뜻하며, 그 방법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슴으로 무장하여 성령의 인도와 보호로 미혹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성경에는 예수의 이름으로 마귀를 대적하라는 구절은 있지만, 대적기도와 선포기도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기도”라는 것은 그 대상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대적, 싸움 등은 우리의 삶에서 사탄, 마귀의 미혹에 빠지지 않는 것을 말하며, 우리가 예수님과 같은 초능력과 신비한 권위를 갖게 되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회중을 방해하는 모기떼들은 모두 사라질지어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회중들에게서 모기가 싫어하는 물질이 분비될지어다!”
그런 다음 밤늦도록 집회를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로 이어진 집회에서 어제 모기에 물린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300여명이나 되는 사람들 중에 단 한명의 자매가 손을 들었습니다. 놀라운 일이었습니다.(왕의 기도, 17쪽)

손기철 대표는 자신의 책에서 선포기도로 모기가 사라졌다고 주장하는데, 그 자매를 물었던 한 마리의 모기는 예수의 이름으로 내려진 선포기도보다 더 강한 모기였던 것 같다.

신비주의란 “자신이 원할 때마다 하나님이 기적을 만들어 주신다는 것을 실제로 믿는 신앙”을 뜻한다. 이러한 주장은 자신을 신격화시키려는 의도로 신사도운동 인사들이 사용하는 수법과 일치한다. 피터와그너는 자신이 독일에서 광우병이 사라지라고 선포기도한 후에 광우병이 없어졌다고 주장하며 (피터 와그너, 도미니온, 170-171쪽), 하이디베이커는 자신이 미국의 산불을 꺼지라고 선포를 한 후에 여름에 눈보라가 내려서 산불이 꺼졌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예언이 반만 맞으면 훌륭한 것이며 대부분은 틀린다고 고백한 바 있다.

손기철 대표 역시 대적기도가 어떤 문제에 대해서 명령하고 선포하는 것으로 예수님이 하셨던 그 기도라고 정의하며 왕의 기도라고 말한다.

“나는 기도를 크게 세가지로 나누어 소개합니다.
첫 번째 기도의 종류는 ‘하나님께 구하고 드리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구하는 기도, 우리의 마음을 드리기도 하고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드리기도 하지만, 사실 이 기도의 내용은 대부분 우리의 소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기도의 종류는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기도’입니다. 내 안에 계신 예수그리스도와 친밀함을 누리기 위해서 믿음의 눈으로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분의 음성을 듣고 말씀하시는 것을 감동으로 받는 기도가 이에 해당합니다. ‘구하고 드리는 기도’에 비해 좀더 영적이고 깊은 기도이며 꼭 필요한 기도이지요.

세번째 기도의 종류는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는 기도’입니다. 나는 이 기도를 왕의 기도라고 표현합니다. 이 기도의 목적이 왕이신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왕의 기도는 왕이신 하나님의 자녀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문제를 향해 명령하거나 믿음으로 선포하는 기도로서 예수님이 하셨던 바로 그 기도방법을 따라 하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땅에서 누려야할 축복입니다”.(왕의 기도, 24쪽)

당신이 육신의 사고체제를 벗고 영의 사고체제를 입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신다면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첫째 사실과 현상으로 꾸짖으십시오
“이 더러운 암종아, 파쇄될지어다”
둘째 원하는대로 선포하십시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선포해야 합니다
“암종아 사라진 깨끗한 장기가 될지어다”(치유기도, 118쪽)

어떤 장소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였음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함을 선포하는 손기철 대표는 하나님인가? 물론 하나님의 나라는 통치적인 개념과 함께 현재적이고 내면적이며 진행적인 개념도 포함된다. 그렇다고 하여 손기철 대표가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할 수는 없으며,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예수님과 함께 도래하였다. 더욱이 손기철 대표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왕의 기도의 비밀을 알려 주셨다고 주장한다.

“내가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곳을 주의 보혈로 덮노라”
“내가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였음을 선포하노라”
“내가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였음을 선포하노라”
“주의 말씀이 선포될 때에 주의 역사가 일어날 것을 선포하노라”

이것은 내가 집회를 인도하기 시작할 때마다 전형적으로 사용하는 기도문입니다. 이런 기도를 처음 듣는 사람들은 내가 이런 기도부터 시작하는 것을 의아하게 여깁니다. 듣도 보도 못한 기도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것이 바로 왕의 기도를 드리는 기본 전제입니다. 나 역시 오랫동안 성경말씀대로 기도해 왔건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아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고, 나 자신을 정죄하기도 했고, 하나님께서 무심하게도 나에게 관심이 없다고 확신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왕의 기도의 비밀을 알려 주시자마자 나는 곧바로 이 선포를 시작했습니다(왕의 기도, 88쪽)

“예수님이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것도 마귀를 심판할 권한을 가지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동일하게 적용해 볼 수 있는 사건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오시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마귀의 일을 멸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게 됩니다. 영으로 몸의 행실을 죽일 뿐만 아니라 마귀를 대적하여 이길 수 있고 이 땅에서 주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알고싶어요 성령님, 119쪽)

“지금 우리는 영적으로 어떤 위치에 서 있습니까? 좌표를 분명히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삶의 위치는 마귀의 일을 멸한 지점입니다.
(요일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따라서 마귀는 우리가 우리의 생각으로 허용하는 만큼만 우리에게 역사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내가 아니라 예수그리스도로 인하여 마귀의 일을 멸한 위치에 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마귀를 두려워하고 떨 뿐 마귀의 일을 멸한 위치에서 그들을 쫓아내고 그들을 지배하고 통제할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름부으심, 224쪽)

손기철 대표의 주장은 다락방의 기도응답권, 사탄결박권과 천사동원권과 동일한 주장이다. 다락방의 류광수 목사는 사탄결박권과 천사동원권은 내가 하는 기도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주님이 직접 명령하는 선포라고 주장한 바 있다.

(다락방, 현장복음멧세지 - 예수의 이름)
(3)여호와의 이름(요17:11-12)
악령을 좇아낼 때,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악한 영아 물러가라!’고 명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더 많이 깨달은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내게 있는 주 예수께서 네게 명령하시니, 나가라!”고 한다. 이게 더 정확한 것이다.

(현장복음 19과 - 그리스도의 부활)
6. 부활의 결과
(3)고전4:45-50 하나님- 예수님은 그 영이 하나님이시다.
(4)요1:14 사람- 예수님의 그 육이 사람이시다.
▶이 위대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이 사람에게 오셨다. 이 예수 이름을 부르면 바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고, 여러분이 예수 이름을 부를때, 사탄의 권세는 깨어진다.
어마어마한 역사가 일어난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하노니!”라는 이 말이 보통 말이 아니다. 안되는 것이 없다. 그러니까, 하나님 되시는 분이 직접 명하노니! 라는 말이다. 그래서 역사가 막 일어나는 것이다.

다락방의 사탄결박권과 천사동원권은 우리 안에서 하나님이 직접 명령한다는 주장으로 소위 양태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즉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직접 사탄과 천사에게 직접 명령을 한다는 것이다. 손기철 대표는 성령내주로는 부족하고, 위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아서 그리스도가 우리의 혼과 육에 나타나야만 권능을 행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손기철 대표는 또한 예수도 세례를 받을 때에 기름부으심을 받았으므로 우리도 동일한 기름부으심을 받으면 동일한 권능을 행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또 손기철 대표는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사탄의 일을 멸하는 위치에 있다고 말하였으며, 결과적으로 손기철 대표가 말하는 왕의 기도는 양태론적인 다락방과 동일한 주장으로서 손기철 대표에게도 양태론이 발견된다.

10) 양태론적 삼위일체

손기철 대표가 삼위일체를 용어적으로 해석할 때에는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의 양태론적인 내용은 그의 책 도처에서 발견된다. 즉 그는 용어적으로는 삼위일체를 인정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많은 문제가 발견된다. 손기철 대표는 구약의 하나님의 영광을 성령님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말하며, 또 성령님이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예수그리스도로 임하셨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또 예수가 부활하신 이후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우리에게 오셨다고 주장하며 심지어 성령이 우리의 아버지라고 주장한다.

“하나님의 영광은 성령님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모세가 지은 성막에 임하셨고, 다윗이 지은 장막에 나타나셨으며, 솔로몬의 성전에 계셨고,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예수그리스도로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성령으로 우리에게 임하고 계십니다.”(왕의 기도, 99쪽)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오 그 본체의 형상이십니다. 바로 하나님이 이 땅에 현시한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알고싶어요 성령님, 38-39)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자신의 형상을 지으시고자 하는 것을 ‘하나님의 형상의식’이라고 부르러 합니다. 우리는 본래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그 모양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는 삶이 무엇인지 성육신하여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삶을 사신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시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분은 지금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님으로 우리에게 임하셔서 우리도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알고싶어요 성령님, 186-187쪽)

“성령님은 지금도 여전히 자신의 자녀가 다른 어떤 것에 관심을 갖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성령님께서는 자신의 사랑 전부를 당신에게 쏟아 부으시기를 원하고, 세상 무엇보다도 당신과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분이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알고싶어요 성령님, 191쪽)

“예수님은 또 다른 보혜사 성령님을 “진리의 영”이라고 하셨습니다. 보혜사라는 말은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 영어로 카운슬러, 우리 말로 풀면 “도와주고 보호하고 변호하는 은혜를 주시는 자”입니다. 예수께서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요16:7)고 하신 것이 바로 이 뜻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다음, 우리 가운데 또다른 보혜사 성령님으로 오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영광을 받지 않으셨을 때에는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 영원히 내주하시는 것은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셨을 때부터입니다“(알고 싶어요 성령님, 26-27쪽)

필자가 보유하고 있는 동영상에도 손기철 대표는 명백한 양태론이 나타난다.

“왜냐하면 그 말씀이 하나님이시고 말씀이 예수님이시고 말씀이 성령님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집회를 하고 수많은 설교를 함에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없느냐 믿지 않기 때문에 말씀과 성령님을 나눌 수 없습니다. 십자가와 성령님을 나눌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예수와 성령님을 나눌 수가 있습니까? 성령님은 예수그리스도이시고 성령님은 하나님 아버지십니다.” (동영상)

손기철 대표가 자신의 주장과 같은 책을 볼 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의 사상은 정통신학적인 내용과 다르기 때문이다. 건전하고 올바른 신학은 성경을 근거로 제시하는 것인데 반하여, 그에게 진리적인 기준은 단지 자기의 주관적인 체험일 뿐이다.

"지금까지 저는 성령에 관한 수많은 책들을 읽었습니다. 제 소견에는 성령님에 대해 알려주는 책, 성령님에 대한 잘못된 교리나 부작용을 비판하거나 바로 잡아주는 책은 많았지만, 정작 그 성령님과의 만남과 올바른 관계와 친밀한 교제 그리고 그 성령님이 인도함을 받는 삶에 대해 쓴 책은 많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신학적 이론적인 책이 아니라 말씀에 기초하여 살아계신 성령하나님과의 관계를 나눌 수 있는 실제적이고 체험적인 책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알고싶어요 성령님, 308-309쪽)

(참고서적)
치유기도 (손기철, 2010, 규장)
알고싶어요 성령님 (손기철, 2012, 규장)
기적을 일으키는 믿음 (손기철, 2009, 규장)
기름부으심(손기철, 2008, 규장)
왕의 기도(손기철, 2008, 규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