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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걷는 사람”···도보로 국토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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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걷는 사람”···도보로 국토순례
  • 정윤석
  • 승인 2013.04.02 12: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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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꿈꾸던 여행길, 칠순 앞둔 신병철 목사는 해냈다

남한 땅을 4개월여에 걸쳐 도보로 순례한 신병철 목사를 만났다. 그는 올해 69세다. 순례한 거리는 3천298km다. 2012년 9월 17일 임진각을 출발해 민통선, 고성 통일전망대를 찍고, 강원도의 해변로를 따라 부산 태종대, 제주도, 완도, 진도, 목포, 서해안로, 백령도, 강화도를 거쳐 다시 임진각으로 2013년 1월 18일 입성했다. 추석 연휴, 경조사, 대선투표일 등을 제외하면 109일을 꼬박 걸었다. 종종 걸어가는 그에게 ‘차를 타라’며 손짓하는 유혹(?)이 있었다. 그때마다 그는 답했다. “나는 걷는 사람입니다.”

▲ 신병철 목사는 국토 순례 후 건강한 모습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더 늙기 전에 해보고 싶었어요"
밥 먹을 곳이 마땅찮아 때론 끼니를 건너뛰고 걸었다. 추위와 한파에 살을 에는 듯한 고통도 느껴봤다. 가로등 하나 없는 끝도 없는 시골 밤길을 걷기도 했다. 하루에 짧게는 20km, 길게는 47km까지 걸었다. 걷는 도중 발톱 5개가 2차례나 빠졌다. 그래도 가장 아팠을 때는 강원도 통일전망대의 민간인통제선(민통선)에서 더 이상 북으로 갈 수 없을 때였다.

109일간 도보순례를 하면서 그는 새로워졌다. 감사가 새롭다. 하루하루 호흡하고 먹고 마시고 자는 것 자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감사 거리가 됐다. 그것이 유지된다는 게 그에겐 가장 큰 기적이고 감사였다. 먹고 자는 게 보장되는 게 얼마나 큰 은혜인지 그는 도보 순례를 하며 절실히 느꼈다고 한다.

신 목사는 은퇴를 조금 앞당겨 했다. 67세 되던 2011년 1월이었다. 은퇴 이후 뭐를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중 하나가 어렸을 때의 꿈인 국토순례를 해보자는 것이었다. 2012년 9월에 몸소 실천에 옮기게 됐다.

“은퇴 후는 인생을 정리하는 때잖아요. 내 나라, 내 조국 산하를 직접 걸으며 고행의 길을 통해 저의 삶을 성찰하는 계기를 삼아보고 싶었어요. 생각만이 아니라 하루라도 빨리, 더 늙기 전에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시작했어요.”

‘내일은 몸살이 나겠다’며 앓듯이 누운 날도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몸이 가벼워졌다. 만보기에 47km가 체크된 날이 그랬다. 하루 종일 걷고 또 걸은 날, 밤에 밥 먹을 곳도 마땅찮았다. 춥고, 배고픈 상태로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은 몸살이 나겠구나. 하루 쉬어야겠다’는 마음으로 그냥 쓰러져 잔 날도 있다. 아침에 일어났다. 몸이 거뜬했다. 이것이 기적이구나, 하나님께서 동행하시는구나라는 확신을 가졌다.

신 목사는 은퇴 이후에 해볼만한 일이 ‘국토순례’라고 소개한다. 은퇴 후에는 인생을 정리하는 때인데 막연히 생각만 할 것이 아니라 한번쯤 직접 고행의 길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성찰하는 계기를 삼으라는 것이다. 국토순례를 한 신병철 목사는 신체적으로 건강한 편에 속하지 않는다. 폐가 다른 사람의 1/3에 불과하다. 젊은 시절 폐렴을 심하게 앓은 결과다. 무릎관절도 좋지 않다. 그래도 하루 8시간을 109일에 걸쳐 걸었다.

▲ 아름드리 칡뿌리를 캔 문영곤 목사(우측)와 신병철 목사

걸으며 만난 사람들···.
신 목사는 32년간 목회만 한 사람이다. 그와 함께 동역했던 후배 목회자 중 이광석 목사(안산 평강교회)는 “정말 신 목사님 같은 사람이 없다”며 “목양에만 인생을 바쳤던 말 그대로 목회자다”라고 말한 바 있다. 신 목사의 만남과 대화의 울타리도 ‘교회’, ‘교인’, ‘교역자’에 한정돼 있었다. 그러나 국토순례를 통해 그는 내 나라에 함께 몸 담고 살고 있는 ‘이웃’을 경험했다.

경남 통영에서 거제도로 가기 전 가덕도에 들렀을 때다. 저녁 밥을 먹기 위해 식당에 들렀다. 건장한 체구의 50대의 한 남자가 술이 거나하게 취해 있었다. 신 목사가 들어서자 그는 “어르신, 멋지십니다.”라고 말했다. 술기운에 하는 얘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정말 그 남자는 신 목사에게 호감을 보이며 저녁 밥을 샀다. 이야기를 나누다 잠자리 얘기가 나오게 됐다. “잠은 어디서 주무십니까?”, “여관이나 여인숙에서 자야지요”라고 하자 그는 자기를 따라오라며 앞장 서 나갔다. 산을 씩씩하게 올라가던 그, 산 정상에 펜션으로 들어갔다. 그곳에 펜션 단지가 있었는데 그는 한 펜션의 주인이었다.

20~30여 명이 잘 수 있는 황토방에서 그는 신 목사를 위해 장작불을 뗐다. 하루의 피로가 말끔히 씻기는 경험이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신 목사는 더욱 놀랐다. 가덕도 산 정상에 위치한 펜션에서 밤새 숨어 있던 천혜의 자연환경이 눈앞에 그대로 펼쳐졌다. 무릉도원이 따로 없었다.

남해에 갔을 때 ‘드림뷔페’ 사장과의 만남도 잊을 수 없다. 남해에서 걷고 또 걷다가 저녁 먹을 곳이 마땅찮았다. 드림 뷔페라는 곳을 들어가자 넓은 홀에 단 두명이 밥을 먹고 있었다. 신 목사가 국토순례를 하고 있는 중인데 식사를 할 수 있는지 묻자 그 중 한 남자가 “나도 그게 꿈이었는데···”라며 밥을 먹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잠자리에 대해서도 그는 관심을 보였다. 모텔에서 잘 계획이라고 말하자 그는 “누추하지만 저희 집으로 모시고 싶은데 어떠신가요?”라고 제안했다. 안방을 내어주고 아침까지 대접한 그는 식사비를 아무리 계산하려 해도 받지 않았다. 그에게 신 목사는 자신이 만난 예수를 전하고 나왔다. “나는 지극히 평범한 목회자예요. 목회자들에게 점수를 준다면 저는 100점 만점 중 50점 이하밖에 안 되는 사람이에요. 종종 한국교회의 문제가 언론에 부각되는데 어쩌다 한명이 일으키는 문제를 너무 일반화 시키는 것처럼 보여요.” 나중에 드림뷔페의 사장은 신 목사에게 ‘카카오톡’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목사님, 저희 동네 가까운 곳에 다닐 만한 교회좀 소개해 주세요.”

▲ 신 목사의 국토 종단 마지막날 축하하러 온 지인들

그밖에 지역사회의 콩을 다량으로 매입해서 교회 뒤편 넓은 뜰에 된장항아리를 묻어 놓고 도시교회와 농촌 교회의 상생의 길을 열어가는 매곡교회(정도성 목사), 개척한 교회마다 다른 목회자들에게 물려주고 새로운 개척의 길에 나서는 진도의 무지개교회(문영곤 목사)도 그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줬다.

신병철 목사는 국토순례 후 병원진단을 받았지만 건강은 이상무! 109일 정도 도보 순례를 하며 ‘건강하다’는 게 더욱 확인된 셈이다. 그에게 원로 목사로서의 말년을 어떻게 보낼지 청사진이 그려졌다. “원로 목사로서의 말년은 국내는 물론 세계의 선교지를 순회하며 선교 현장의 소식을 한국교회에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은퇴한 신 목사의 바람이다.

칠순을 앞두고 도보로 전국을 순례한 기적을 경험한 원로 신병철 목사의 이번 부활절은 더욱 새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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