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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양이 떼신 인봉, 누가 또 뗀다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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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양이 떼신 인봉, 누가 또 뗀다 하나?”
  • 정윤석
  • 승인 2013.11.06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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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권위자 이필찬 교수의 신천지 해석 해부하기 3-2강(계시록 5장)

요한계시록 5장의 개요 

▲ ‘신천지 요한계시록 해석 해부하기’를 주제로 강연하는 이필찬 교수

천상의 장엄한 예배를 상상해 보자. 보좌에 계신 이와 책의 인봉을 떼실 유일한 존재, 어린양을 향해서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과 헤아릴 수 없는 천군과 천사들이 찬양과 경배를 올린다. “보좌에 앉으신 분과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이 길이길이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현대인의 성경 계 5:13). 일곱 인으로 봉한 책을 떼실 유일하신 그리스도를 향한 천상의 예배 광경, 그 장엄한 장면이 계시록 5장에 등장한다. 그리고 계시록 5장은 인을 떼신 그리스도를 향해 모든 관심을 집중한다. 그 인을 뗄 ‘사람’은 지구상에 없다. 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사람이니, 약속의 목자이니 모두 자격 미달이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떼신다.

그러나 신천지는 요한계시록 5장을 해석하며 ‘이만희’를 부각시키는 데 집중한다. 계시록 5장 말씀을 ‘이용’, 이만희 씨 하나를 약속의 목자로 만들며 그에게 집중시키는 장으로 전락시킨다. 요한계시록 5장도 약속의 목자, 계시록의 참 뜻을 해석할 자, 계시록의 예언과 실상을 증거하는 자, 인간 이만희 씨를 부각하기 위한 장치요, 수단에 불과하다. 이를 위해 신천지는 ‘계시록은 인봉·봉함된 말씀’이라고 주장한다. 나중에 열어야 할, 봉인을 뗄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계시록 5장의, 그리스도를 향한 그 장엄한 예배도 ‘하나님의 뜻이 영계에서 이룬 것처럼 이 땅 육계에 이루어지면 모든 만물이 창조주 하나님과 예수님께 세세토록 찬송과 영광을 돌려드리게 된다’고 살짝 바꿔 놓았다(요한계시록의 실상, 129p). 인봉 떼시기에 합당한 어린양께 이미 드려지고 있는 예배를 언급하는 본문의 설명은 무시한다. 계시록 5장을 자세히 보자. 성경 본문은 이 책이 어떻게 봉함됐는지에 대해 관심을 집중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계시록 5장은 무엇을 설명한 것일까?신천지의 핵심 주장과 그에 대한 이필찬 교수의 변증을 하나하나 살펴보자.

계시록 5장 1절에 대한 신천지의 주장
-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계 5:1)에서 봉한 책은 계시록 성취 때까지 ‘비유’로 봉함된 요한계시록이며 안팎으로 기록한 것은 계시록 말씀이다.
- 이 책이 봉함된 이유는 일곱 금 촛대교회의 일곱 목자가 첫사랑이신 예수님의 손에서(계 1:20) 떠나(계 2:4~5) 니골라당과 교제하며 그들의 교법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계 2:14~15, 20). 그 후 하나님의 말씀을 밝히 일러 주던 일곱 등불의 영이 일곱 사자를 떠났다. 즉 장막성전, 첫 장막이 이방교회에 멸망 당하자 일곱교회의 영이 따났고 일곱 사자는 더 이상 진리를 증거하지 못하게 된다. 책은 인쳐지고 봉하여졌다. 이 참 뜻을 해석할 자가 없어졌다.
- 그러나 예수님께서 마귀와 싸워 이겨 그 인을 떼실 수 있게 됐다. 그리하여 봉한 책은 먼저 (예수님에 의해) 영계에서 열리고(이만희 교주에 의해) 육계에서 펼쳐진다(요한계시록의 실상, 123~124).
- 봉한 책을 열기 전까지 세상에 참 진리는 없고 이 책이 펼쳐지면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

비판과 변증
계시록은 첫장막의 배도로 봉해졌다? 1절을 통해 계시록이 봉해졌다고 주장하는 게 신천지다. 그러나 이 구절은 다른 구절과 연관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게 이 교수의 지적이다. 1절에 ‘일곱인’(7은 완전수이니 완전히 봉인됐다는 의미)으로 봉한 책만 볼 게 아니라 계시록 5장 전체를 통해 인봉된 책을 누가 뗐는지 확인해보라는 의미다. 성경은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5절)고 말씀한다. 그리고 어린양이 나아와 두루마리를 취하신다(7절), 어린양은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도다(9절)라고 경배까지 받는다. 어린양이 분명히 인을 떼고, 풀어서 열어 놓았다고 성경은 말씀한다. 그런데 예수가 열어 놓은 것을 과연 누가 닫고 봉함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 첫 장막의 배도로 계시록이 인봉됐다는 주장이 담긴 신천지측 책자(신천지 발전사, 30p)

이 교수는 계시록이 봉인됐다는 신천지의 해석을 비판하며 예수님께서 열어 놓으셨는데 닫았다고 주장하면 이는 예수님의 능력을 매우 폄하하거나 무시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즉 이만희 씨는 마치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시려 하다가 결국 성공하지 못한 것처럼 과소평가 내지 평가절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천지의 주장과 달리 계시록은 일곱인으로 봉했지만 어린양이 그 봉인을 떼신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책이 봉함됐다는 것은 5장의 구약적 배경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됐다는 게 이 교수의 지적이다. 그는 이 책의 봉인과 관련해서는 단 8장, 12장에서 온 사상이라고 설명한다. “그가 내가 선 곳으로 나왔는데 그가 나올 때에 내가 두려워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매 그가 내게 이르되 인자야 깨달아 알라 이 환상은 정한 때 끝에 관한 것이니라”(단 8:17), “이르되 진노하시는 때가 마친 후에 될 일을 내가 네게 알게 하리니 이 환상은 정한 때 끝에 관한 것임이라”(단 8:19), “이미 말한 바 주야에 대한 환상은 확실하니 너는 그 환상을 간직하라 이는 여러 날 후의 일임이라 하더라”(단 8:26).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단 12:4). “그가 가로되 다니엘아 갈지어다 대저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니라”(단 12:9).

종말의 때까지 다니엘이 약속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는 성취되지 않는다. 그때까지는 봉함됐다. 이 말은 바꿔 말하면 종말이 되면, 마지막 때가 되면 간수하고 봉함됐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의 인봉이 완전히 떼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 종말이 도래하는가? 신천지가 태동한 1984년이 아니라 이미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을 때 이 모든 나라들의 권세를 능가하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이 어린양이 인봉을 떼셨다. 따라서 예수님이 떼신 인봉을 또다시 덮을 수 있는 능력자는 없는 것이고, 인봉이 떼지지 않았다며 인간 누군가 나서서 떼겠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을 실패자로 보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이외에도 이 교수는 과연 계 5:1의 ‘책’이 요한계시록인가라는 점에서도 신천지의 주장의 맹점을 지적했다. 책은 환상 중에 사도요한이 본 책이지 우리가 보고 있는 요한계시록이 아니다는 점이다. 요한이 환상 중에 본 책에 대해 이 교수는 “예수님이 인을 떼신 책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책이다”며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종말이 시작됐고 십자가 죽으심으로 봉함된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에 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온 우주에 예수 그분이 하나님의 나라를 통치하는 진정한 왕이라고 선포하고 세워지신 절정에 이른 사건이라고 표현했다.

어린양의 일곱 뿔과 일곱 눈에 대하여(계 5:6) - 신천지의 주장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계 5:6).
아래는 신천지의 주장
- 일곱 눈은 온 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다.
- 일곱 뿔은 예수님께 속한 ‘일곱 권세자’ 즉 일곱 육체를 말한다. 사람을 뿔에 비유한 것은 동물들이 머리의 뿔로 싸우기도 하고 힘을 나타내듯이 이들도 머리 되신 예수님께 속하여 심판하며 예수님의 위엄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 이전 장에 나오는 일곱 별이 예수님이 보낸 편지를 받고도 회개하지 않아 직분을 박탈당한 배도한 일곱 사자를 말하는 반면 본문의 일곱 뿔은 그 일곱 별을 심판하기 위해 세운 일곱 사명자를 말한다(요한계시록의 실상, 125)

비판과 변증
이필찬 교수는 신천지처럼 일곱 뿔을 예수님께 속한 일곱 권세자, 일곱 육체로 간주하는 것은 신천지 조직의 정당화를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계시록의 일곱 별은 첫장막이라는 증거장막에서 배도하여 직분을 박탈당한 자들인 반면, 일곱 뿔은 배도한 일곱 별을 심판하기 위한 일곱 사명자라는 주장도 잘못된 전제에서 끌어낸 잘못된 결론이라는 것이다.

그는 어린양의 일곱 뿔은 유대 문헌(에녹 1서 90장)에서 승리한 메시아적 왕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구약에서 ‘뿔’은 권세와 능력을 나타내는 은유적 표현으로 주로 사용되었다(신 33:17, 왕상 22:11; 시 89:17; 단 7:7~8:24, 시 90:6~12, 37 등)는 것이다. 따라서 어린양의 일곱 뿔은 완전수인 ‘7’과 함께 완벽한 권세와 능력을 소유하고 완전한 승리를 이루신 분임을 의미(이필찬, <내가 속히 오리라>, 도서출판 이레서원, 2006, 288~298)하지 예수님께 속한 일곱 육체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일곱 눈'에 대해 구약 배경을 설명하며 성령을 상징한다고 해석했다(계 1:4; 4:5 참고). '눈'은 지혜와 통찰력을 상징하는 것으로(슥3:9; 4:10) 성령께서 특수한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하여(행 2장)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와 일체된 사역을 행하심을 시사한다(요14:26; 15:26; 16:8, 13-15). 일곱 별은 교회 지도자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지상 교회의 천상적 대응체를 의미한다.

다음은 일곱 눈, 일곱영, 일곱 등대(등잔)의 구약적 배경과 요한계시록 5:6을 함께 설명한 내용이다.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가 보니 순금 등잔대가 있는데 그 위에는 기름 그릇이 있고 또 그 기름 그릇 위에 일곱 등잔이 있으며 그 기름 그릇 위에 있는 등잔을 위해서 일곱 관이 있고”(슥 4:2)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계 4:5)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 4:6)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사람들이 스룹바벨의 손에 다림줄이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다니는 여호와의 눈이라 하니라”(슥 4:10)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계 5:6).

▲ 일곱 등잔, 일곱 눈, 일곱 영, 모두 구약적 배경에서 이해해야 한다.

등잔이 하나님의 성전을 가득채웠다. 하나님의 눈은 성전만 채우는 게 아니라 온 우주를 가득채운다.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일곱 눈, 일곱 영은 성령을 가리킨다고 이 교수는 주장했다. 일곱 등잔, 일곱 눈, 일곱 영은 성전과 온 우주에 펼쳐지는, 성령님의 우주적 충만성에 대해 강조하기 위해 내세운 개념이다. 그렇다면 하나이신 성령을 왜 일곱 영이라 했을까? 그것은 일곱 등잔, 일곱 눈이라고 완전수 ‘일곱’을 내세운 구약과의 일관성을 위해서다. 이 맥락속에서 계 5:6의 일곱 뿔, 일곱 눈, 일곱 영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 대접과 거문고와 새노래(5:8~9) - 신천지의 주장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개역한글).

- 금 대접에 가득한 향은 성도들의 기도이며(8절), 그것을 담은 금 대접은 사람을(행 9:15), 향을 피우는 불은 하나님의 말씀이다(렘 5:14).
- 거문고는 성경을 말하며 새노래는 ‘계시록을 해석하는 말씀’을 의미한다.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해 내실 때 하나님은 친히 노래를 지어 모세로 하여금 가르치게 하셨으며 그 노랫말이 신 32장의 말씀이다. 이것을 ‘모세의 노래’라고 한다면 예수님이 주신 신약 성경의 말씀은 ‘계시록의 말씀’을 말한다. 새노래인 이유는 지금껏 들어보지 못한 새 말씀이기 때문이다(<요한계시록의 실상>, 125~126).

문제제기 및 변증
이 해설에 대해 이필찬 교수는 “신천지는 모든 단어에 ‘말씀’을 넣기를 좋아한다”고 지적하며 “하나님의 말씀이 중요하다지만 아무 곳에나 말씀을 대입하는 것은 오류를 갖고 온다”고 비판했다. 신천지는 금 대접은 하나님이 택한 그릇, 곧 사람을 뜻하고, 향을 피우는 불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말씀’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지나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천지의 주장처럼 ‘모세의 노래=구약 율법’, ‘어린양의 노래= 신약성경’, ‘새노래=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새 말씀’이라는 것은 근거가 매우 빈약하다고 지적한다.

이 교수는 거문고의 정확한 번역은 ‘하프’이며 하프와 금대접을 ‘가졌다’는 동사는 헬라어 성경에는 분사형(에콘테스, e[conte" 가졌으니 having의 의미)으로 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본 절은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갖고’ 어린양 앞에 엎드렸다’로 번역되어야 한다”(이필찬, <내가 속히 오리라>, 도서출판 이레서원, 292~293)고 말했다. 노래를 연상시키는 하프와 기도라고 명시되어 있는 금 대접 위의 향은 엎드리는 동작과 함께 성전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이십사 레위 제사장들의 역할을 암시한다(Beale, 357)고 설명했다. 금 대접이나 하프는 모두 성전제의를 생각나게 하는 요소로 사용되었다. 신천지가 관찰한 바와 같이 계 15:2~3에서 모세의 노래와 어린양의 노래를 서로 대비하여 묘사한다. 그러나 이것은 구속의 완성과 성취라는 종말론적인 측면을 부각해 주는 역할을 한다(이필찬, <내가 속히 오리라>, 도서출판 이레서원, 295~296).

하나님의 나라와 제사장(5:9~10) -신천지의 주장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계 5:9~10).

-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는 펼쳐진 계시록을 요한이 받아 먹고 그 책에 기록된 예언의 참뜻을 가르치는 곳이며(계 10:10~11), 많은 사람들이 죄로 사로잡혀 있는 곳을 말한다.
- 그들을 제사장으로 삼으시고 왕노릇 하게 하신다는 것은 그들을 교회를 치리하는 목자로 세워주신다는 뜻이다.
- 초림때 범죄한 육적 이스라엘을 끝내시고 영적 이스라엘을 창조하신 것처럼, 계시록 성취 때에는 부패한 영적 이스라엘(=기성교회)을 심판하시고(계 6장), 십사만 사천 명을 인쳐서 영적 새이스라엘을 창조하신다(계 7장). 영적 새 이스라엘은 계시록에 약속된 하나님의 새나라이며, 하나님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노래를 부르는 십사만 사천명은 새로운 하나님의 제사장 곧 새목자이다. 계시록이 응할 때에는 모든 사람이 영적 새이스라엘의 목자들에게 배워야 한다(<요한계시록의 실상>, 128).

문제제기 및 변증
이필찬 교수는 ‘모든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는 죄로 사로잡혀 있는 곳으로서 말씀을 받아먹은 요한이 그 책에 기록된 참 뜻을 가르치는 곳’이라는 장소적 개념으로 신천지가 이해하는 것에 대해 억측이라고 지적했다. 왜냐하면 요한이 ‘각 족속, 방언, 백성, 나라’는 장소적 개념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모든 족속에 대한 4차 반복의 의미이지 ‘가르치는 장소’가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그로 인한 구원의 우주적인 성격을 보여준다. 그러나 전치사 ‘에크’(~로부터)의 사용으로 모든 사람이 다 구속을 경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암시된다”(이필찬, <내가 속히 오리라>, 도서출판 이레서원, 297).

“구속의 한계가 어느 특정한 집단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범 세계적이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여러 가지 표현들이 사용되었다.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라는 연결된 표현은 요한이 즐겨 사용하는 표현이다”(7:9; 11:9; 13:7, 레온모리스저, 요한계시록 주석, CLC, 1993년, 122p).

제사장을 문자 그대로의 제사장으로 이해하여 이것이 곧 교회를 치리하는 하나님의 목자가 되는 것을 말한다고 보는 신천지의 주장은 문맥을 무시하고 구약적 배경의 적용을 오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육적 이스라엘 - 부패한 영적 이스라엘 - 영적 새이스라엘의 이러한 연결은 정당한가? 성경적 지지를 받는가?

이 교수는 계 5:10의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는 출 19:6을 배경으로 한다고 설명한다. 출 19:6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으로 삼아 열국 중에서 하나님의 소유가 되게 하겠다는 문맥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에서도 마찬가지로 ‘어린양의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린 자’들을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아 만국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사용하신다는 의미를 표현하고 있다(이필찬, <내가 속히 오리라>, 도서출판 이레서원, 299).

성경은 분명히 어린양의 피로 산 백성을 제사장으로 드리시겠다고 하셨다. 정확히 봐야 한다. 이 시대의 약속의 목자를 따르는 사람들이 아니라 2천년 전에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어린양의 피로 사신 백성을 제사장으로 드리신다. 그런데 신천지인은 어떤가?

“(신천지인들은) 조금만 버티면 자신이 왕 같은 제사장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서 왕 같은 제사장은 이런 의미이다. ‘내가 아무리 못나고, 못 배우고, 돈이 없고, 나이가 많고, 부족해도 14만 4천명 안에만 들어가면 세상의 모든 똑똑하고 돈 많은 부자들이 와서 제발 신천지 성경공부를 시켜 달라고 하면서 사정할 때가 올 것이다.’ 이런 왕권, 죽지 않고 누릴 수 있는 (신천지의)왕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곳에서 빠져 나오질 못하는 것이다.”(김미경외 지음, <이단 신천지 대처법 ATOZ>, 기독교포털뉴스 간, 2013년, 23p).

착각도 이만저만한 착각이 아닌 셈이다.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백성들이 부르는 노래가 ‘새노래’다. 약속의 목자를 추종하는 ‘영적 새이스라엘’(이 교수는 이 용어도 신천지가 사용하는 특수용어라고 지적한다), 14만 4천의 노래가 새노래가 아니라고 비판했다. 신천지는 어린양의 피가 아닌 이만희를 추종하며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어떻게 어린양의 피로 사게 된 제사장이고, 그들에게서 새 노래가 나올 수 있겠는가? 

참고로 새노래란 무엇일까? 피영민 목사(강남중앙교회)의 설교에서 잘 정리가 돼 있다. “요한계시록 4장과 5장 모두 찬양이 나오는데 조금 다르다. 4장은 창조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 주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계 4:11), 그런데 요한계시록 5장은 새 노래가 나온다.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서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계 5:9) ···새 노래는 계시록 4장이 창조주 하나님을 노래하는 것이라면 5장은 구원의 그리스도를 노래하는 것이다. 즉 새 노래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인하여 구원받은 성도들이 부르는 구원의 노래인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그 피로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택하신 백성들을 사서 하나님께 드리셨다고 하는 구원의 사역을 노래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인종의 차별을 두지 않는다. 예수님이 구원하시는 사역은 족속, 인종, 피부색, 언어, 정치 문화를 초월해서 택한 백성들은 모두 건져 내신다. 12절을 보면 이 새 노래는 죽임 당한 어린 양에게 일곱 가지 찬양을 돌리고 있다.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함당하도다 하더라.”(계 5:12) 일곱 가지다. 능력, 부, 지혜, 힘, 존귀, 영광, 찬송 일곱 가지입니다. 즉 예수님에게 완전한 찬송을 돌리고 있는 것이 새 노래다.”(피영민, 강남중앙침례교회, ‘인봉한 책을 펼 자가 누구냐?’ 2011년 9월 11일 주일설교).

성경은 영적 이스라엘과 육적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약속과 성취의 관계로 연결짓고 있다.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는 연속성을 갖는다. 하나님은 교회 공동체를 심판하여 버리신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새예루살렘’, 어린양의 신부들이 완성된 교회의 모습으로 천상에서 하나님께 세세토록 영광을 돌리는 장면을 끝으로 정리해보자.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계 5:12~14).

죽임 당하신 어린양이 지배하는 새예루살렘에 이만희 씨와 그들을 추종하는 자들, 작위적으로 보좌라는 걸 구성하고 그 주변에 네 생물, 24장로를 만들어 놓고 스스로 예수를 따른다고 착각하는 세력이 들어갈 자리는 단 1mm도 허락된 공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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