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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논문]세대주의 종말론이 이단 발생에 미친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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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논문]세대주의 종말론이 이단 발생에 미친 영향
  • 임웅기
  • 승인 2014.01.27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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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웅기(본지 객원기자, 한국기독교이단상담소 광주상담소장)

1. 들어가는 말

한국교회와 사회에서 신천지를 비롯한 이단사이비 단체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원인은 어디에서부터 시작했을까? 한국사회에 유독 자신을 재림주 또는 구원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 점에 대해 궁금해 왔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필자는 일반대학교의 석사 논문을 한국 개신교계 신종교의 윤리성에 대한 비판적 접근(신천지 증거장막 성전을 중심으로)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쓴 적도 있다. 한국에서 발생한 재림주, 이단사이비 단체들의 뿌리는 1930년대, 1882년 7월 1일에 출생하여 평안북도 철산에서 활동한 김성도의 “새주파”, 1901년 1월 3일에 함경남도 갑산군에서 태어나 원산에서 활동한 백남주의 “원산 신학산”, 1909년 황해도 장연군에서 태어난 황국주의 “새 예루살렘 순례단” 등으로 보고 있다(1885년 경에는 장로교의 언더우드, 감리교의 아펜젤러 선교사가 들어와 본격적인 전도가 시작했을 때다). 1920년 경에 “정도교”, “남방여인”, “한에녹”이라는 인물이 구원자라고 주장했다고 하지만 이들에 대한 문서화된 기록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1940년대는 백남주와 김성도의 영향을 받은 1917년 경상북도 칠곡군 인동면에서 태어난 김백문의 “이스라엘 수도원”, 황국주의 제자로서 1897년 태생인 정득은의 “삼각산 기도원”, 1950년대에 들어와서는 이용도의 “예수교회” 출신이며 김백문과 정득은의 제자인 1920년 1월 6일 평안북도 정주군 덕이면 상사리에서 출생한 문선명의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1917년 11월 22일 평안북도 영변에서 출생한 박태선의 “전도관”(천부교)으로 계보가 이어져 내려온다. 그 후에 대전교도소에 성폭력과 강간혐의로 10년형을 선고 받고 수감되어 있는 “기독교복음선교회”의 총재 정명석 교주(1945년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에서 출생)는 재림주 3세대 정도로 분류할 수 있을 듯하다. 그는 문선명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강사 출신으로 통일교의 영향을 받아 1970년 후반에 독립했다.

박태선 “전도관”의 영향을 받은 단체는 1990년대 한국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신도살해 암매장 사건’이 발생한 조희성 교주의 “영생교”와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현리 출신으로 박태선 “전도관”을 거쳐 유재열 “장막성전” 그리고 백만봉 “재창조교회”로부터 영향을 받은 이만희 교주의 “신천지증거장막성전”이 있다. 이만희 교주의 신천지 증거장막 성전은 김건남·김병희 씨(문선명 교주의 통일교로부터 영향을 받은 진진화의 “생령교회” 출신)의 영향을 받았다. 이에 따라 신천지 교리 가운데는 통일교 교리와 유사한 부분이 발견됨을 알 수 있다.

한국교회 언저리에서 맥이 끊기지 않고 이어져오는 이단사이비 단체의 발생원인과 이런 단체들에 영향을 미친 사상은 과연 무엇일까? 첫째, 미국 근본주의의 토양 속에서 세대주의 종말론의 영향을 받은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와 선교활동을 했다. 이에 따라 그 영향을 받은 목회자들이 한국 전역에 퍼져 선교활동을 했기 때문에 한국교회는 초기교회부터 세대주의 종말론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세대주의 종말론은 성경을 7시대로 나누고 시대 시대마다 하나님의 구원방법이 다르며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을 통해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진다고 성서를 해석하고 있다. 이 시대 구분은 자신을 재림주 또는 구원자로 내세우는 이단사이비 단체에서 약간의 변형단계를 거쳐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종교를 통해 현실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적인 유토피아를 실현하고자 하는 민족주의자들이 있었다. 특히 종교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했던 민족주의자들은 불교의 미륵사상과 민중 속에 흐르고 있는 정감록의 정도령 사상, 그리고 성서에 나오는 말세의 메시아 사상과 습합하여 이단사이비종교 운동을 일으키게 된다.

셋째, 일제강점기의 암흑기 시대 상황속에서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억압과 고통속에서 해방을 바라는 한국민들의 바람과 맞물려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로 인한 한국민에 대한 일본의 탄압은 교회가 백성들의 피난처 구실을 하게 만들었다. 또한 교회는 애국활동의 모임장소가 되었는데 특히 세대주의 영향을 받은 초기 한국교회의 성서해석속에서 요한계시록 또는 다니엘과 같은 이스라엘이 처한 시대적인 상황과 일치되는 점을 발견하고 가르쳤다. 세대주의 전천년설은 일제로 인한 폭압에 비추어 해방과 광복을 간절히 바라는 한국 백성들에게 가슴깊이 와 닿았기 때문에 빠르게 흡수되었음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세대주의 종말론이 무엇이며, 한국의 불교·유교·무속의 사상과 세대주의 종말론이 일치되는 것은 무엇이며 한국의 불운한 정치사회적인 배경 속에서 세대주의 종말론이 빠르게 흡수됐고 결국 세대주의 영향 속에서 이단사이비 단체들이 생성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 세대주의 종말론의 영향을 받은 한국교회
세대주의에도 다양한 견해들이 존재하지만 보편적인 것은 스코필드의 일곱세대 체계로 구분하는 방법이다. 스코필드(C.I. Scofield)는 세대의 정의를 ‘하나님의 뜻이 어떤 특수한 계시를 통해 인간에게 주어지고 인간의 순종이 시험되는 일정한 기간’으로 주장하였다.1) 그가 말한 세대는 일곱 세대로 무죄세대(타락 이전), 양심 세대(타락부터 노아까지), 인간 통치 세대(노아부터 아브라함까지), 언약세대(아브라함부터 모세까지), 율법 세대(모세부터 그리스도까지), 은혜 세대(교회 시대), 왕국시대(천년왕국)로 구분하는데, 천년 왕국이 끝나면 영원한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세대주의 창시자는 존 넬슨 다비(John Nelson Darby)로 알려져 있지만 언제 시작이 되었는지는 명확하게 알 수가 없으며 세대주의자들은 전천년주의자들인 반면에 모든 전천년주의자들이 세대주의자들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세대주의는 한국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지금도 그 영향이 지속되고 있으며 특히 재림주 이단사이비 단체들의 성경 구조 가운데 시대구분과 종말론 사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부분임에 틀림없다.

1) 다비의 영향
세대주의는 19세기 후반 다비와 그가 지도자로 있던 플리머스형제단(Plymouth Brethren) 운동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것을 인정한다.2) 그는 1800년 11월 런던에서 아일랜드인 부모에게서 태어났으며 어린시절을 아일랜드에서 보내면서 웨스트민스터 학교를 다녔다. 그후 더블린(Dublin)에 있는 트리니티 칼리지(Trinity College)를 다녔고 1819년 여름에 고전 최우수자(Classical Gold Medalist)로 졸업했다.3) 대학 졸업 후 법률가가 되었고 회심한 후에 직업을 포기하고 1825년 더블린의 마기(Magee) 대주교에 의해 구교의 부제로 임명되었으며, 위크로우(Wicklow)주에 있는 엔니스케리(Enniskerry) 교구에 부목사로 지명되었다.4)

성직자로 임명받고 그의 교구에서 로마 가톨릭 교도들이 1주일에 6~7백명 씩 개신교로 개종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영적각성운동에 엄청난 노력과 활동을 쏟아 부었다. 그러나 영국교회가 왕에 대한 충성 서약을 요구하는 칙령을 발표하는 것을 보고 실망하여 영국 교회를 떠나 형제단 모임에 참여하게 되는데 개인적인 친교와 성경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일종의 교회 갱신 운동이다.

형제단 운동의 초기 지도자들은 그로브(A.N. Groves), 뉴턴(B.W. Newton), 돌만(W.H. Dorman), 크로닌(E. Cronin) 등으로 이 운동이 “플리머스 형제단”(Plmouth Brethren)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주일마다 떡을 떼고, 인간의 안수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르심으로 목회 사역에 봉사하는 것을 기본원리로 하는 것이 이 운동의 특징이다. 이 운동은 문자적인 성경해석에 근거하여 영적인 연합과 자유를 강조했다.5)

다비는 형제단 운동의 창시자는 아니지만 형제단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탁월한 조직 능력을 가지고 하나의 모임으로 만들고 조직화 하였다. 그래서 이 운동을 “다비주의”(Darbyism)로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운동의 두 지도자 뉴턴과 다비의 형제단의 주도권 다툼 및 성서의 예언에 대한 해석 차이로 인해 1845년 분열을 맞이한다. 다비는 뉴턴과의 논쟁에서 성경 해석의 새로운 원리와 신학 개념을 제시했다. 문자적 예언 해석 원리와 그것에 근거한 이스라엘과 교회의 철저한 구분, 환난 전 교회 휴거, 성경을 유대인의 본문과 교회의 본문으로 나누는 성경의 구획화, 천년왕국의 유대화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다비의 신학체계를 세대주의라고 부른다. 이것은 다비가 인류의 역사를 여러 세대로 나누고 하나님의 활동 양태가 각 세대마다 다르다고 보았던 데서 비롯되었다.6)

다비는 남북 전쟁 이후 미국을 수차례 방문하며 집회를 인도하였다. 집회를 인도한 결과 많은 추종자들이 따르게 되었는데 그 중에 사이러스 스코필드(Cyrus I. Scofield)가 대표적이다. 그는 다비의 사상을 미국에 확산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의 대표적 저술이 스코필드관주 성경이었다.7)

2) 스코필드의 영향
세대주의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개최되었던 예언 대회와 스코필드 관주성경을 통해 미국 전역으로 확산이 되었다. 특히 1909년 출판되어 2백만 부 이상 판매된 스코필드 관주 성경은 세대주의를 대중화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 이 관주 성경은 성경과 주해서를 한 권에 결합시킨 것이다.

스코필드(1843~1921)는 첫째, 문자적 해석법을 추구했다. 둘째, 이스라엘과 교회를 하나님의 두 백성으로 구분해서 가르쳤다. 각각 자체의 목적과 운명이 있는 두 백성으로 나누었고 이스라엘은 지상적이고 교회는 천상적으로 해석했다. 셋째, 세계 역사를 시대들 혹은 세대들로 정확하게 나누었다. 에베소서 1장 10절을 스코필드 관주성경에는 세대들이 “땅 위의 인간생활을 결정하는 정리된 시대들”로 규정하였고 일곱 세대를 말한다고 주장하였다. 넷째, 대환난 이전에 교회가 휴거된다고 하였다. 스코필드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재림은 두 국면이 있는데 하나는 “휴거”(Rapture)로서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땅에서부터 옮겨가시러 오신다. 그러나 그때 그리스도는 만민에게 보일 수 있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다른 하나는 이 일 후에 7년 대환난이 일어나는데 7년 끝에 그리스도께서 만민을 심판하시기 위해 보이는 모습으로 나타나시고 땅은 새롭게 된다.8)

스코필드의 근본적인 특징은 하나님의 백성을 둘로 구분하는 이분법에서부터 성서해석학의 이분법을 도출하여 이스라엘은 지상적이고 교회는 천상적으로 보았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은 자연적이고 교회는 영적으로 보았다. 이스라엘에 관계된 것은 문자적으로 보았다. 그러나 교회와 관련된 성서의 구절들은 문자적이면서 동시에 상징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세대주의는 19세기 후반 (1878-1890)에 활발하게 사경회 및 성경 예언 모임을 통하여 널리 파급되어 갔다.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에 세워진 대부분의 성경학교들은 세대주의자들에 의해 운영되었고 특히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 인식은 전도와 선교에 대한 열정을 낳게 했다. 그리고 1875년 대부분 미국의 복음주의자들이 세대주의를 신봉하게 되었다. 그들의 부흥이나 선교 운동의 동기는 시대적인 현상들을 말세적 징조로 해석하고 현재의 세상을 하나님의 심판을 앞두고 멸망해 가는 것으로 보았으며 선교나 전도의 초점이 개인의 영혼 구원에 있다.9) 그래서 미국의 19세기는 타 민족에 대한 영혼구원에 대한 동기가 일어나 선교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므로 한국에 파송된 미국 장로교 선교부의 신학적 경향은 때 아주 강한 전도의 열정과 철저한 성경의 권위에 대한 신념,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속죄에 대한 복음의 내용이 주요점이다.10) 미국 선교사들은 대부분 학생자원 운동과 예언 모임을 통해 신앙적 각성과 선교에 대한 헌신을 하며 연결되었다. 미국 선교사들이 한국이나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로 파송되었던 선교사 수 가운데 1889년과 1923년 사이에 무디 성경학교 출신이 1143명이나 된다.11) 그러므로 미국 교회의 선교활동은 1920년대까지 이들에 의해 주도되었기 때문에 한국에 파송된 미국 선교사들의 신학적 경향은 세대주의 종말론에 입각해 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12)

장기간 미 북장로교 선교부 총무를 지냈던 브라운(A.J. Brown)은 1911년 이전에 한국에 파송된 미국 선교사들의 신학적 입장에 대해 “상당히 보수적이며 성경비평에 대해서는 위험스러운 이단으로 간주했고 전천년설을 아주 중요한 진리로 받아 들였다”고 밝혔다.13) 또한 한국을 방문했던 플로이드 헤밀톤(Floyed E. Hamilton) 선교사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천년왕국을 핵심적인 신성한 교리로 간주했던 세대주의적 전천년주의이거나 전천년주의자들이다’라고 증언했다.14) 그리고 스왈련(William L. Swallen, 1865-1954) 선교사의 부인이었던 살리에 스왈련(Saile W. Swallen)은 1894년에 모든 장로교 선교부는 전천년설을 신봉했으며, 한국에서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파급한 장본인은 제임스 게일(James S. Gale)이라고 밝혔다.15)

게일이 선교사로 헌신하게 된 가장 큰 영향은 그가 토론토대학교(University College, Toronto) 학창 시절에 방문했던 무디로 인한 것이며 그는 1888년 한국으로 떠나는 과정 중에 무디를 벤쿠버에서 만나 그의 축복기도를 받고 내한했다고 한다.16) 게일은 체계적인 신학 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그는 언어적 능력이 뛰어나 수많은 저서들을 번역하였으며 특히 언더우드 선교사와 함께 스코필드 관주 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출판을 시도한 점은 당시 장로교 선교사들 중에 세대주의의 영향이 얼마나 강하게 작용했는지에 대해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17)

3) 마포삼열 선교사와 세대주의
마포삼열 선교사는 미국 중서부 지역에서 성장하였고, 1829년에 설립된 맥코믹 신학교(McCormick Theological Seminary)에서 신학수업을 받았다. 그 후 1890년 1월 25일 한국으로 파송된 마포삼열을 비롯한 미북장로교 소속 선교사들은 성경전부가 하나님의 영감된 말씀이며 신앙과 행위의 유일무오한 법칙이라 믿었다.18) 그의 특징 중에 한가지 중요한 점은 전천년설을 믿고 재림이 임박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이다. 방위량에 의하면 ‘마포삼열의 믿음은 그의 생각과 교육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는데 그의 일생동안에 결혼할 때 외에는 늘 그같은 기대를 품고 있었다’고 한다.19)

마포삼열의 전천년설 신봉은 그 당시의 대부분의 북미 선교사들의 공통적인 경향이었다. 무디(D. L. Moody)의 영향으로 일어난 학생자원운동(SVM)은 대부분 세대주의 전천년설을 믿는 사람들이었다.20) 주님의 재림이 임박하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하루 빨리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힐 수 밖에 없었고 그 같은 태도가 그들로 하여금 열정적 전도활동에 몰두하게 만들었다. 마포삼열의 전도열정도 그같은 신앙적 배경에 놓여있다.21)

마포삼열은 초대 평양신학교를 세우게 되는데 마포삼열과 배위량이 5개년 교과 과정을 만들고 1년 3개월은 교실 수업을 하고 9개월은 실습을 하도록 하였는데 초대 학장으로 마포삼열이 된다. 1907년에 신학교에서 첫 졸업생 7명을 배출하는데 마포삼열은 장대현교회를 담임하다 길선주 목사가 안수를 받자 담임 목사직을 물려주게 된다.22)

2. 일제강점기 시대 속에서 태동한 세대주의적 종말론
한국 선교 초기 역사에서 외국의 선교사들이 선교의 효율성과 활성화를 위해서 한국의 정치 사회적인 상황을 무시하고 포교활동을 할 수는 없었다.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강제로 억압된 한민족을 교회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선교 정책이 한국민이 바라는 독립으로 맞춰질 수밖에 없으며 자연스럽게 선교 메시지도 일제치하에 있는 한민족의 현실을 위로하고 해방을 소망하는데 주안점을 둘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초기 미국 선교사 마포삼열의 영향을 받은 길선주의 사상을 보면 시간관과 말세론과의 관계에서 구약의 시간보다는 초림부터 종말에 이르기까지의 시간대에 더 큰 의미를 부여했다. 길선주는 그리스도의 종말론적 구원사역을 논함에 있어 모든 신자 개개인이 항상 현재(現在)라는 시점을 기점으로 하여 종말을 지향한다는 점과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초림)으로부터의 최후의 심판(재림)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말세론적 사역에 초점이 맞추어진다는 점이다.23) 그래서 1907년의 대부흥 운동은 성서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함으로 비참한 바벨론의 포로기 생활을 겪는 것과 같이 한민족도 일제의 압제를 당하는 고통을 일치시킴으로 나타난 운동으로 보여진다.

길선주는 순례자적인 삶을 강조하는데 당대가 일제치하의 피압박 식민통치 시기였고 더군다나 교회가 열심과 능력을 읽고 부패하던 시기였다.24) 길선주가 말하는 순례자적 삶은 ‘임박한 재림론’과 맞물려 있다. 그는 남은 때가 촉박하다며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동안 악한 세상을 본받지 말라고 경고하면서 남아 있는 시간을 허송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1920년대에 전도 빛 부흥 운동을 일으켰던 김익두 목사(1854-1950)는 “한국의 무디”라고 불린다. 그 또한 일제치하의 고통속에 놓인 백성들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는 종말론적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부흥 집회가 대중화되고 전국적인 운동으로 발돋움하는 계기를 조성했다. 종말론적인 설교와 이적 기사를 통해 절망과 상처의 시대에 암울한 한민족의 상황에 놓인 한국민들의 마음속에 기쁨을 주었고 광복의 희망을 그리스도의 재림에 맞추어 회개운동을 전개하였다. 일제의 강압 속에 시달리고 찌들려 허탈해 있던 이들에게 예수 재림과 그리스도의 왕권 회복 그리고 천년왕국은 피안의 세계에 대한 소망을 바라보고 현실을 극복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었다.

김익두 목사의 메시지 속에서 육신과 영혼을 나누는 이원론과 천국을 단지 미래적인 차원으로 이해하는 특징이 강한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의 영향을 감지할 수 있다. 그리고 김익두 목사 또한 길선주 목사와 마찬가지로 평양신학교 출신이며25) 세대주의 종말론을 지향하는 미국 스왈렌 선교사의 설교를 듣고 감동을 받아 세례를 받았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3. 한국의 불교, 유교, 민족종교에 나타난 재림주 사상
고려시대에 전파된 불교의 내세관은 초월적 세계에 대한 관심으로 이 세상에서의 삶에 대한 평가가 따른다는 심판의식과 불교의 영향으로 낙원이나 지옥에 대한 개념도 한국민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대승불교의 “보살”개념은 시대적인 억압 속에서 구원을 이루는 미륵불 사상으로 등장하고 있다.

조선의 패망과 일제 강점기 시대의 한국사회는 어수선한 상태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일제의 수탈과 억압된 통치로부터 그리고 서양 외세의 간섭과 개방으로부터 한민족을 독립시키고자 하는 민족주의자들이 있었다. 또한 정치적 독립은 한시적임을 직감하고, 종교를 통하여 현세에서 일제와 외세에 억압당하는 한민족과 민중의 고통을 덜어주고 궁극적으로는 유토피아와 같은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영원한 보상을 받고자 하는 민족주의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불교의 미륵사상, 정감록의 정도령 사상, 그리스도교의 메시야사상과 잘 융합하여 이단 사이비종교 운동을 시작하였다.26)

특별히 기독교계 이단사이비 재림주 단체들이 왕성한 활동을 한 이유는 종말 사상의 구체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불교, 민족종교의 정도령 등은 종말 사상이 매우 추상적이다. 이에 반해 기독교는 요한계시록, 다니엘서에 상징적이지만 매우 구체적으로 종말 사상이 기록되어 있다. 이 때문에 사람들에게 더 설득력과 흡수력이 강했을 것이다. 결국 세대주의 종말론의 영향을 받은 한국 초기 목회자들과 시대적으로 종말론적인 사상이 강한 한국인들의 심성을 토양으로 이단사이비 단체가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이용도 목사(1901-1934)를 들 수 있다. 그는 신비주의와 연결된 묵시론적 신앙을 추구하였고 그리스도의 고난을 자신과 동일시하며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합일이 쳔년 왕국적 소망 자체로 나타난다고 보았다.27) 자신이 그리스도와 합일로 이해되고 결국 그리스도의 피와 사람의 피가 교체되어 거룩하게 되는 피가름의 교리로까지 변질되어 훗날 이단사이비 종파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28)

또 박동기 전도사의 시온산 제국 운동이 있는데 미래에 일제가 망하고 하나님의 나라인 시온제국이 형성되기 때문에 대한민국을 12지역으로 나누고 12지파로 명명한 후 정부조직과 같은 편제를 만들고 헌법을 발표하기도 했다. 필자는 직접 시온산 제국의 발생지인 경북 청송을 방문하고 신도를 만나 대화를 나눠본 적도 있다. 시온산 제국의 창교자 박동기 전도사는 1945년 4월 25일이 유월절이 될 것이며 동년 5월 20일에 휴거될 것이라고 예언을 했는데 종말론의 한 형태의 모습을 보인 이단사이비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29)

앞에서 살펴본 대로 이단사이비 종교의 특징은 창교주를 중심으로 이단사이비 종교의 조직이 형성되고 교리와 제의를 갖추게 된다는 점이다. 개신교계 이단 사이비 종교의 계보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김성도의 새주파, 백남주의 원산 예수교회, 황국주의 새 예루살렘 순례단을 통해 김백문의 이스라엘 수도원과 정득은의 삼각산 기도원으로 연결되고, 다시 문선명의 통일교와 박태선의 천부교(전도관)로 이어져 내려오다가 신천지 증거 장막성전의 이만희에게 연결된다.

메시야 사상과 연결된 한국 개신교계 이단사이비 종교의 활동은 대부분 반세기를 넘지 못하고 단체의 간판을 내리게 된다. 이단 사이비 종교의 창교주는 대부분 자신이 성서에 예언된 말세의 메시아를 뜻하는 구원자로 가르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현세의 고통과 죽음에서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기 위해 추종자가 되었으나, 호언장담했던 모습과는 정반대로 자신의 죽음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창교주는 맥없이 생을 마감한다. 따라서 창교주의 죽음은 더 이상 신종교 단체가 존재할 명분을 상실하게 만들고 그 영향을 받은 또 다른 사람이 나타나 자신을 재림주 또는 구원자로 주장하는 현상이 계속 반복적으로 답습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단사이비 종파 운동은 맥이 끊어지지 않고 창교주 사후에 사람만 바뀐 상태로 계속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4. 결 론
지금까지 한국에서 이단사이비 종교 운동이 일어나는 과정에 대해 살펴보았다. 1930년 전후로 발생한 이단사이비 종파는 미국 장로교에서 1889년과 1923년 사이에 파송했던 선교사들 대부분이 세대주의 종말론을 가진 자들이었으며, 미국 장로교의 영향으로 인해 한국 초기의 선교현장은 세대주의 전천년설을 주장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도 일제강점기의 억압과 압제 속에 살아가는 한민족의 고통과 괴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세대주의 종말론을 가진 초기 선교사들이 요한계시록과 다니엘서와 같은 종말사상이 강한 성경본문을 토대로 위로와 희망을 주는 형국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또한 바벨론과 로마제국은 현재의 일본이며 이스라엘의 포로기 상황과 로마제국의 기독교 핍박과 박해로 인한 초대 기독교인의 모습은 한국민의 고통과 일치하므로 회개운동과 종말운동이 강하게 나타났던 것이다.

평양신학교를 세우고 초대교장이 된 마포삼열 선교사, 스왈렌 선교사, 언더우드 선교사의 영향을 받은 평양신학교 졸업생 7인과 부흥사 김익두 목사의 절대적인 영향력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세대주의가 주장하는 일곱 세대인 무죄세대(타락 이전), 양심 세대(타락부터 노아까지), 인간 통치 세대(노아부터 아브라함까지), 언약세대(아브라함부터 모세까지), 율법 세대(모세부터 그리스도까지), 은혜 세대(교회 시대), 왕국시대(천년왕국)로 구분하는 시대 구분이 나타났다. 이런 성경구조는 고스란히 이단 사이비 종교 운동에도 흘러 들어갔다. 이단 단체의 창교주들은 세대주의 종말론처럼 아담의 시대, 노아의 시대, 아브라함의 시대, 모세의 시대, 예수의 시대, 그리고 재림주(구원자)의 도래 시대 등으로 시대를 구분하고 각 시대마다 구원의 방법이 다르다는 이단 교리를 가르치며 결국엔 창교자를 재림주로 주장하는 황당무계한 현상으로까지 나아가게 된 것이다.

재림주 사상은 결국 한국 사회에 뿌리깊이 내린 불교의 미륵불, 민족종교의 정도령 사상 그리고 기독교의 그리스도의 재림주와 결합하여 이단사이비 종파 형성에 도화선이 되었고 21세기 문명과학의 시대가 도래 했지만 지금도 임박한 종말론 또는 유사한 종말론 사상으로 명맥이 유지되어 한국 사회와 한국교회를 어지럽히는 이단 사이비 종파 운동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의 목회자들과 신학대학교에서는 이 문제의 심각성을 새삼 가져 바른 신학을 어떻게 정립하고 이를 한국교회에 어떻게 접목시켜 뿌리를 내릴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해답을 내놓는 일에 대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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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1) C.I. Scofield, Scofield Reference Bible (New York : Oxford Univ Press, 1917), p.5, 재인용.
2) 목창균, 『현대신학논쟁』 (서울: 두란노, 1995), p.230.
3) Hy Pickering, “Chief Men Among the Brethen” (London: Pickering & Inglis, 1913), p.12, 재인용.
4) Clarence B. Bass, 『세대주의란 무엇인가?』, 황철영 역, (서울: 생명의 말씀사, 1988), pp.60-61.
5) 위의 책, p.95.
6) Vern S. Poythress, 『세대주의 이해』, 권성수 역, (서울: 총신대학교출판부, 1990), p.26.
7) Dana L. Robert, “The Crisis of Missions’: Premillennail Mission Theory and the Origins of Independent Evangelical Missions”, in Earthen Vessels: American Evangelicalism and Foreign Mission, 1880-1980, eds, Joel A. Carpenter and Wilbert R, Shenk (Grand Rapids: Eerdmans, 1990), pp.44-45, 재인용.

8) 위의 책, pp.27-32.
9) R. Pierci Beaver, “Eschatology in American Missions”, Basileia, Walter Freytag zum 60 Geburtstag, eds. J. Hermelink and H.J. Margul(Stuttgart: Evang. Mis sionsverlag, 1959), pp.69-70, 재인용.
10) Harriet Pollard, “The History of the Missionary Enterprise of the Presbyterian Church, U.S.A. in Korea with Special Emphasis on the Personnel” (M.A. Thesis, Northwestern University, 1927), p.26, 재인용.
11) Timothy P. Weber, “Living in the Shadow of the Second Coming: American Premillennialism, 1875-1982” (Chicago and London: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7), p.13: Perrry Miller, “Errand into the Wilderness” (Cambrige, Mass: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ersity Press, 1956), p.80, 재인용.

12) 박응규, “일제하 한국교회의 종말론 형성에 관한 연구” 역사신학 논총(2000); p.18
13) Arthur J. Brown, “The Mastery of the Far East” (New York: Scribners, 1919), p.540, 재인용.
14) Floyd E. Hamilton, “The Basis of Millennial Faith” (Grand Rapids: Eerdmans, 1955), p.18, 재인용.

15) Richard Rutt, James Scarth Gale and His History fo the Korean People (Seoul: Royal Asiatic Society, Korea Branch, 1972), p.64, 재인용.
16) 위의 책, p.7, 재인용.
17) 박응규, “일제하 한국교회의 종말론 형성에 관한 연구” 역사신학 논총(2000), pp.184-185.
18) 박응규, “마포삼열(Samuel A. Moffett)과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 역사신학 논총(2007), pp.86-88.
19) W. N. Blair, “Precious Memories of Dr. Samuel A. Moffett”, 미간행 인쇄물, p.6, 재인용.
20) David Barrett, “Cosmos, Chaos and Gospel” (Birmingham: New Hope, 1987), p.50, 재인용.
21) 서정운, “마포삼열이 한국교회에 미친 영향” 장신논단(1901), p.43.

22) 서정운, “마포삼열이 한국교회에 미친 영향” 장신논단(1901), pp.68-69.
23) 안수강, “길선주의 시간관에 나타난 말세론 소고”, 역사신학 논총(2007), pp.212-213.
24) 길선주, 『감독의 책임』, 최인화 편, 길선주목사설교집, p.27, 재인용.
25) 박응규, “일제하 한국교회의 종말론 형성에 관한 연구” 역사신학 논총(2000), p.
26) 노길명, 『한국의 종교운동』(서울 : 고려대학교출판부, 2006), pp. 56-59 참조.
27) 박응규, “일제하 한국교회의 종말론 형성에 관한 연구” 역사신학 논총(2000), p.
28) 변종호 편, 『이용도 목사 전집 제1권: 이용도 목사 서간집』 (서울: 장안문화사, 1993), p.82, p.150.
29) 김남식, 『일제하 소종파 운동 연구』 (서울: 새순출판사, 1987), pp.113-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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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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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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