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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들, 기존교회 비판하면서 세속 문화 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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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들, 기존교회 비판하면서 세속 문화 추구”
  • 정윤석
  • 승인 2013.02.20 06: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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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연구원 느헤미야 팟케스트, 한국교회의 이단 문제를 거론하다(1)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 미국 예일대학교, 보스턴대학교, 드류대학교 출신 실력파 교수들이 한국교회의 가장 민감한 주제를 다뤘습니다. 이단 문제입니다. 이들은 이단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한국사회의 민감한 이슈들에 대해 유쾌하게 토론하는 집담회, 기독연구원 느헤미야(http://www.nics.or.kr)의 팟 케스트(인터넷망을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 ‘에고에이미’가 이단 문제를 주제로 2차례에 걸쳐 진행됐습니다.

1부는 2013년 1월 27일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의 세미나실에서 배덕만 교수의 발제 후 김근주·김형원·배덕만·전성민 교수와 고상환 사무처장, 한병선 PD 등의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이단 문제와 관련한 이론적 토론을 중심으로 진행했습니다. 2부는 2013년 2월 3일 같은 장소에서 정윤석 기자가 발제하고 김근주·전성민·김동춘 교수와 고상환 사무처장, 한병선 PD 등이 참석해 실제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집담회는 기본적으로 철저한 연구와 준비를 통해 이뤄진 모임은 아니었습니다. 참석자들의 연구 자료를 발표하는 학술대회가 아니었다는 의미입니다. 이단 문제에 대한 각자의 상식과 생각을 갖고 가볍게 대화하며 시간을 보낸다는 게 정확할 듯합니다.

1부의 경우 이단문제에 전문적 신격을 가진 독자들이 볼 때 동의하지 못할 내용도 있다는 점을 미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단 문제와 관련 한국교회 일원의 생각들이 어떤지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점, 한국 신학계의 소장파 교수들의 이단에 대한 견해를 훑어보며 차후 이단 대처의 미래의 흐름을 어느 정도 예측하고 그에 대한 대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좀더 발전적인 이단 연구 풍토를 위해 1부, 2부를 요약 정리해서 순서대로 올립니다<편집자주>.

1부 참석자:
김근주(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영국 옥스퍼드대학교(D.Phil),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구약학 교수). 
김형원(서울대학교 경영학과, 미국 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Ph.D,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배덕만(서울대학교 종교학과, 미국 드류대학교, Ph.D, 복음신학대학원대학교 역사신학).
전성민(서울대학교 수학과, 영국 옥스퍼드대학교(D.Phil),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구약학 교수).
고상환 사무처장(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촬영·녹음 한병선 PD

발제: 이단문제의 역사적 흐름
배덕만 교수
이단이란 주제 자체가 굉장히 난해하고 민감하고 예민하다. 기독교 안에서 이단이란 주제만큼 오랫동안 교회를 힘들게 한 주제도 없다. 최근 한국교회 안에서도 이보다 더 예민한 문제도 없다.

▲ 배덕만 교수

이단이란 말은 어원 자체로 보면 하이레시스에서 나왔다. 이 단어는 처음 어떤 그룹들을 지칭하는 일반적인 묘사에 해당하는 단어였다. 행동학파, 철학학파, 사상학파 등의 무리들을 지칭하는 일반명사였다. 2세기에 들어서면서 소위 정통에 반대되는 개념, 기독교안에서는 기독교의 정통 사상을 공격하거나 파괴하거나 대적하는 그룹을 지칭하기 위해 이단, 헤레시라는 단어로 사용했다고 한다. 물론 다른 종교도 이런 이단이란 말을 쓰기도 하겠지만 기독교안에서 이단은 기독교의 출현과 더불어 거의 자연스레 발생했다고 보인다.

제일 중요한 것은 예수라는 역사적 인물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대한 문제에서 이단 문제가 기원했다고 보인다. 예를 들어 예수를 단순한 종교 지도자로 볼 것인가, 기독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메시아로 고백하느냐에 대한 이해가 발전해가는 과정에서 예수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이 전개됐다.

어떤 정해진 교단이 있거나 교단의 정해진 신학적 입장이 공식화돼 있거나 그것을 교육하거나 유포하는 교단 신학교나 교육 기관이 정해져 있다면 통일된 목소리가 진행이 될 텐데 그런 것 없이 예수라는 사람이 역사적으로 출현하게 됐고 그에 접근했던 사람, 그의 이야기를 들었던 사람들이 자꾸 자신들의 선 이해를 갖고 예수에 대한 이해를 나름대로 형성하는 과정에 대단히 상이한 그룹들이 지역마다 시대마다 출현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치열한 논쟁이 생기게 됐다.

예를 들어 초창기에 예수에 대한 상이한 이해가 출현하게 된 것 중에 우리가 갖고 있는 정통적 입장 외에 유대 사상에 아주 강하게 심취돼 있던 사람들은 정통적 유대교의 사상을 근거로 해서 예수를 이해하려고 하는 쪽으로 갔다. 그런 사람들이 극단적으로 간 경우가 에비온주의자들이었다. 이게 다른 버전으로 소위 ‘양자론’이라고 한다. 예수를 훌륭한 인간, 훌륭한 종교적 사상가로 인정하지만 그런 인간이 나중에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서 신적 존재로 상승한다는 이론이다. 본질적으로 인간인데 조금 더 뛰어난 인간으로 예수를 보는 입장이 전통적 에비온주의자들이다.

헬레니즘과의 사상적 결합 과정에서 과도하게 이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영지주의자들이었다. 이 사람들은 예수를 영적인 존재로 과도하게 해석하려 했다. 예수를 순수하게 인간이면서 순수하게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이 기준점을 근거로 할 때 한쪽에서는 유대주의의 영향을 받은 에비온주의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 사람들은 예수를 인간으로 보는 극단을 취하게 됐다. 또 한쪽에서는 예수의 인성을 부정하고 신성적 측면을 강조하는 측면으로 패러다임이 나눠지게 됐다.

한쪽에선 예수를 인간으로 보고, 한쪽에서는 예수를 신적 존재로만 보려는 사람들이 예수의 인성과 신성을 조화롭게 보던 그룹에 의해 이단으로 드러나게 됐다. 결국 그런 영향 속에서 공론화됐던 주제가 두 가지가 있다. 하나가 1세기 말에 출현한 몬타누스주의와 말시온주의다. 말시온은 영지주의적인 입장을 갖고 예수의 성육신, 육체적 부활, 재림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다. 몬타누스는 과도한 성령 체험과 예수의 재림을 근거해서 새로운 시대의 출현을 주장했다. 그 두 그룹이 교회 초창기의 교회 분열을 주도하면서 이단으로 몰리게 됐다. ···(중략).

초대교회부터 4~5세기까지 기독교 공동체 안에 중요한 교리들을 갖고 다양한 목소리들이 시대별로 지역별로 존재했다는 것이다. 결국 이런 문제가 불거지면서 정통주의라는, 우리가 갖고 있는 기본 교리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갈등관계가 형성되고 교회가 중요한 3가지 반응을 하게 된다.

첫째는 이단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주장하기 위해 성경을 갖고 나와서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는 것이다. 초창기에는 당시 27권의 신약 성경이 결정되지 않았을 때 각각 권위가 있는 문서를 갖고 자신의 입장을 내세우니까 이게 과연 그들의 주장하는 문헌이 가치가 있는 것이냐 하는 문제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 초대교회에 흘러 다니는 문헌 중에서 우리가 갖고 있는 성경을 확정짓지 않으면 아무거나 갖고 들이대며 자신들의 주장을 하게 된다, 그래서 27권의 정경화 과정이 이단에 대한 교회의 대응으로 나오게 된다.

둘째는 27권 성경 안에서 주장을 하는데 동일한 성경을 놓고 해석의 차이가 나오게 됐다. 그래서 그 해석의 차이가 있을 때 어떤 사람의 해석이 올바르냐의 문제로 논쟁이 됐다. 성경해석의 범주를 결정해야 한다 라는 것이 크레도스, 신조를 구성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됐다. 신경은 결국 성경해석을 이런 범주 안에서 해석한다는 틀을 정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틀에 동의했는데 나중에 또 다른 입장이 나타났을 경우에 그 마지막까지 나온 차이를 누가 결정할 것인가, 성경에 대한 최종 해석의 결정권을 누가 가질 것인가 하는 문제가 되기도 했다. 로마 가톨릭의 사도계승권이 이래서 나타나고 교회의 치리적 권위자 계급, 소위 교권 구조가 형성된다.

그 후로 중세·현대로 넘어오면서 이단 문제는 복잡해진다. 초창기에는 기독교의 가장 핵심적 교리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나왔다면 중세로 오면 이단의 범주들이나 내용이나 원인이 다양해지게 됐다. 중세 때에 이단으로 몰려서 치리를 하게 되는데 초대교회에는 이단 논쟁은 학자들이나 교회 안에서 신학적인 논쟁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논쟁에서 패배한 사람들은 다른 지역으로 가서 다른 교회를 세우고 분리된 공동체를 갖게 됐다. 중세는 정치권력과 결탁이 되면서 거대한 힘을 갖게 된다. 이단들을 단순히 신학적 논쟁에 의해 쫓아내는 게 아니라 그들을 정치적으로 물리적으로 법적으로 박해하는 현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교회나 국가에 의해 이단으로 몰려 고통당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을 보면 가장 많이 이단으로 몰린 사람들은 중세의 유대인들이었다. 그리고 스페인의 집시들, 이슬람교도들이 이교도, 이단으로 몰리면서 피의 숙청을 당하게 된다. 남미를 정복했을 때는 남미의 인디언들, 원주민들도 이단으로 몰려서 죽었다. 또하나는 성령운동의 영향을 받아서 새로운 삶의 도래를 주장했던 천년왕국론자들, 이런 사람들이 이단으로 몰리게 되고 종교개혁의 개신교 신자들도 이단으로 몰리게 된다. 그들이 처했던 상황이나 정치적 입김에 의해 다양한 사람들이 이단으로 몰려 고통을 당하게 되는데 교권과 정치 권력의 결탁으로 물리적으로 탄압받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 특징이다.

종교개혁 이후에는 칼빈과 루터가 개신교 안의 다른 그룹을 이단으로 몰아서 박해를 하는 경우가 나타났다. 대표적인 것이 재침례교도들을 종교개혁 세력들이 군사적으로 응징한다든가, 칼빈이 세르베투스를 삼위일체와 관련한 입장이 다르다고 해서 화형에 처하는 일이 벌어지게 됐다. 개신교가 가톨릭에 의해 이단으로 몰렸지만 자신들이 자신들 안의 사람들을 이단으로 몰아 처형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현대에 들어 교파주의 시대로 넘어오면서 다양한 흐름들에 의해 서로가 서로를 이단으로 몰게 됐다. 특히 18세기 이후 미국에서 종교의 자유와 정교분리가 되면서 중세처럼 이단들에 대해 국가권력으로 박해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됐다. 그러면서 서로가 서로를 정죄하고 갈등하는 일이 벌어진다. 물론 피의 숙청이나 공권력이 동원되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개혁주의자들은 개혁주의 입장에서 알미니안주의를 이단이라고 공격했다. 알미니안은 자신들이 맞다며 개혁주의자들을 이단으로 모는 현상이 나타났다. 19세기 근본주의자들은 자유주의, 진보주의자들을 이단이라고 했다. 근대주의자들은 근본주의자들을 이단이라고 봤다. 오순절의 성령운동을 은사중지론에 근거해 이단으로 보는 경향도 나타났다.

최근에는 여호와의증인, 유니테리안을 이단으로 몰고 최근에는 세대주의자들을 이단이라고 하는 경우가 벌어지고 있다. 중세와는 많이 달라졌다고 보인다. 이단 문제를 다룰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과연 이단과 정통의 기준을 나누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표준이 되는 것이 단지 성경이냐, 신앙고백이냐, 교단 신학이냐라고 할 때 이런 것들이 그 안에서 일치하지 않는 부분들이 많기 때문에 이단과 정통을 나누는 기준도 어렵고 이단과 정통을 판단하는 권위를 누가 갖고 있느냐? 하는 문제로 어렵다. 교회가 갖고 있느냐, 교단이 갖느냐, 신학자들이 결정하느냐, 아니면 교회 연합 기구가 결정하느냐, 아니면 개인이 결정하느냐의 문제도 있다고 본다.

또 하나는 정통과 이단의 싸움에서 서로에 대한 대응의 방식, 상호간의 싸움과 대응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하느냐도 어려운 문제다. 상호 인정하고 공존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 아니면 신학적으로 논쟁하고 싸우고 분열하는 것은 허용할 수 있는지, 법적인 대응은 어떤지, 개인적으로, 집단적으로 물리적으로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좋은 방식인지, 열정의 정도에 따라 다양하게 공존하는 것 같다.

이단 규정, 진리 문제인가, 정치문제인가?
전성민: 발제를 들으면서 질문이 몇 가지 생겼다. 초기에는 예수님에 관해서 교회에서 분명하게 판단하고 분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반면에 시간이 흐르면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제는 이단이다 아니다를 말하기가 애매하다고 말씀하신 거 같다. 그러나 방송 들으신 분들이나 저희나 다 분명하게 이단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이 있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우리가 말하는 이단이라는 것과 소위 말하는 교파끼리 입장이 조금씩 다른 게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지 설명이 되면 좋겠다. 이단을 분별하기 어렵다는 것인지, 교파를 이단으로 모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것인지, 교파와 이단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이야기를 해주시면 도움이 될 것 같다.

▲ 김형원 교수(사진 뉴스앤조이)

김형원: 이단을 판정하는 기준에서부터 이야기가 나오는 거 같다. 우리가 보통 기독교에서 이야기할 때 성경을 기준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어디가 정통이냐, 어디가 이단이냐, 호소할 수 있는 것은 성경이다. 성경에 충실하면 정통이고, 성경에서 벗어났으면 이단이고···. 초대교회 때 정경이 형성되지 않았을 때는 그 과정속에서 성경이 완성됐고 성경이 완성된 뒤에는 해석의 문제가 발생한다. 그 부분에 있어서 정도의 차이가 있는 거 같다.

어떤 학자들이라든지, 교회에 있는 사람들이 생각할 때 “이것은 어떤 범위 내에서 해석상의 차이로 볼 수 있는 것이다”는 것과 “이것은 해석상의 차이라기보다 그것을 넘어서는 어떤 문제이다”라고 하는 경계선이 있다고 본다. 어느 정도의 경계선을 넘어서면 이단이라고 말하는 게 수월하다. 그러나 그 경계선 안에 있다면 해석상의 차이, 그런 정도의 차이를 용인해 주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개혁신앙인가, 세대주의인가. 대충 합의가 된 것은 해석상의 차이라고 본다.

전민성: 해석상의 차이를 이단이라고 보면 안 된다는 것인가?
김형원: 그렇다.
전민성: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잖은가?
김형원: 그건 무식한 거다. 거꾸로 반대일 수 있다. 분명히 어떤 경계선을 넘어갔는데 ‘이건 해석이 다른 거야’라고 말하는 것도 문제다.
전민성: 그 다음에 드는 생각은 재세례파에 대한 이야기다. 당시 종교개혁에 있어서는 재세례파는 이단으로 정죄된 것이 맞는가?(그렇다). 그런데 지금 재세례파는 이단이라고는 잘 언급하지 않는다. ‘이단이다, 아니다’는 세월이 흐르면서 바뀌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을 사람들이 한다. “근본적으로 들어가면 기독교도 사실은 유대교에서 이단이라고 주장하는 것에서 시작됐고 그 다음에 종교개혁 시대에 개신교도 가톨릭으로부터 이단으로 시작된 게 아니냐?” 라면서 “현대에서 우리가 이단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결국은 시간이 지나면 언제 정통으로, 넓은 의미에서 포함될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질문에 어떻게 답변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나? 이단은 그런 면에서 신학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문제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배덕만: 그것이 사실 우리가 이단 문제를 생각하는 데 있어서 혼란스럽게 만드는 부분인 거 같다. 특별히 우리나라 같은 경우 이단문제가 아까 이단의 기준이 뭐냐, 이단을 판별하는 권위가 누구에게 있느냐 하는 문제에 있어서 특별히 한국의 경우 이단에 대한, 이단을 결정하는 권한이 학자들에게 주어지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그리고 이것이 매우 정치적인 입장에 의해서 이단 논쟁이 진행됐던 것, 정말 진정한 의미에서 신학에 근거하고 심층적 분석과 토론에 근거해서 이단판별이 이뤄지지 않고 정치·교단적 행각에, 교회간의 정치적 입김이 특정한 단체를 이단으로 몰아가는 데 굉장히 큰 역할을 해왔다. 그래서 정작 중요한 이단의 요소들이 신학적으로 충분히 논의돼서 성도들에게 이단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되지 못하고 한쪽에서 이단이라고 말하니까 여론에 몰려 특정 대상을 이단으로 몰아가는 경우도 많았다.

물론 신학적으로 정말 문제가 많아서 이단으로 정죄된 그리고 정의가 확실하게 된 경우도 있었다. 그것은 굉장히 중요한데 그렇지 않고 소수의 신앙운동을 띈 형태의 그룹들이 거대한 그룹에 의해 충분한 검토나 연구 없이 쉽게 이단으로 몰리면서 그들이 굉장한 트라우마나 데미지를 입었던 경우도 있었다.

전민성: 다른 교수님들 하실 말씀 없으신가?
김형원: 지금 말씀하셨던 문제들은 계속 나왔던 문제다. 알리스터 맥그라스(옥스퍼드대학교 분자생물학 박사이자 성공회 신부)가 자신의 책에서 그것을 주요하게 다루듯이 지금 많은 학자들 중에서, 특히 포스트모던의 영향을 받은 학자들이 반권위주의, 반권력주의, 반정통주의의 입장을 취하면서 그렇게 공격한다. ‘이단을 판정하는 것은 권력의 싸움의 결과다.’ 이렇게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힘있는 사람이 결국 자신의 힘을 통해 자신을 정통이라 주장하고 힘없는 사람은 이단이라고 판정해 밀려났다는 것이다.
전민성: 그래서 쉽게 하는 얘기들이 있다.‘이단이 되지 않으려면 사람이 많아지면 된다.’

김형원: 그렇게 얘기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시각으로 보고 역사를 해석하는 것이다. 초대교회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이 볼 때 매력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말씀드렸듯이 그런 역사적인 경우가 분명히 있었으니까. 숫자가 적고 세력이 약해 이단으로 몰렸는데 세월이 지나다 보니 숫자가 많아진다든지, 아니면 다시 한번 검토해 보니 이단이 아니라든지(복권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포스트모던적 주장이 매력있게 들리기도 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타당성이 있지만 또다른 측면에서 가장 큰 문제점이 뭐냐 하면 그 안에 신학자라든지, 성경을 진지하게 대하는 사람들의 노력을 아주 평가절하한다는 것이다. 즉 “정통과 이단의 판정은 권력의 싸움이다, 신학의 싸움이 아니다”고 하면서 정죄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한쪽으로 몰아간다. 그런데 우리가 역사를 보면 초대교회 때 콘스탄틴 대제 이전에 이단논쟁이 제일 치열했다. 신학의 기초가 사실상 그 때 다 만들어졌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는 기독교가 권력도 없었고 세계를 장악할 기관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 안에 교부들이나 지역의 교회들이 토론을 통해 자신들의 신앙의 정체성을 만들어갔다. 그 흐름 속에 삼위일체 교리와 예수님의 양성교리가 다 정립이 됐다. 그것에 대해서도 ‘아냐, 그건 권력 싸움이었어’라고 얘기를 하면 기독교의 교리의 근거는 다 없어진다. 그야말로 힘있는 사람들이 자기 구미에 맞게 ‘이게 옳은거야’ 라고 주장해서 만들어졌다는 얘기가 된다. 삼위일체와 예수님의 양성 교리도 힘있는 사람이 “예수님의 양성교리를 이렇게 믿어!”라고 말해서 그렇게 믿게 된 것처럼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삼위일체 문제를 공격하는 사람이 많다. 실제로. 삼위일체라는 용어가 없잖냐 라면서 삼위일체 교리가 성경에서 나오는 개념도 아닌 것처럼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이건 권력 투쟁의 산물이야, 콘스탄틴 대제가 힘으로 만들어 놓은 교리야”라는 주장이 이 맥락에서 나온다. 그런데 이건 이단이다!

▲ 김근주 교수(사진 뉴스앤조이)

김근주: 그러면 콘스탄틴 이후의 이단논쟁의 산물은 권력 투쟁의 산물일 가능성이 있는 건가?
김형원: 그게 중세시대로 들어가면서 정치와 종교가 완전히 결탁된 이후에!
전민성: 저도 처음에 (발제를)들으면서 느꼈던 것이 초기에 이단 논쟁은 신학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중세로 넘어가면서 정치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면 던져볼 수 있는 질문은 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 혹은 21세기의 이단 논쟁은 신학적 문제인가, 정치적 문제인가? 물론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는 없겠으나 어느 쪽으로 많이 기울었다고 봐야 하나?

고상환 사무총장: 최근에 그 사례를 잘 보여주는 경우가 뭐냐 하면 예장 통합측의 이단사이비대책위원장인 최삼경 목사가 있다. 오랜 동안 이대위원장을 했다. 그런데 작년 한기총에서 최 목사를 삼신론과 월경잉태론을 주장했다고 이 사람을 조사했던 기억이 있다. 통합측 교수들이 성명서도 내고 난리가 났는데 이단을 규정한 사람을 이단이라고 공격하는 행태가 한국사회에 나타나고 있어 우리도 혼란스럽다는 것이다. ··· 예전에 어렸을 때 “여의도순복음교회 이단이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교회가 크니까 조용기 목사를 이단이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교회의 규모나 힘에 의해 이단 규정이 되는 등의 행태가 성도들에게는 많은 혼란을 준다.

김형원: 이런 측면에서 길게 봐야 한다. 맥그라스가 말한 대로 이단이나 이런 것들에 대한 기본적인 우리의 자세는 열려 있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이것은 성경해석학을 할 때도 제가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겸손해석학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완성된, 우리가 하나님이 아니니까. ‘이 말씀은 반드시 이 뜻이야’ 라고 우리가 주장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최선을 다하면서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으로 그 뜻을 밝히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는 이 시점에서는 우리가 이 해석이 옳다는 입장은 있을 수 있다.

“이단과의 싸움이 치열했을 때 신학자들은 자신의 목숨을 걸었다”
전민성: 그렇다. 겸손해석학과 같이 가야 되는 게 확신해석학이다.
김형원: 그렇다. 같이 가는 거다. 이 시점에 있어서는 나는 이것이 옳다고 생각한다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 전민성 교수
전민성: 그게 책임해석학이다.
김형원: 그렇지만 여전히 열려 있다. 나는 이단 규정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우리가 지금 동원할 수 있는 성경지식을 다 동원해서 사용했을 때 “아, 이 사람들의 이런 의견은 성경해석에 맞지 않다고 얘기할 수 있다고 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판정에 대해서도 조금 열려 있는 태도는 분명히 있어야 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우리도 오류가 있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전제는 내가 이권에 의해서 또는 권력에 의해서 하지 않는다는 그런 전제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아까 말한 것들은 이 전제가 완전히 흐트러진 예다. 이권에 의해서 움직이고 힘에 의해 움직이는 게 나오니 정말 양심적인 성경해석과 성경을 찾아보려는 노력까지 필요없는 듯이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상황까지 초래된 게 안타깝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기독교의 역사 2천년도 이렇게 몰아 붙이는 것, 또 지금 이단 판정에 대해서도 “다 이건 권력 싸움이요 쓸데 없는 것”이라 여기는 것, 나쁜 사람의 행동을 통해 선한 의도까지 완전히 밀어내려는 것, 이렇게 나가면 ‘신학은 필요없어’라는 결론까지 나오게 된다. 결국 ‘교회는 힘있는 사람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거야’라는 말이 나오게 된다. 그러면 이게 한국교회의 상황과 비슷하다. 신학자들의 역할이 없다. 교단의 힘있는 목사가 말하면 솔직히 말해서 신학자들은 ‘딸랑이’ 역할만 하고 있잖은가? 어떻게 하면 거기서 밀려나지 않고 잘할까? 이 상황이란 말이다.

그런데 교회 역사를 보면 정말 이단과의 싸움이 치열했을 때는 자신의 목숨을 걸었던 교부들, 신학자들 정말 많았다. 아타나시우스도 마찬가지다. 그 당시 황제는 분명히 아리우스주의를 밀었다는 것이다. 자기 입장에서 아리우스 주의가 좋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

전민성: 잠깐 여기서 아리우스주의란?
배덕만: 아리우스는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하진 않지만 하나님보다는 열등하다는 견해다. 성자가 성부보다 열등하다, 창조된 존재다라고 본다.
김형원: 황제는 아리우스주의를 더 선호했다. 실제로 콘스탄틴 대제 아들이 황제가 됐을 때 아리우스 주의로 바꾸기도 했다. 그런데 아타나시우스는 계속해서 그것을 갖고 목숨을 건 싸움을 한다. “아니다, 이건 성경적으로 틀린 것이다.” 수십년에 걸친 싸움 끝에 이것을 역전시켰다. 그러니까 이런 측면에서 뭐를 믿느냐 하면 우리 나라 상황을 말하는 게 아니고, 전세계의 신학계의 흐름을 놓고 봤을 때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하려고 하고 말씀의 진정한 뜻을 찾아가려는 진지한 노력들이 진행이 될 수 있다고 보고 그런 노력이 진행되다보면 가려질 것은 가려질 것이란 확신이 있다. 우리가 이런 확신이 없으면 솔직히 이런 논의 자체가 의미가 없다. ···

김근주: 아까 말씀하신 겸손의 해석학. 우리가 이렇게 노력하지만 우리도 틀릴 가능성이 있고 상대를 이단으로 규정하는 것에 있어서 조심하기만 한다면 이런 노력은 굉장히 필요한 일이다는 생각이 든다.
전민성: 그래서 이단이란 말이 강하고 정치적인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저는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단이란 말보다 ‘거짓 가르침’이란 말을 쓰자. 이게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무딘 칼날이 될까?

“이단들 굉장히 세속화··· 기존교회를 누구보다 비판하나 세속의 문화 추구”
김형원: 그런데 현대 신학에 들어오면 19세기~20세기에 들어오면서 자유주의 신학이 부상되면서 실제로 신학계에서 이단이란 말을 잘 안 쓴다. 이단 규정도 잘 하지 않는다. 실제로 보면 자유주의 신학의 극단적인 주장들에는 이단보다 심한 게 많다.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 신학계에서 이단이란 말을 안 쓴다. 예를 들어 사신신학, 20세기에 한참 유행했다. 이건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죽었다.” 그런데 신학이란 이름으로 한 흐름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도 신학교에서 배운다. 이거 말이 안 되는 거다. 이게 몇 백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으면 쉽게 말하면 화형을 해도 할 만한 그런 주장이었음에도 현대 신학계에선 그에 대해 이단이란 말을 쓰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겸손해졌다고 해야 할까, 조심스러워졌다고 해야 할까.

전민성: 이단이란 말이 모더니즘적 개념을 깔고 있는 말 아니냐, 그런 면에서 이단이란 말을 굳이 써야 하는가라는 질문도 가능하지 않는가?
김형원: 그렇지만 분명히 이단이란 것은 다른 가르침이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기독교의 가르침이 아니라 정확하게 용어대로 한다면 이단을 정확하게 좀더 표현하면 이건 기독교가 아니다라고까지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전민성: 누군가 삼위일체를 부정한다 하면 이건 기독교가 아니라 다른 종교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기독교의 가장 핵심적인 교리는 삼위일체, 그리스도의 양성교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음 이어지는 질문은 이단과 타종교는 무슨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다.···

김형원: 이것도 맥그라스가 잘 정리했다. 이단은 뿌리가 교회 내에 있다는 것이다. 이게 타종교와의 다른 점이다. 이단의 뿌리는 교회 내에 있고 이단의 동기는 하나님에 대한, 또는 기독교에 대한 열심, 그 동기를 의심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사이비와의 차이다. 사이비는 자기의 이권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세력이라는 의미다.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이단들이 어떤 면에서 더욱 열심이었고 훨씬 더 헌신적이었다. 그런 흐름이 있었다.

배덕만: 종교사회학자들의 말을 빌리면 트뢸치의 경우 교회(Church), 당파(Sect), 이교·사이비종교(Cult)로 개념을 나누기도 한다. 대부분 신종교를 섹트라 한다. 본래의 교회가 과도하게 세속화되는 것에 대한 반발로 교회의 본질을 추구하고 보존하는 급진적 세력을 섹트라 일컫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교회에 의해 그들은 불온한 집단으로 몰리기도 했다. 교회 안에 뿌리를 두면서 기성교회와 대립각을 세우는 그런 교회들, 여기는 교회에 대한, 기존 교회에 대한 비판 의식이 강하고 사회적으로 분리된 입장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컬트는 신종교, 혼합종교의 개념이다. 여러 종교의 장점을 혼합해서 신종교를 만드는 것을 컬트라고 한다. 컬트는 혼합종교적 색채가 강한 반면, 섹트는 종교적 순수성이 굉장히 강하다. 컬트와 섹트를 구분하는 게 필요하다.

우리 나라의 경우 이단들과 섹트의 차이점은 주류 교회가 원래의, 우리 식으로 말하면 초대교회의 모습에서 일탈할 때 그것을 “본래로 돌아가자”, 원래의 “초대교회의 모습을 회복하자”는 갱신 운동을 한 게 아니라 아까처럼 사이비의 문제와 혼합이 돼서 컬트적 요소가 짬뽕이 돼서 한국내의 기독교적 전통을 갖고 있으면서도 개인의 영달, 성적인 욕구, 사회적 재산이나 이런 것을 목표로 하면서도 신종교 형태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보통 전통적 섹트의 경우 세상과 거리를 두고 자신들만의 순수성을 유지하려 하는데 한국에 나온 이단들은 굉장히 세속화돼 있다. 기존교회를 누구보다 비판하지만 세속의 문화를 누구보다 누려서 기업이나 성적인 면, 대중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세 불리기를 하는 것을 보면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이단 문제는 서구적 이단 문제와는 잣대가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한다. ···

김형원: 어떤 교단은 특정 대상을 이단으로 규정할 때 자신들이 근거로 삼은 것이 뭔지 근거를 말한다. 사도신경, 니케아공의회 등의 기준으로 봤을 때 이단으로 규정한다고 말한다. 여하튼 전세계의 모든 교회가 공히 인정할 수 있는 기준이 그렇다. 모든 교단이 신앙의 엑기스, 핵심 정수를 정리하려는 작업이 있었고 우리가 그 작업을 해야 하고 그 기준에 의해 판정을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전민성: 이제 시간이 다 돼간다. 한마디씩 하고 끝내자.
김형원: 교권보다 신학이 우선돼야 한다.
배덕만: 이단의 문제는 중요하지만, 이단 정죄의 과정에서 우리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혹시 타자에 대한 희생을 무책임하게 유도하지는 않는가라는 점에서 한국교회가 이단을 규정하는 데 있어서 철저하고 책임 있게 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전민성: 나는 겸손해석학이란 것이 인상 깊었다. 한국사회가 이단, 사이비성 이런 단체가 없어지고 정화되고 점점 바른 가르침이 세워지는 일들이 있으면 좋겠다. <2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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