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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성경적인 세대주의의 오류 비판세대주의 성경론, 종말론, 간극설, 일곱 세대론의 문제점
평신도이단대책협회 이인규 대표  |  dsmedi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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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2.13  00:5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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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인규(평신도이단대책협회 대표, 무엇이든지물어보세요 카페 시삽)
세대주의라는 신학적인 경향은 19세기 성공회 신부였던 존 다비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세대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그들은 ‘Plymouth Brethen’라는 명칭으로 시작하였는데, 그 ‘형제’라는 단어는 교파가 없어야 하며, 목사제도를 없애야만 한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교파가 없어야 한다는 이 단체 역시 교리적인 문제로서 여러 개의 파로 분열되었고, 이곳으로부터 분열된 대부분의 교회는 목사가 있었으며, 어느 곳은 목사라는 명칭의 직분은 없었지만, 지도자의 직분이 있었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세대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존다비

더욱이 존 다비가 이끄는 형제교회는 배타적이었다. 다른 교회와 교리를 인정하지 않는 공격적이고 패쇄적인 성향도 지녀 존 다비의 동료들마저 교리적인 갈등으로 그를 외면하고 떠나는 일이 매우 많았다고 전해진다. 존 다비는 자신의 교리를 ‘재발견된 진리’라고 말하였지만, 결국 기존 기독교의 교리를 부정하고 반박하는 또다른 교리일 뿐이었다. 특히 이 배타적 형제교회의 영향을 받은 교파로부터 구원파와 지방교회 등이 전파되어지는데, 특히 세대주의에서 한걸음만 더 옆으로 나가면 위험한 이단적 세대주의가 된다는 것을 주의하여야 한다.

세대주의는 오늘날 다비주의라고 불리기도 한다. 다비는 유럽 혹은 미국에까지 가서 그의 성경해석법을 가르쳤는데, 처음의 미국의 무디 성경학교가 다비의 세대주의를 가르쳤으며, 달라스신학교에서도 세대주의를 가르쳤다. 이에 따라 여기서 영향을 받은 초창기 미국 선교사들은 우리나라에 와서 자연스레 세대주의 신학을 전했다. 간혹 근본주의와 세대주의가 혼동되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둘은 구별된다. 미국 회중교회의 스코필드 목사가 킹제임스성경에 입각하여 스코필드 성경주석을 썼는데, 세대주의 추종자들은 스코필드 주석성경을 성경의 권위와 거의 동등하게 생각한다. 그 주석성경이 설명하는 강요된 해석에 익숙한 세대주의자들은 일반 교회의 해석을 무조건 틀린 것으로 간주하며 배타적인 입장을 갖는 성향이 있다. 어떤 세대주의자들은 세대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성경자체를 모르거나 성경을 부정하는 사람으로 간주한다.
                    
1) 세대주의의 교리적 특징
필자는 세대주의를 몇 개로 구별하고 싶다.
첫째, 비교적 온건한 성향의 세대주의가 있으며, 둘째, 배타적인 성향의 세대주의가 있고, 셋째, 극단적세대주의라고 불리는 이단적인 세대주의가 있다.
이 세가지가 정확하게 구별이 되는 것은 아니며 혼합되는 복잡한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필자는 뒷부분에서 극단적 세대주의와 이단적 세대주의라는 명칭으로 소제목을 다루었는데, 이러한 세대주의는 상당히 위험하고 심각하다. 물론 모든 세대주의 교회가 동일한 교리적 주장을 하지는 않지만, 개략적으로 다음과 같다.

(1) 성경은 문자적인 해석을 하여야 한다
(2) 표면적으로는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그들은 다니엘서와 계시록 등을 자의적, 임의적으로 비유 해석한다
(3) 이스라엘과 교회는 각각 다른 하나님의 백성이다
(4) 종말적인 하나님의 왕국은 교회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위한 것으로서, 교회는 7년 대환란 이전에 휴거한다.
(5) 그리스도는 두 번, 혹은 그 이상 재림한다.
(6) 세대를 인류의 역사를 일곱으로 분류하여 각 세대별로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7) 하나님의 나라와 사후 천국이 다르다고 보며, 때로는 사후 천국을 부정하는 곳도 있다.
(8) 소위 간극론(재창조론)을 주장하며, 세상을 하나님과 사탄의 이원론적인 대결로 보며, 육체(물질)와 영혼(영)의 대결, 선과 악이 대결하는 이원론을 주장한다.
(9) 다른 견해를 인정하지 않으며 매우 배타적이고 공격적이다.
(10) 임박한 종말론을 강조하며, 시한부종말론을 주장하는 곳도 있다.
(11) (모든 세대주의가 다 그렇지는 않지만) 신학체제와 목사제도를 부정한다.
(12) (모든 세대주의가 다 그렇지 않지만) 양태론적 삼위일체를 주장한다.
(13) (모든 세대주의가 다 그렇지 않지만) 단회적인 회개를 주장하며, 육체에는 사탄이 거하고 죄가 있으며, 영은 성령이 거하는 곳으로서 죄가 없다고 주장한다.

2) 성경해석
세대주의의 첫째 주장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는 것인데, 이러한 주장이 그 당시 자유주의신학과 고등비평이 성행할 때에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어느 정도 고려할 수는 있다. 예를 들면 예수가 물 위로 걸으셨다는 것에 대해서, 물의 깊이가 발목밖에 되지 않았다고 하거나 안개가 끼어서 정확히 볼 수 없었을 것이라는 자유주의의 변명을 반박하기 위하여 세대주의가 문자적인 해석을 강조한 것은 충분히 이해된다. 그러나 이사야 44:23에서 “하늘아 노래할지어다. 땅의 깊은 곳들아 높이 부를지어다. 산들아 숲과 그 가운데의 모든 나무들아 소리내어 노래할지어다”라는 시적인 표현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야 하는가?

더욱이 인류역사를 구약 4000년, 신약 2000년으로 문자적인 해석을 한다면, 이미 예수는 재림하여야만 하고 종말이 와야만 한다. 또 2300주야를 2300년으로 해석하거나, 70 이레를 490년으로 해석하는 것은 결코 문자적이라고 볼 수 없다. 더욱이 이스라엘이라는 단어가 신약에서 영적 이스라엘, 즉 예수를 믿는 이방인들로 표현되는 것까지 문자적인 이스라엘로 해석하여야 한다는 것은 억지에 가깝다. 문제는 그러한 문자적인 해석을 주장하면서, 세대주의는 다니엘서나 요한계시록의 상징적인 용어에 대해서는 인위적이고 자의적인 비유로 해석하므로서, 문자적 해석의 기준이 없다.

   
▲ 예수를 구약에서 예언한 그리스도로 믿는 유대인, 즉 메시아닉 쥬를 영화화한 '회복'의 한 장면

3) 이스라엘과 교회의 구별
세대주의의 가장 중요한 교리는 이스라엘과 교회의 구분이다. 세대주의에서는 이스라엘과 교회의 연관성과 지속성을 단절시킨다. 세대주의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그리스도께서 그의 왕국을 하나님의 구약 백성에게 제공했으나 그들이 거부하였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메시아를 거절하였기 때문에 왕국은 일단 보류 또는 연기되어 때를 기다리고 있고, 하나님은 전혀 다른 세대, 즉 교회 시대를 시작하셨다는 것이다. 즉 신약교회의 시대는 소위 ‘중대한 삽입’이라고 불리며, 이스라엘과 왕국 사이에 있는 시대가 된다.

이 세대주의의 특징은 교회 시대의 마지막 시점에서 교회는 7년 대환란 전에 이 세상 밖으로 휴거될 것으로 본다. 그리고 하나님은 보류시켰던 이스라엘을 위한 구약의 계획으로 다시 되돌아 가신다는 것이다. 즉 세대주의가 주장하는 이스라엘을 위한 왕국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으며, 미래적이며 즉 전천년의 왕국이다. 그들에게 신약교회는 중간에 삽입된 들러리 역할에 지나지 않으며, 신약교회가 휴거를 받은 후에야 이스라엘의 회개가 있을 것이고, 비로소 이스라엘을 위한 왕국이 임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들의 종말론은 언제나 이스라엘로 연계된다. 이것이 바로 세대주의자들의 ‘이스라엘의 회복’이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의 세가지 직분(왕, 선지자, 제사장)에서 특별히 왕적인 직분을 강조하게 된다. 특히 세대주의를 따르는 신사도운동이 예수의 왕권과 왕국(Kingdom)을 강조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히 8:6-10) 그러나 이제 그가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이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시라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저희를 허물하여 일렀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새 언약을 세우리라. 또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열조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저희와 세운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저희는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저희를 돌아보지 아니하였노라. 또 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
                                                           
구약은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택하신 하나님의 약속이다. 그러나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유다집에 새 언약을 세우셨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여 이스라엘에게 약속한 옛 언약이 잠시 보류되거나 이스라엘이 아닌 이방인들에게 또다른 언약이 시작된 것이 아니라, 옛 언약이 폐하여진 것이며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이 다시 세워진 것이다. 왜 히브리서 기자는 이러한 주장을 하였을까? 이 주장은 바로 구약 예레미야 31장 31-33절을 반영한 것으로서 하나님이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새 언약을 예언한 것이다. 이스라엘과의 옛 언약은 이스라엘이 일방적으로 어김으로서 파하여진 것이다. 이스라엘과의 언약이 잠시 보류되거나 그 유효성이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파하여졌고 새 언약이 세워진 것이다.
                   
(레 26:12)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니라

이 약속은 애굽 땅에서 이스라엘을 불러내신 하나님이 그들에게 약속한 그 첫 언약으로서 히 8:10에서 반복된다. 그렇다면 새 언약은 무엇일까? 새 언약은 예수의 피로 세운 언약을 말한다. 즉 예수의 피로 세워진 새 언약은 선민이었던 이스라엘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예수를 믿는 모든 민족에게 적용된다.
                     
(고전 11:25)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참고: 마26:28, 눅22:20)

로마 백부장의 믿음을 보신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마 8:11-12)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예수님은 보류되었던 이스라엘이 회복되어 다시 구원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본 자손들은 쫓겨나고 동서로부터 온 다른 사람들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게 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즉 이스라엘의 구원이 보류되어진 것이 아니라, 동서로부터 오는 많은 사람들로 천국의 자리가 대체된다는 것을 뜻한다. 마태복음 22장의 하나님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은 사람의 비유는 더 이상 천국백성이 이스라엘 민족이 아니라, 대신 다른 손님, 즉 이방인으로 채워지며, 그것은 나중에 다시 이스라엘이 초청을 받는다는 내용이 결코 아니다. 청함을 받은 이스라엘은 많으나 택함을 받은 이스라엘은 적다는 것은 보류가 아니라 거부된 것이다. 이러한 성경적인 예는 수없이 많으며,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의 믿음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러나 신약에 와서 믿는 자들이 아브라함의 아들로 재해석 된다.
                   
(갈 3:7-9)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를 통하여 더욱 분명하게 모든 혈통과 종족과 관계없이 그리스도께 속한 자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다시 강조하고 있다.
                
(갈 3:27-29)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이스라엘은 선택된 민족으로서 그 언약이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스라엘로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들로 택하신 영적 개념의 백성으로 재적용 된다. 즉 이스라엘은 육신의 자녀가 아닌 영적인 자녀로 재조명된다.
            
예수께서 나다나엘을 보고 ‘참이스라엘’이라고 말씀 하셨을 때에(요 1:47),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었다”는 의미를 뜻하는 것으로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참이스라엘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더 이상 혈통적인 개념이 아니라 내면적인 개념이었다.
                    
(벧전 2:9-10)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던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 되며, 제사장이 되며, 그의 나라가 되고, 소유된 백성이 된다. 이스라엘은 스스로 하나님 나라를 거절하였고, 하나님은 그 나라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개인들로 이루어진 에클레시아에게 주었다. 교회는 이스라엘 대신에 접붙임을 받은 것이다.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슬러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다.

고넬료를 만나기 전에 베드로가 보았던 환상은, 결코 음식물에 대한 율법이 아니라 베드로가 가진 이방인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한 가르침이었다.(행10:10-16) 
또 예루살렘의 거룩한 성은 새 예루살렘의 이름으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데, 믿음으로 자발적인 참여를 한 하나님의 백성이 그 새 예루살렘 성의 기둥이 될 것이다.
           
(계3: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이스라엘 열두지파는 예수를 좇는 믿음의 백성들이 이스라엘 열두지파를 심판하게 될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마 19:28)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참고: 눅 22:30)
             
진정한 이스라엘의 조건은 표면적이거나 육신적, 혈통적인 할례가 아니며, 내면적인 신령과 마음에 있는 것이다.
       
(롬 2:28-29)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세대주의는 유대인들이 예수의 왕국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 대안으로 이방인들의 교회가 세웠으며, 그 교회가 형성된 후에 다시 유대인들이 회심을 하므로서 유대인만의 왕국이 세워진다고 주장하지만,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으며, 이스라엘의 회복을 주장하는 성경구절은 행 1:6 뿐이다.
         
(행 1:6-8)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언제인가를 물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때와 기한은 아버지의 권한이라고 말씀하셨다. 세대주의들은 예수님이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되지 않는다면, “회복되지 않는다”고 답변을 하셨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때와 기한이 언제인지 알 수가 없다고 하셨기 때문에 언젠가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예수님의 답변은 1장8절부터 나타난다. 성령이 임하면 그 제자들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예수의 증인이 된다는 것이다. 즉 이스라엘 백성의 회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땅끝까지 모든 족속들에게 전파되는 성령에 의한 하나님나라의 확장이 있을 것이라는 답변을 하신 것이다. 즉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능력을 확인하고 정치적인 메시아로서의 이스라엘의 회복이 언제인가를 질문한 것이고, 예수님은 항상 답변해 왔던 방식대로, 이스라엘에 국한된 정치적인 회복이 아니라, 온 세상에 복음이 전파되는 성령의 총체적인 사역시대를 언급하신 것이다. 세대주의들이 주장하는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성경구절이 또 하나가 있다.
        
(롬 11:25-26)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과연 본문에서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에서 ‘온 이스라엘’이 모든 이스라엘 민족을 뜻할까? 본문의 앞부분을 보면 접붙힘이 언급된다. 즉 이방인은 새로운 나무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나무에 접붙힘을 하게 되는 것이다. “뿌리가 거룩한 즉 가지도 그러하니라”는 구절의 뿌리는 다른 뿌리가 아니라 동일한 하나의 뿌리를 뜻한다. ‘온 이스라엘’은 문자적인 이스라엘 민족이 아니라, 구원을 받기로 선택된 이스라엘만을 뜻한다고 본다. 그러한 해석이 “이방인의 충만한 숫자가 들어오기 까지”라는 앞부분의 의미에 적합하다. 충분한 숫자의 이방인들이 들어오면 완악하지 않았던 남아있는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게 된다는 뜻이다. 그 뒷 구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롬 11:30) 너희가 전에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에 순종치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개역한글 성경은 “이스라엘에 순종치 아니함으로”라고 번역함으로서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에 순종치 않은 것처럼 잘못 번역하고 있는데, 개역개정에서는 “이스라엘이 순종치 않음으로”라고 수정하였다. 다른 번역성경도 마찬가지이다.
          
[공동번역] 전에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았던 여러분이 이제 이스라엘 사람들의 불순종 때문에 하느님의 자비를 받게 되었습니다.
[표준새번역] 전에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던 여러분이, 이제 이스라엘 사람의 불순종 때문에 하나님의 자비를 입게 되었습니다.
[현대인의성경] 전에는 여러분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으나 지금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불순종 때문에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즉 이스라엘이 불순종하였기 때문에 이방인들이 대신 구원의 은혜를 받게 되었다는 뜻이다. 구원을 받기로 택함을 받은 일부 이스라엘과 이방인을 모두 포함하여 ‘온 이스라엘’로 지칭한 것으로 보는 것이 문맥에 맞다. 구원을 받지 못하는 완악한 이스라엘의 숫자만큼 이방인들이 대신 채워졌다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앞구절에서 이방인들이 참감람나무에 접붙힘을 받는다는 내용과도 연결이 된다. 하나님은 충분한 숫자의 이방인을 부르시기로 하셨고, 또 남은 유대인들도 부르시기로 하셨다. 만약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부르시기로 하셨다면, 본문에 기록된 앞부분의 구절과 뒷부분의 구절은 언급할 필요가 없는 내용이 될 것이다. 또한 구약 아모스 선지자의 예언에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한다.
          
(암 9:11-12)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천막을 일으키고 그 틈을 막으며 그 퇴락한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저희로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이는 이를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신약에서 아모스 본문은 그 이스라엘 자손만을 별도로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스라엘의 남은 사람들과 모든 이방인을 함께 포함시키고 있다.
                  
(행 15:15-17)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합하도다 기록된바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본문을 인용하여 다윗의 장막을 회복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곧 아이합의 24/7 예배이다. 최근에 신사도운동과 아이합 등에서 극단적 세대주의와 이스라엘 회복을 주장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러한 세대주의의 잘못된 비성경적인 해석과 오류는 수없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극단적인 세대주의와 종말론을 연계한 세대주의는 지금도 나타나고 있다. 그 대표적인 단체가 신사도운동의 단체들이며, 그리고 백투예루살렘을 주장하는 인터콥이나 G12, KIBI, 이스라엘 성회라는 단체 등이다.

   
▲ 휴거되는 모습을 연상시키는 그래픽

4) 일곱세대
세대주의 (Dispensationalism)는 역사의 시대를 7가지로 구분하여 세대마다 하나님의 구원방법이 다르다고 가르친다. 세대주의에서는 이것을 ‘하나님의 경륜’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경륜’(오이코노미안)은 '집안의 관리' 혹은 '집안 관리자의 직분'을 뜻한다. 세대주의는 하나님이 각 세대마다 서로 다른 경륜을 구분지어 사용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러나 엡 1:9의 본문에서 경륜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만물을 위하여 모든 일들을 계획하고 지배하며 관리하신다”는 뜻으로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적으로 실행하시고자 한 구속 계획을 가지셨으며, 구약의 성도들은 오실 메시아를 믿었으며, 신약의 성도들은 오신 메시야(호 크리스토)를 예수로 믿는다. 어느 성경에도 하나님의 경륜이 세대마다 다르다고 말하지 않으며, 오히려 히브리서 11장은 구약에서도 동일한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말한다.
세대주의 신학은 인류역사를 7세대로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

1. 무죄시대 (Innocence, 창조부터 인류 타락전까지)
2. 양심시대 (Conscience, 인류타락부터 노아까지)
3. 인간통치 시대 (Human Government, 노아부터 아브라함까지)
4. 약속시대 (Promise, 아브라함부터 모세까지)
5. 율법시대 (Law, 모세부터 그리스도까지)
6. 은혜시대 (Grace, 교회시대)
7. 왕국시대 (Kingdom, 천년왕국)


이렇게 일곱 세대로 구분하여 그때마다 하나님이 다르게 인간을 다스렸다는 것이 세대주의자들의 신학이다. 그러므로 위와 같은 7가지 세대에서 각각 인간에게는 다른 책임이 주어지며 하나님은 세대에 각각 다르게 인간을 통치한다고 가르치며 우리는 지금 ‘은혜시대’에 살고 있는데 율법인 십계명을 존중은 하지만 우리 생활과 신앙의 유일한 법칙으로 지킬 의무는 없다고 말한다.

무천년론과 후천년론을 주장하는 개혁주의와 복음주의는 세대주의를 비판하며, 세대주의 신학 대신에 행위언약과 은혜언약 두가지의 언약신학을 주장한다. 행위언약은 인류의 대표인 아담과 하나님과의 계약이며, 아담은 실패하였으며, 인류도 아담 안에서 실패했다. 그리고 이 계약의 실패를 위하여 은혜언약이 시행되었는데,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졌다.

5) 세대주의 종말론
혹간은 세대주의를 종말론에 대한 신학적 체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대주의는 종말론에 국한된 신학적 견해가 아니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세대주의는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이며, 모든 세대주의가 동일한 교리를 갖지 않는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살전 4:13-17)

세대주의의 전천년 종말론의 순서는 [비밀적인 공중재림 - 휴거 - 7년 대환란 - 공개적인 지상재림 - 천년왕국]이 된다. 세대주의는 휴거에 관해서 장차 다가올 “대 환란(Great Tribulation) 전에 믿는 신약교회는 휴거 되어 환난을 당하지 않는다”고 가르치지만 성경의 어느 구절도 그러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더욱이 세대주의는 살아있는 성도들과 죽었다가 부활한 성도들이 공중에 들려 올라가서 7년 동안 그리스도와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치르게 된다고 주장하는데, 성경은 어느 곳에서도 두 번의 재림을 말하지 않는다.

그들의 주장은 다니엘서 70이레 중에서 69이레가 성취되고 마지막 한이레를 이방인의 시대인 은혜시대로 해석하는 것인데, 잘못된 성경해석이며 강요된 해석일 뿐으로서, 주로 안식교나 형제교회, 구원파 등의 일방적인 성경해석일 뿐이다. 하루를 일년으로 해석할 어떤 근거도 없으며, 한 이레를 7년으로 해석할 어떤 근거도 없다. 특히 성전중건령의 연대를 실제와 달리 자신들의 임의대로 기준으로 삼으므로서, 2300주야와 70이레, 한때 두때 반때 (3년반)를 하루를 일년으로 계산하여 성전중건령으로부터 시작하여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나 성경적으로 볼 때에, 성전중건령은 최초로 고레스가 BC 538년에 내렸고(스 1:1) 20년 후인 BC 516년 완공되어 봉헌식을 했으며(스 6:15-18), 세대주의가 주장하는 BC 445년은 성전중건령이 아니라 예루살렘성의 보수령으로서, 하루를 일년으로 계산하는 방법도 틀렸고, 성전중건령의 기산점부터 틀렸다.

특히 주님의 재림은 몰래 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도록 공개적, 가시적, 우주적으로 온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그들이 “교회가 휴거한다”고 가르치는 이들의 이유는 교회와 이스라엘을 분리하는 데서 기인하며, 그들의 주장은 이 땅에 다윗 왕국이 회복되기 위해서 임시 변통으로 삽입되었던 교회가 하늘로 들림을 받아 지상 무대에서 없어지고, 이스라엘의 왕국이 성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 24:40-41에서 “밭에 있는 두 사람과 맷돌을 가는 두 여자 중”에 하나는 데려간다는 내용은 재림의 시간이 언제인지 알 수 없다는 돌연성과 선택성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것이 비밀적 휴거라는 어떤 구체적인 이유가 되지 않으며, 또한 성경은 재림이 두 번이라는 어떤 근거도 제공하지 않는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살전4:16)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벧후3:1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마24:30, 참고, 막13:26, 눅21:27, 계1:7)


6) 극단적 세대주의 / 이단적 세대주의

비록 세대주의가 다양한 성향을 보이고 있지만, 세대주의가 점점 극단적인 주장으로 치우침으로서, 다양한 이단적 세대주의 또는 사이비적 세대주의로 발전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세대주의와 이단적 세대주의는 한걸음 차이밖에는 없다. 이와같이 위험한 세대주의는 우리나라에서는 초대형교회 J목사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아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해석이 계시록의 666, 적그리스도, 짐승, 열뿔, 음녀 등과 같은 특정 단어에 대한 해석과 다니엘서의 70이레와 2300주야, 3년반 등에 대한 해석이 될 것이다. 세대주의가 문자적인 성경을 표방하는 것과 달리, 이들은 임의적이고 자의적인 성경해석을 근거로 어떤 특별한 상황과 징조를 만들어서 임박한 종말을 주장하므로서, 시한부종말론까지 발전됐다.

예를 들면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짐승의 수 666을 바코드, 은행카드, 컴퓨터, 베리칩으로 해석하는 견해인데, 어느 성경에도 이러한 해석에 대한 근거가 없으며, 논리적인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주장을 했던 사람들조차 현재 바코드 있는 물건 구매를 거부하거나, 은행카드 소지를 거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며, 특히 컴퓨터의 문명적인 혜택을 거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더욱이 베리칩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나 삽입하여야 한다는 법적인 강요도 없을 뿐더러, 베리칩을 장착하여야만 구매를 할 수 있는 제도가 어느 나라에서도 시행된 적이 없다.

또 프리메이슨이나 일루미나티 같은 단체, 또는 유대인들이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음모론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또 예루살렘이 사탄의 본거지로서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게 되리라는 주장은 이들이 인용하는 성경구절이다. 세계단일정부와 세계단일종교가 그들의 단골메뉴로 등장하였고, 열뿔이 유럽연합이라고 주장하던 자들이 있었지만, 유럽연합이 27개국이 되도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특히 이러한 극단적세대주의와 연합한 신사도운동 단체에서는 자신에 속한 교회나 단체에서 자신들의 특정한 교리나 사상을 따르는 자만이 어떤 혜택, 예를 들면 자신들만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용어가 소위 신부운동, 요엘의 군대, 씨앗세대, 집단그리스도라고 불렸다.

특히 적그리스도에 대한 해석도 임의적이며 자의적인 것이 많은데, 또 이들은 적그리스도를 미국의 대통령이나 이스라엘의 수상과 같은 어느 국가의 특정한 정치가라고 지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정치가들이 임기를 마칠 때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떤 세대주의자들은 가톨릭을 적그리스도라고 주장하여 적대시하기도 하여 음녀를 마리아라고 주장하기도 하였으며, 혹간은 유럽의 계몽주의를 음녀로 해석하여 자유의 여신상을 음녀라고 하였다. 그러나 요한일서는 적그리스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결론적으로 적그리스도는 어느 시대에 국한된 특정한 정치가나 개인을 지칭하지 않는다.

(요일 2:18)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요일 2:22) 거짓말 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요일 4: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요이 1:7)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요일 2:18에서 사도요한은 적그리스도가 마지막 때에 나타난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요일 4:3에서는 적그리스도가 벌써 세상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요일 2:22과 요이 1:7에서는 성육신을 부정하는 영지주의자를 적그리스도라고 언급하고 있다.
또한 적그리스도라는 단어는 단수로 표시되었으나, 요일 2:18에서 많은 적그리스도는 복수명사로 표시되어 있으며, 요이 1:7에서도 당시에 적그리스도라고 하는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다고 말한다.

특히 세대주의는 대형교회 일부 유명 목사들도 이러한 주장을 하여 한국교회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주장들은 극단적 세대주의라기 보다는 이단적 세대주의 혹은 사이비적인 세대주의로 보아야 한다. 특히 1948년을 이스라엘 독립을 마태복음 24장의 무화과나무로 비유하여 한 세대 안에 예수가 재림한다는 임박한 종말론을 주장하였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교회 안상홍은 한 세대를 40년으로 보고 1988년에 종말이 온다고 주장하였고, 초대형교회 J목사는 50년으로 보고 2000년 안에 종말이 온다고 주장을 하다가 이단시비에 몰리자 공개사과를 한 적이 있으며, 감리교 대형교회 K목사는 한 세대가 100년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는데 이 글을 읽는 우리 모두는 2048년까지 살 수가 없으므로 그때까지 확인할 수 없을 것이다.

7) 간극설(Gap Theory)

지방교회와 형제교회, 말씀보존학회, 베뢰아 등의 세대주의를 보면 창조론에서 간극설, 소위 재창조론을 주장한다.

창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 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특히 세대주의를 표방하는 이단교회들은 창세기 1장의 1절과 2절 사이에 상당한 시간적 간격이 있었다고 주장을 한다. 그러한 주장을 소위 ‘간격설’ 혹은 ‘재창조설’이라고도 한다. 즉 하나님이 1장 1절에서 천지를 창조하셨고, 1장 2절에서 타락한 천사들이 하나님께 범죄하여 그들을 심판하기 위해 전쟁이 있었고, 그 결과 세상이 황폐하여지고 무질서하여졌다는 것이다. 즉 창세기 1장 1절에서 창조된 세상이 사탄의 범죄로 인하여 세상이 파괴되어 2절에서 땅이 혼돈해지고 황폐하여졌다고 해석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라는 구절에서 “흑암”을 빛의 세력과 대항하는 사탄들의 세력으로 상징적인 해석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견해는 결코 정통신학적 견해가 아니며, 비성경적인 견해이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➀ 그러한 견해는 존재론적인 이원론이다.
어느 성경에서도 창세기 1장 2절의 혼돈과 공허가 사탄과의 싸움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또 혼돈과 공허라는 단어를 히브리어 어원적으로 살펴볼 때에는 “황폐, 무질서”를 뜻하지 않으며, 혼돈과 공허가 사탄과의 싸움의 결과라는 어떤 성경적인 근거도 없다. 성경은 오히려 사탄은 결코 하나님의 대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앙겔로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유1:6)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앙겔로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벧후2:4)

즉 사탄은 하나님과 서로 대결할 만한 이원론적인 존재가 결코 아니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요일4:4)

➁ 혼돈과 공허의 의미
‘혼돈’(the existing chaos)을 가르키는 히브리어 ‘토후’는 영어로 without form 혹은 formless 로 번역된다. ‘공허’는 히브리어 ‘보후’로서 ‘비어있다’는 어원을 가지고 있으며, 영어로는 void로 번역된다. 문자적으로나 어원적으로 혼돈과 공허는 ‘형태가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KJV] 영어성경 And the earth was without form, and void;
[NIV] 영어성경 Now the earth was formless and empty,

그렇기 때문에, 혼돈과 공허는 "아직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상태"로 해석하는 것이 전통적이며 보편적인 해석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6일 동안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땅”으로 창조를 진행하신다. 성경은 하나님은 사람이 거할 수 있도록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호와는 하늘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며 땅도 조성하시고 견고케 하시되 헛되이 창조치 아니하시고 사람으로 거하게 지으신 자시니라, 그 말씀에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사45:18)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1절), 3절에서는 빛을 지으셨다. 빛을 만드셨다는 것은 그 전에 어두움이 있었다는(빛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그 이후의 하나님의 창조는 사람이 거할 수 있는 환경으로 계속 조성하신다. 즉 하나님께서는 물과 물을 나누시고, 물과 뭍을 나누시며, 달과 해와 별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식물(食物)을 위하여 열매와 채소등과 짐승들을 창조하신 후, 여섯째 날에 인간을 창조하셨다.

➂ 어두움은 항상 악의 상징적인 단어로 사용된 것이 아니다. 간격론 지지자들에 따르면, 창세기 1:2의 ‘어두움’(darkness)은 악과 사탄을 뜻하는 단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시편기자는 하나님께서 주께서 흑암을 지으셨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주께서 흑암을 지어 밤이 되게 하시니 삼림의 모든 짐승이 기어나오나이다”(시104:20)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사45:7)

만일 어두움이 사탄을 의미한다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할 수 없다.

“주야를 주관하게 하시며 빛과 어두움을 나뉘게 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1:18)


➃ 히브리어 접속사 ‘와우’와 동사 ‘하에타’
창세기1장 1절과 2절 사이에는 히브리어 접속사인 ‘와우’(그리고)라는 단어가 들어간다. 그것은 1절과 2절 사이에 오랜 간격이 있었다는 주장을 부인한다.
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게 되었다”(became)고 성경을 해석하는 몇몇 사람들에게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였다”(was)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말하여준다.

이 간격론이라고 하는 이론의 유래는 교회사에서 더 일찍 거슬러 올라 갈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스코틀랜드 학자인 Thomas Chaimers와 죠오지 H. 펨버(1876)의 사역에서 그 증거를 찾는데, 1917년에 G. I. 스코필드가 그의 주석에 이 이론을 포함시키면서 이 이론이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1876년과 1917년의 연도가 매우 중요한 것은 1880년에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제시한 진화론이 과학계에 의하여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며, 진화론은 세상이 수백만 년이 되었다고 가르쳤다. 그러자 일부 크리스천 신학자들은 중대한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어떻게 이 모든 것을 창세기 1장과 일치시킬 수 있을까? 수백만 년의 연도를 창세기 1장1절과 2절 사이에 존재한다고 추측되는 시간에 밀어 넣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재창조론을 주장하는 이단들은 세상을 하나님과 사탄의 이원론적인 대결로 이끌어가게 된다. 즉 하나님 대 사탄, 영과 육, 선과 악의 이원론적 대결구도를 주장하게 됨으로서 이러한 주장을 하는 교회들은 인간을 영혼육으로 분리시켜 육체는 죄와 사탄이 거하는 곳으로, 영을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으로, 혼을 인격이 거하는 곳으로 분리시키고 있다.

결론 :
세대주의는 비성경적인 주장이며 숱한 이단들을 만들어왔던 주장이다. 특히 종말론적으로 많은 이단들을 배출하였던 주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면 666을 컴퓨터 시스템이나 베리칩으로 해석하는 소위 음모론을 주장하는 이단들도 세대주의 사상에서 나타났으며, 심지어 황당한 사이비적인 신천지의 교리도 부분적으로 세대주의적인 해석이 나타나는데, 시대별로 구원자가 나타나서 배도-멸망-구원의 순서를 밟는다거나, 계 20장 4절의 ‘살아서’(헬, 에제산)를 죽지않고 산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 재창조에 대한 교리도 포함된다. 특히 시한부종말론을 주장하거나 임박한 종말론을 주장하는 단체들의 교리도 세대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최근에는 신사도운동 혹은 아이합같은 곳에서 세대주의와 연합하려는 시도가 일어나고 있으며 백투예루살렘, 다윗의 왕국, 이스라엘의 회복 등은 그와 같은 움직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스라엘에서 24/7 기도의 집을 운영하는 릭 조이너와 유대교에서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 메시아닉 쥬와 같은 단체(메시야닉 쥬는 삼위일체나 기독론을 믿지 않는다), 특히 오순절계열은 대표적인 세대주의라고 말할 수 있으며, 물론 지방교회나 구원파 계열, 일부 형제교회도 같은 세대주의이지만 그들의 특성으로 볼 때에 신사도운동에 참여하지는 않을 것이고, 그러나 베뢰아 계열과 오순절계열은 신사도운동과 함께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세대주의가 다양한 형태로 변질되고 있고 일부 극단적인 세대주의들은 말도 안되는 황당한 성경해석과 함께, 시한부종말론을 주장하므로서 그 위험성이 매우 심각하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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