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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연 출범은 한기총의 그것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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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연 출범은 한기총의 그것 때문”
  • 정윤석
  • 승인 2011.11.13 22: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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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한인기독교이단대책연합회 대표회장 박형택 목사


 

2011년 11월 9일 세계한인기독교이단대책연합회(세이연) 제 1회 총회가 열리던 날 박형택 목사의 얼굴은 상기돼 있었다. 박 목사는 세이연 총회에서 김만풍 목사(워싱턴지구촌교회)와 함께 초대 대표회장에 선임됐다. 박 목사의 대표회장 취임 일성(一聲)은 “정치적 영향을 받지 않는 순수한 이단 연구를 통해 공신력 있는 이단 연구·규정·대처 활동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박 목사는 “현재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 길자연 목사)는 이단을 연구하거나 대처할 수 있는 상황이 못 된다”며 “오죽했으면 11개 교단 이대위 관계자들이 한기총의 작금의 이단대처 자세를 비난하고 나섰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박 목사는 “한기총은 현재 이단대처를 하기보다 오히려 이단을 해제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며 “다락방+개혁교단에 회원자격을 인정한 문제는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다”고 지적했다.

26년간 이단연구가로서 활동해 온 박 목사는 예장 합신,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한국장로교총연합회 등에서 이단대처 사역을 해왔다. 월간 현대종교(발행인 탁지원 소장)의 편집위원이기도 하다. 기자(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는 세이연 대표회장에 선임된 박 목사를 만나 그가 이단대처 사역에 헌신하게 된 계기, 이단 사역자로서 겪었던 남모르는 아픔, 세이연을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이단대처 사역의 방향 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목사님, 나 좀 도와주세요”

박 목사가 이단대처에 헌신하게 된 계기는 1985년의 한 사건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그는 기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마 1985년의 일인 거 같아요. 탁명환 소장이 살아 계실 때인데 현대종교가 있던 서울 중랑구의 건물에 저희 사택이 있었어요. 제가 5층에 살았는데 옆 방은 고 탁 소장의 자료실이었어요. 처음에는 인사만 하고 지냈는데 어쩌다가 탁 소장은 저를 보곤 사람 좋게 ‘박 목사님, 차 한잔 해요’ 하며 친숙하게 대해주셨어요.”

탁 소장과 친분을 갖게 된 박 목사는 교회 봉고차를 현대종교측이 필요할 때면 빌려 주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현대종교사로 이단사이비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 30여 명이 도움을 요청하러 왔다. 회사로선 그 숫자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탁 소장의 다급한 전화가 걸려 왔다. “목사님, 나 좀 도와 주세요.” 이날 박 목사는 처음으로 이단사이비 단체의 피해자를 대면했다.

그들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박 목사는 ‘이단이란 정통 신앙과는 조금 다르게 믿는 사람들’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피해 사례와 진술 내용을 보면서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 그 내용에는 ‘사람으로서는 해서는 안되는 일’을 한 교주의 이야기가 적나라하게 기재돼 있었다. 강간, 살인, 암매장 등 ‘이단은 내가 그 동안 알고 있던 이단이 아니구나’라며 의분이 치솟았다. 이 일이 계기가 돼 박 목사는 이단 문제에 관심을 갖고 뛰어들게 됐다.

서울 화곡동에 있는 박 목사의 사무실 서재에는 구원파, 귀신파, 신천지를 비롯한 문제 단체의 상담 매뉴얼이 꽉 채워져 있다. 빔프로젝트도 구비해 놓았다. 기존 이단뿐 아니라 새로운 이단단체에 대한 매뉴얼도 발 빠르게 작업해서 만들어 놓는다.

 

▲ 박형택 목사의 서재, 변승우, 구원파, 귀신파의 자료들이 정리돼 있다


최근 박 목사의 상담소에 한 성도의 문의가 들어왔다.

“8년 동안 교회를 출석하던 어머니가 이단에 빠졌어요. 교파도 대한예수교장로회이고 교단 소속도 괜찮은 거 같은데 그 교회 목사님이 말씀하는 내용은 정통교회의 구원을 부인하고 조금 이상합니다.”

내담자는 어머니가 공부한 내용을 박 목사에게 우편으로 보냈다. 박 목사는 바로 분석 작업에 들어갔다. 박 목사는 ‘신천지식 교리에 영향을 받은 단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 후 그 단체와 관련한 33강에 이르는 강의안을 만들었다.

요즘 박 목사는 이 단체에 빠진 성도와 상담 중이다. 성과도 좋은 편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상담소에서 만나 성경을 토대로 그 단체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해 줬다. 박 목사가 성경을 토대로 문제점을 지적해 주자 내담자는 문제 단체의 출입을 중단했다. 놀라운 성과였다.

“그 어머니가 원래 다녔던 교회는 체험을 강조하는 교단의 교회였어요. 신비적 체험과 귀신을 쫓아내는 데 강조점을 두는 교회를 다니다가 갑작스레 성경말씀만 공부하고 그것을 밝히는 단체를 접하였으니 어머니 입장에서는 상당히 매력적으로 느꼈던 거 같아요.”

박 목사는 일부 교회들이 귀신 쫓아내고 병 치유하는 것을 성령의 능력이라고 강조하면서도 ‘성령의 검’인 말씀은 어떻게 봐야 하는지 전혀 기초를 안 닦아주고 있다고 지적한다. 체험을 강조하는 교회 성도들의 경우 성경을 갖고 접근하는 이단들에 굉장히 매력을 느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성경 공부하다가 결국 이단에 빠지는 경우가 이래서 생긴다는 것이다.

“제발 내 아내 좀 살려 주세요”
 

▲ 박형택 목사와 맹미영 사모

박 목사의 상담은 가정 상담과도 맥이 닿아 있다. 깨어진 자아상의 회복, 가정의 회복에 그는 관심이 많다. 이유가 있었다. 박 목사의 아내 맹미영 사모와 관계된, 말로 다 설명하지 못할 아픈 기억이 박 목사에게도 있었기 때문이다.

박 목사의 아내 맹미영 사모는 적극적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박 목사가 목회를 하던 중 너무도 큰 상처를 받았다. 사모가 받은 충격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나는 싸우면 됐어요.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고, 풀어지고 했거든요. 그런데 아내는 달랐어요. 고스란히 내면에 상처가 켜켜이 퇴적층처럼 쌓인 거예요. 그 적극적이고 활발했던 여자가 내가 교회 사역을 접은 2006년부터 우울증에 시달리기 시작했어요.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했으니까요. 말을 들어보니 그래요. ‘내가 지금 죽어야 한다, 지금 아파트 바닥으로 떨어지면 그 바닥이 나를 포근하게 안아 줄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 가리는 일인 줄도 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이런 마음이었대요.”

아내는 자살을 2번 시도했다. 정말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경험들을 했다. 아내의 우울증을 경험하면서 박 목사 또한 2년 동안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 때가 2006년부터 2008년 경의 일이었다. 박 목사는 당시 아내의 우울증을 소위 영적인 방법으로만 해결하려고 했다. 그러나 우울증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2년 정도가 되니까 그도 더 이상 견딜 수가 없는 상황이 됐다.

“정말 폭발할 거 같았어요. 기독교인 신경정신과 의사를 찾기 시작했어요. 수소문 끝에 만나 의사를 붙들고 말했어요. ‘제발 내 아내 좀 살려 주십시오.’”

그 의사는 말했어요. “저를 믿고 전적으로 사모님을 맡기겠습니까?” 이에 박 목사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의사는 약을 2주 분량을 넣어주며 말했다.

“사모님의 우울증은 기질적인 이유가 아니라 충격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쉽게 고칠 수 있습니다.”

이미 2년 동안 고생을 해온 박 목사였는데 쉽게 고칠 수 있다니 의아하면서도 큰 용기가 됐다. 그게 치료의 시작이었다. 불면증에 시달리며 잠을 제대로 못 잤던 사모였다. 약을 먹고 난 후부터 아내는 밤에 잠을 자기 시작했다. 거식증까지 생겨 정말 대꼬챙이처럼 몸이 말라 있었다.

“저는 아내의 질병으로 정말 이단상담을 못하게 될 줄 알았어요. 2006년 10월 우울증이 심해지기 시작해서 2008년 8월까지 우울증을 앓았으나 약을 먹고 완전히 괜찮아졌어요. 아내는 약을 먹으면서 운동을 했고 점점 회복됐어요. 약을 복용하면서 6개월 뒤에 병원에 갔더니 ‘약을 안 드셔도 되겠어요’라는 답변을 들었어요. 그때 아내는 비로소 취미 생활을 시작했어요. 한지공예를 배웠는데 그걸로 못 만드는 게 없답니다.”

그의 이단상담에 가정 상담이 접목될 수 있었던 이유다. 아내가 회복된 후 박 목사는 서울 화곡동의 한 오피스텔을 빌려 이단 상담소를 개설하고 사역을 시작할 수 있었다. 사역을 하면서 법정 소송 등 어려움도 있지만 보람도 적지 않다. 역시 가장 큰 보람은 이단에 빠져서 ‘정말 이곳이 진리다’라고 속았던 사람들이 상담을 통해 회심하는 경우다. 그러나 그 후에 오는 안타까움도 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이단에서 나온 사람들이 정통교회에 적응을 못한다는 거예요. 그들에게 두 가지 마음이 있기 때문이에요. ‘이 단체에만 구원이 있다’, ‘정통교회는 하나님을 떠난 타락한 단체다’라는 마음이에요. 이 내용으로 철저하게 세뇌를 받았기 때문에 이단을 나오기가 어렵고요, 이단을 나왔다고 해도 정통교회에 적응을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들은 이단을 나온 후 동일한 ‘자극’(이곳이 진리다, 정통교회 타락했다)을 주는 또 다른 이단에 쉽게 빠지는 겁니다.”

▲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박형택 목사

“오죽했으면 11개 교단 이대위 관계자들이 나섰겠는가?”
이단대처사역과 관련 세이연 대표회장으로서 박형택 목사의 바람은 무엇일까. 그는 세이연은 정치적 영향에서 자유로운, 순수한 이단연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박 목사는 “정치적 영향을 받지 않는 순수한 이단 연구를 통해 공신력 있는 이단 연구·규정·대처 활동을 하겠다”며 “누가 보더라도 인정할 수 있는 신뢰도 높은 이단연구 보고서를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수년전부터 정치적 힘과 영향에 의해 이단을 연구하기 어려운 대상이 있었던 게 사실이라며 그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결성된 것이 세이연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한기총의 이단대처 사역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문제점을 짚어냈다. 박 목사는 “현재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이단을 연구하거나 대처할 수 있는 상황이 못 된다”며 “오죽했으면 11개 교단 이대위 관계자들이 한기총의 작금의 이단대처 자세를 비난하고 나섰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한기총이 이단문제와 관련 대처능력을 상실한 이유에 대해 박 목사는 “이단대처를 위해 가장 먼저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를 구성해야 하는데 이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며 “게다가 한기총 대표회장 등 핵심 인사들이 한기총 가맹교단에서 문제시한 장재형 목사 등과 관계를 맺는 상태에서 제대로 된 이단대처는 나올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박 목사는 “정말 심각하게 연구해야 할 이단 문제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오히려 이단연구가의 사상을 연구하겠다는 것이 현재 한기총이다”고 비판했다.

그는 “한기총이 이단대처를 하기보다 오히려 이단을 해제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며 “가장 먼저 다락방을 영입한 개혁 교단의 회원자격을 인정한 문제를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다”고 지적했다. 박 목사는 “개혁 교단이 두 개로 나뉘어졌는데 90%에 해당하는 교단은 인정하지 하고 한국교회가 이단시한 다락방을 받아들인 교단은 회원자격을 준 것이 한기총이다”며 “다락방+개혁측의 회원자격을 박탈하고 제명하는 것이 순리다”고 강조했다.

 

▲ 부천의 한 교회에서 특강을 진행하는 박형택 목사


그는 세이연 대표회장의 할 일에 대해 “대표회장은 총알 받이다”며 “이단대처사역 때문에 많은 공격을 받을 텐데 그 때 ‘내가 먼저 죽겠다’는 마음으로 일하겠다”고 말했다. 박 목사는 이단 탈퇴자들에 대해서는 한국교회가 책임지고 후속 조치를 할 수 있는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박 목사의 기도 제목이기도 하다. 그에게 물었다. 이단문제는 예방이 최선이라는 데 어떻게 하면 성도들이 이단에 빠지지 않도록, 정통교회에서 건전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까? 박 목사는 기자(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도들이 이단에 대해서 너무 몰라요. 성경에 대해서도 무지해요. 체험 위주의 신앙생활과 감성을 자극하는 신앙생활에 익숙해졌어요. 그러다가 정통 기독교 교리의 중요성을 놓친 결과일지도 몰라요. 신앙의 선배들이 2천년 동안 지켜온 정통 기독교교리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 바탕위에서 신앙생활 하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를 마음에 새기셨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적어도 평생 이단에 빠지지 않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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