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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십자가 사건’ 최초 목격자의 종교적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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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십자가 사건’ 최초 목격자의 종교적 실체
  • 정윤석
  • 승인 2011.05.17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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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중앙교회(이재록) 부목사 출신 주요한 씨 2시간30분 직격 인터뷰

신화사상·환생설 주장…“‘그리스도 주요한’ 이렇게 말해도 된다”

주요한 씨(본명 주현수)가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경북 문경에서 발생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재현한 듯한 시신 사건(문경 십자가 사건)의 최초 목격자이기 때문이다. 언론에서 그는 ‘전직목사’로 소개됐다. 한국교회는 그가 과연 어떤 교단·교회에서 교역자 생활을 한 사람인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기자(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는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2011년 5월 11일 문경을 찾았다.

그의 거처는 경북 문경시 궁기 2리다.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문경새재IC를 나와 20km 정도를 더 달려야 닿는 곳이다. 궁기2리까지 가는 길은 썩 좋은 편이 아니다. 외길 차도다. 길가에는 그 흔한 식당 하나 보이질 않는다.

산을 몇 개 넘고 거친 강물을 건너 작은 마을이 형성된 농암면을 지나서 차 하나가 간신히 달릴 수 있는 도로로 우회전을 했다. 그 길을 타고 다시 2km 이상을 올라가야 한다. 10여 가구가 겨우 있을 정도로 인적이 드문 장소에 그의 거처가 있다.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

 

▲ 문경시 농암면에서 주 씨의 거처까지 가는 길
▲ 궁기2리에 있는 주 씨의 거처

집 앞에는 알래스카 맬라뮤트 2마리가 있다. 주 씨는 가족들과 떨어져서 혼자 기거하고 있다. 주 씨는 수수한 황토 빛 상하의를 입고 기자를 맞았다. 그의 방안에 처음 들어갔을 때 컴퓨터 화면에는 붓다의 좌상과 같은 형상이 보였다.

중앙의 거실 옆에는 작은 평방이 있다. 그 평방은 사찰의 법당처럼 고요했다. 주 씨는 그 자리에서 2시간 30여 분간 최근 일어난 문경 십자가 사건, 한국교회가 이단 규정한 만민중앙교회 부목사 출신이라는 전력, 입다의 딸이 마리아로 환생했다는 주장과 사람이 그리스도가 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담담히 설명했다. 인터뷰 중간 중간 방송·신문사 기자들은 물론 경찰서에서 쉬지 않고 전화가 걸려 왔다. 인터뷰가 도중에 중단되기도 했다.

 

▲ 법당처럼 고요한 주 씨의 게스트 룸
▲ 주 씨 사이트 중에 올라 있는 좌상

‘문경 십자가 사건’에 대해 그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가장 기자의 관심을 끄는 대목은 자살한 사람에 대한 주 씨의 해석이었다. 기자를 비롯한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문경 십자가 사건에 대해 ‘자살’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정신과는 하등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본다. 아니 오히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를 훼손하는 매우 불미스런 사건으로 본다. 그러나 주 씨는 달랐다.

그의 관심은 자살자의 고통을 넘어선 정신 세계에 꽂혀 있었다. 정말 자살이 맞다면, 신체의 특정 부위를 수십차례에 걸쳐 때리고, 드릴로 손을 뚫고, 발에 못을 박고, 칼로 자신을 찌르는 처절한 고통을 겪으며 그 행위를 했어야 한다. 자살자가 그런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그것을 중단하지 않고 실행했다는 의미인데 주 씨는 그것을 할 수 있었던 자살자의 마음, 정신의 세계를 알고 싶어서 미치겠다는 것이다. 주 씨는 자살자의 그 정신세계가 그리스도의 의식의 세계와 맞닿아 있는 것처럼 설명했다. 물론 노골적으로 자살자의 의식이 그리스도의 의식이나 정신이라고는 단정하지는 않으면서도 말이다.

주 씨는 “그(십자가에서 자살한 사람)가 뛰어 넘은 고통이나, 예수가 뛰어 넘은 고통이나 뭐가 다를 게 있느냐는 말이다”며 “예수도 타인에 의해서 한 것 같지만, 안 할 수 있지만 스스로 맡기고 경험하고 스스로 뛰어 넘어서 부활에 참예한 것이다”고 말했다. 자살한 사람의 죽음에 대해 필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모습이었다.

 

▲ 주 씨가 촬영한 십자가 사건 목격 사진

주 씨는 자신의 출신과 관련 ‘만민중앙교회’이란 것을 숨기지 않았다. 이미 기자는 그의 출신과 관련한 정보들을 모두 수집해 놓은 상태였다. 만민중앙교회 담임 이재록 씨의 조카(주 씨는 이재록 씨 누나의 아들이고 주 씨의 형과 동생은 현재 만민중앙교회 교역자다)라는 것, 그곳에서 부목사 생활을 했고 중국 선교사로 파송된 것, 그리고 그곳을 탈퇴해서 한정애 전도사(만민중앙교회 개척 멤버)와 시해선교회를 1999년 개척한 것 등이다. 이에 대해서 주 씨는 모두 스스럼없이 인정했다.

 

▲ 주 씨가 1999년 담임으로 있던 시해선교회

그러나 그것뿐이었다. 기자에게 숨기지 않고 말할 뿐 주 씨는 기자와 인터뷰가 끝난 후에도 2번 더 전화를 했다. 그 때마다 빠지지 않고 당부했다. 자신의 과거의 전력과 관련해선 절대로 언급하지 말아달라는 것이었다. 때론 신신당부였고 때론 경고였다. 그럼에도 기자가 그의 전력에 대해 기사화하는 것은 문경 십자가 사건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는 주 씨가 ‘전직 목사’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직 목사라고 소개되면서도 그가 어떤 교단·교파 소속이었는지 어떤 교회에서 목회를 했다는 것인지는 알려지지 않아 마치 정통교회에서 목회를 한 사람처럼 오인되고 있다. 그에 대한 바른 정보가 필요한 실정이다.

주 씨는 한국교회가 이단으로 규정한 만민중앙교회 출신으로서 1982년 설립시부터 1998년까지 활동했다. 그러나 1999년경 탈퇴해서 현재는, 그의 주장에 따르면 만민중앙교회와는 아무런 관련 없는 사람, 즉 양봉업자가 된 것이다.

만민중앙교회 출신 주 씨의 사상은 ‘신화사상’, ‘환생사상’, ‘예수와 그리스도가 다르다’는 내용으로 요약된다. 주 씨는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의식, 자아를 뛰어 넘어 또다른 자리에 도달한 사람을 그리스도라고 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주 씨는 자신의 실명을 넣어 ‘그리스도 주요한’ 또는 ‘주요한 그리스도’ 이렇게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사람이 그리스도가 될 수 있다는 전형적인 신화(神化)사상이었다.

환생설도 황당하다. 그는 자신의 사이트에 ‘사사 입다의 딸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입다의 딸은 신약에 메시아를 잉태할 태인 마리아로 환생한다”, “성모 마리아는 입다의 딸이 윤회 환생한 깨끗한 여인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이 세상에 다시 윤회하거나 환생할 필요가 없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수만번이고 이 땅에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 주 씨의 환생 사상이다. 그는 이 사상에 대해 기독교인들이 인정하지 않을 뿐 유대인들은 물론 인도, 중국 등 고대부터 믿어왔다고 주장했다.

만민중앙교회 출신으로서 ‘온 영을 이루라’, ‘완전 성결에 이르라’는 신조를 따라 끊임없이 죄 문제를 갖고 고민했던 사람, 결국 그 자아를 처리하는 방법으로 불교적 선수행과 명상을 끌어 들여 결국 자아를 처리하며 죄의 자리에서 벗어나 또다른 자리에 도달했다는 사람이 주 씨다.

 

▲ 1993년 중국 선교사로 파송된 주요한 씨


 

▲ 성모 마리아는 입다의 딸이 환생한 것이라는 주 씨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을 요약·정리한 것이다. 그와의 일문일답은 5월 11일 진행된 주 씨와의 인터뷰와 그의 인터넷 사이트 ‘길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를 일부 참고해서 작성했다. 우려스러운 것은 그의 인터넷 사이트 방문자가 하루 평균 2천명 정도가 된다는 것이다. 문경 십자가 사건이 발생했을 때는 1만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그가 문경의 시골에 거처를 정하고 있지만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인터뷰 기사이지만 주 씨를 촬영한 사진은 없다. 그는 사진 촬영을 완강히 거절했다.

십자가 사건에 대해

- 주변에서 많은(문경 십자가 사건의 자살과 직간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겠느냐는) 의혹을 갖고 있다. 그에 대한 입장을 말해 달라.
△그건 내가 풀어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의심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알아서 풀어야 할 문제다. 구체적인 것은 내 사이트(주 씨가 개설한 ‘길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란 사이트를 의미한다)를 열어 놨으니까 그것을 읽어보면 알 것이다(주 씨는 이 사이트에 문경 십자가 사건과 관련한 정황을 자세히 기록해 놨다). 타블로 사건도 있었잖은가? 아무리 진실을 설명해도 안 믿으려는 사람은 믿지 않는다. 뭔가 설명하면 이런 이유를 달고, 저런 설명을 하면 그에 대한 이유를 또 단다.

- 처음 십자가 사건을 목격할 때부터 자살로 생각했나?
△아니다. (십자가 사건을 처음 발견하면서)그것이 사람이라는 것이 안 믿어지니까 이쪽, 저쪽에서 살펴보고 그의 얼굴과 눈을 쳐다보며 정말 사람인지를 확인하려 했다. 얼굴과 반쯤 뜨인 눈을 보고 진정 사람이라는 것이 확신이 드는 순간 이 사람을 이렇게 만든 누군가가 주변에서 우리가(십자가 사건을 목격한 사람은 주 씨 외에 한 명이 더 있었다. 그러나 또 다른 목격자 김 모 씨는 사건 발생 후 중국 출장을 간 상태라고 한다. 그래서 부득이 주 씨만이 언론에 오르내리게 됐다) 올라오는 것을 알고 숨어 있다가 어디선가 달려들 것만 같은 생각이 드는 순간 그제서야 두려움이 밀려왔었다.

그리고 신고를 하고 파출소에서 기다리며 경찰들과 올라가는 동안 ‘왜 누가 하필 예수의 죽음의 상징인 십자가에 그를 죽였을까?’ 생각했다. 그 의문이 가득찬 상태에서 현장을 조사하는 과정을 보고 죽음의 순서를 기록한 메모지를 보고 자기가 자기를 스스로 매달았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을 뿐이다.

- 경찰도 ‘문경 십자가 사건’에 대해 잠정적으로 자살로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자살이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설령 자살을 했다 해도 누군가 도와 주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혼자서 발에 못을 박고 드릴로 손을 뚫고 할 수 있느냐 라는 것이다. 누군가 도와 주지 않고서는 자살이 불가능하지 않는가?

△사람들이 의심하는 것은 이해한다. 언제 이런 유사한 사건이 있었겠는가? 십자가를 흉내내서 사람이 죽었다! 십자가에서 예수의 고통을 재현했다. 이전에 이렇게 죽은 사례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런 사건을 내가 처음으로 발견했다. 그런데 그 죽은 사람이 내가 개설한 사이트의 회원이다. 그리고 그가 죽은 장소가 우리 집 인근이다. 사람들이 의심을 하지 않을 래야 안할 수가 없는 현실을 이해한다. 내가 아무리 손사레를 치고 부인해도 그것을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인 것을 잘 안다.

그러나 경찰이 바보인가? 경찰은 자살이든, 타살이든 그와 관련한 데이터들이 엄청나게 축적돼 있다. 나는 사건 현장을 처음으로 발견한 이후 경찰에 진술하며 조사를 받았고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그 후에는 다시 경찰 조사를 받은 사례가 없다. 그 만큼 이 사건은 타살보다는 자살로 볼 수밖에 없는 경찰의 확신이 있는 상황이란 의미다. 조금이라도 의심이 됐다면 나를 한번만 조사했겠는가? 나는 십자가 사건을 발견한 날, 그 장소에 내가 가고 싶어서 간 것도 아니다. 김 모 씨라는 양봉업자가 양봉 문제로 채석장을 가자고 해서 함께 간 것이다. 그 바람에 본의 아니게 사건의 목격자가 돼서 경찰에 신고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의심하겠다고 한다면 그것을 내가 어떻게 말리겠는가?

- 십자가에 달린 사람과는 어떤 관계인가? 그리고 직접적으로 자살을 도왔다 이런 차원이 아니라 사상적으로 그 사람에게 영향을 줬기 때문에 책임이 있다는 시각도 있다.
△십자가에 달린 그 사람이 ‘그리스도의 의식’과 관련한 내 글을 읽고 3년전(2008년) 쯤 가을에 나를 찾아왔다. 그가 나에게 자신 스스로가 ‘예수가 아닌가’라고 하더라. 그 말 속에 자기 자신의 육체가 예수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주장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정신, 의식에 관한 부분이었는데···. 그렇게 묻기에 ‘그렇지가 않다. 인간 누구누구가 예수가 될 수 없다’고 답해줬다. 나의 신앙관과는 달라서 더 이상 말을 하지 말라고 잘랐다.

그리고 주변 산세와 광산에 대해, 내가 하고 있는 양봉 일과 관련, 벌의 습성에 대해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고 헤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 후로는 교제한 적도 없고 만난 적도 없다. 다만 그 스스로가 내 사이트에 와서 글을 읽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와 어떤 동질성이 있었다면 그가 나를 만나고 교제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그가 내 글을 얼마나 읽었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그 사람에 대해 지금 궁금하다.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다. 그 사람이 자신의 고통을 뛰어넘어서 그렇게 행할 수 있게 한 그 무엇이 궁금하다. 십자가 사건이 발생한 그곳은 바람이 많이 불고 추운 곳이다. 그런데도 그 고통을 뛰어넘고 그렇게 한 이유가 뭔지 알고 싶다.

- 하루에 2천명 정도가 사이트에 들어오는 거 같던데 지금은 사이트 방문자가 많이 늘었나?

△(문경 십자가 사건에 대해)처음 보도됐을 때 일만명까지 늘었다가 지금은 원래 숫자대로 들어오고 있다.

주 씨의 전력에 대해

- 기자(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는 선생의 출신에 대해 대략적으로 알고 있다(주 씨는 이재록 씨의 만민중앙교회 부목사 출신이다. 그리고 이재록 씨의 조카이기도 하다. 박스 기사 참고).

△형과 동생이 만민중앙교회에 교역자로 있다. 내가 만일 지금까지 만민중앙교회에 있었다면 나도 제 2인자로서 살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다 버리고 나온 사람이다. 그 때부터 나와 만민중앙교회는 맞지 않았다. 나는 내가 가야 할 길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이 자리에 온 것은 ‘만민중앙교회’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민중앙교회에서는 ‘온 영을 이루라’, ‘완전성결하라’고 많이 강조했다. 나는 정말 성결된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러나 노력하면 할수록, 기도하면 할수록 행위적으로는 거룩해지는 것 같은데 실상 내 마음에는 사랑이 없고 이중적인 생활을 하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나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음에 끊이지 않는 혈기와 분노와 죄를 품고 있는 이런 ‘나’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야한 영화 포스터가 있으면 눈이 그쪽으로 저절로 돌아갔다. 여성이 지나가도 마찬가지였다. 운전을 하면서 화가 나면 분노가 치밀어 올라 화를 다스릴 수가 없었다. 나는 오직 성결을 위해 어떻게 하면 나를 버릴까 하는 길을 찾아다녔다. 그래도 ‘나’란 존재가 늘 시퍼렇게 살아 있었다. 그 견딜 수 없는 나, 거짓된 나에게서 벗어나고 어떻게 하면 도망가느냐 이 말이다.

- 그 (나를 버리는)방법론으로서 불교에서 하는 선수행 등 다양한 방법을 수행하셨나?
△방법이라는 것은 원래부터 다 있는 것이다. 불교에선 선수행이고 교회에선 묵상이다. 좋은 것을 먼저 불교에서 썼을 뿐이다. 나는 항상 아침에 외쳐서 기도를 한다. 테크닉은 여러 가지다. 내가 만민중앙교회에 있을 때 안 믿어지는 게 있으면 ‘의심을 갖다 준 마귀야 물러가라, 물러가라!’고 외쳤다. 그리고 산에서 기도했다. ‘믿씁니다!’ 안 믿어지니까 믿습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나의 내면에 안 믿어지는 뭔가가 불끈 올라왔다. 그것을 밀쳐내기 위해 안 믿어지는데도 ‘주여, 믿습니다! 믿습니다!’하고 외쳤다. 그러던 어느날 하나님께 고백했다. ‘하나님 저, 아닙니다!’ 눈물이 쏟아졌다. 그리고 믿음을 구했다. 믿음이 있는 줄 아는 사람은 믿음을 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때부터 믿음을 구하며 처절한 길을 걸어왔다.

이러니 만민중앙교회에서 눈에 가시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중국선교(주 씨는 만민중앙교회에서 1993년 중국선교사로 파송됐다)를 갔는데 말이 선교이지 사실상 유배된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만민중앙교회를 탈퇴한 후 한정애 전도사와 60~70여 명의 신도들과 함께 1999년 시해선교회를 개척해서 담임으로 있다가 2004년 가을 쯤 담임 자리를 내놓았다.

다른 목회자들처럼 ‘헌금해라, 전도해라, 그러면 축복받는다’는 설교를 하지 않으니 신도들이 떨어져 나갔고 헌금도 걷히지 않았다. 결국 2005년도에 문경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지금은 양봉업자로 살고 있다.

- 예전에 고민하고 갈등하고 번뇌했던 (죄를 짓는)자아의 문제가 지금은 처리가 됐나?

△그렇다. 지금은 안다.

- 그건 안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잖는가?

△왜 안다고 하는가 하면 ‘나’라고 하는 자아를 벗어나 보니까 알겠다는 것이다. 이건 말로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깨닫는 것도 아니다. 깨달아서 알 수 있다면 깨닫는 자아는 뭔가? 그것도 ‘나’라는 존재가 시퍼렇게 살아 있는 거 아닌가. 전체적으로 보면 전혀 내가 아닌 ‘어떤 것’으로 옮겨져야 한다. 그 어떤 것! 규정하고 말로 되지 않는 그것으로 옮겨야 한다.

- 무척 추상적이다. 예전에는 여자가 지나가면 쳐다봤다. 운전하다가 화가 나면 욕을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게 없어졌다는 건가?

△그렇다.

- 그것을 넘어섰는가, 초월한 건가?

△초월이 아니라 넘어서면 그 어떤 자리가 있다는 거다.

- 그런가? 그러면 그 자리까지 도달했다는 건가?
△그 어떤 자리에서 모든 사물을 본다. 그 어떤 자리에서 나를 본다. 그 어떤 자리에서 말을 한다. 전 우주적 차원의 어떤 자리가 있다. 말로 하기 어려운 그 자리가 있다. 말로 할 수 없기 때문에 가르칠 수도 없고 글로 표현할 수도 없다. 사람 모아서 할 수도 없는 거다.

- 그러면 일반적 관점의 ‘죄’의 문제를 벗어났는가?
△그렇다. 죄라고 하는 것은 죄에 대한 두려움이다. 죄라는 것은 죄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으로 존재한다. 두려움은 여러 가지다. 인간이, 나라는 자리가 있다면 나가 아닌 그 어떤 자리에서의 의식이다. 나는 그것을 그리스도의 의식이라고 말한다.

십자가에서 예수가 죽는다. 죽는다면 죽음에 대한 두려운 의식이 안에 있다. 누구든 있다. 그것을 극복하고 내어 맡긴다. 두려운 의식을 넘어서서 예수가 죽음의 자리로 간다. 그 고통을 다 느끼면서도 무엇인가 있기에 그 공포와 두려움을 이겨냈다. 그것이 무엇이기에? 부활이요, 생명이라는 보상이다. 그 부활과 생명을 믿는 어떤 의식이 있기에 현재 오는 고통을 이겨낸 것이다. 넘기는 것이다. ··· 그래서 그 길을 가셨다. 그것을 뛰어넘어 믿는 의식이 그리스도의 의식이다 이 말이다.

십자가에 달린 그 사람이 이런 그리스도의 의식과 관련한 글을 읽고 나에게 왔던 것이다. 물론 그는 자기 자신의 육체가 예수라고 말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내가 말한 것은 그리스도의 정신, 의식에 관한 부분이라고 설명해줬다. 인간 누구누구가 예수가 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에 대해 설명한다면 그리스도의 의식, 그리스도의 영 이런 것을 두고 그리스도 OOO(주 씨는 그리스도 뒤에 실제 사람 이름을 붙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스도 누구누구 이렇게 말할 수는 있다 이 말이다.

‘신화사상’, ‘환생설’ 등 사상에 대해

- 그리스도의 의식과 그 자리까지 간 사람을 그리스도 OOO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 그러나 인간 누구누구의 육체가 예수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당시 그 사람이 자신의 육체가 예수라고 하는 것 같아서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라고 물었으면 좋았겠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을 묻지 않은 게 아쉽다. 지금 그를 십자가에 달리게 한 근원적 의식이 뭔지 궁금하다.

2008년도에 그가 나를 찾아왔을 때 그는 자신의 생각에 대한 동의를 구하러 왔다. 그러나 대화를 하다가 동의가 되지 않아서 계속적으로 교류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 사람과의 만남은 끝이 났다. 그 후 대화를 하지 않았다. 물론 자기 나름대로 내가 개설한 사이트에 들어와 여러 가지 글들을 봤을 수는 있다. 결과적으로 그 사람이 십자가에 달릴 때 환경이 열악했을 것이다. 4월이면 그 자리는 바람도 많이 불고 춥다. 그곳에 가서 텐트를 치고 잠을 잤을 것이다. 도중에 하려고 하다가 고민도 많이 하고 주저했을 것이다. 그런데 자기가 매달릴 십자가를 만들고 끈을 묶고 했을 것이다. 많이 망설였을 것이다. 그런 죽음과 같은 고통이 있었는데도 중단하지 않고 그것을 끝까지 실행하려고 했던 그 무엇, 그게 뭐냐 이 말이다. 나는 그 마음을 알고 싶다. 알고 싶어서 미치겠다.

- 그게 그리스도의 의식이라는 건가?

△그게 그리스도의 의식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이 가진 그게 뭐냐 이 말이다. 겪어 보지도, 대화를 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손에 구멍을 뚫고 옆구리를 찔러서 피가 다 쏟아지고 그런 멀쩡한 정신이 있는 상태에서 예수가 부활에 대한 보상을 바랐던 것처럼 그는 신체 특정 부위를 때리고 예수와 똑같은 것을 경험하면서 나갔던 그 알 수 없는 그런 고통을 참으며 했을 것이다. 내가 궁금한 것은 아픔과 고통을 참고 갔던 그 의식의 세계다.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을 알고 싶다. 정황을 나도 정말 알고 싶다.

우리가 체험하지 못하고 알 수 없는 그 고통을 생각해 보라. 그가 뛰어 넘은 고통이나, 예수가 뛰어 넘은 고통이나 뭐가 다를 게 있느냐는 말이다. 예수도 타인에 의해서 한 것 같지만, 안 할 수 있지만 스스로 맡기고 경험하고 스스로 뛰어 넘어서 부활에 참예한 것이다.

- 십자가에서 사망한 사람이 자기가 ‘예수가 아닌가 싶다’고 말한 것과 유사하게 선생을 보면서 혹시 ‘당신이 그리스도가 아니십니까’라고 생각하거나 물어온 사람은 없는가?

△그리스도라고 하면 아까 말한 그런 기준(그리스도의 정신, 의식, 마음을 온전히 가진 사람)에서의 그리스도다. 나만 그렇고 다른 사람은 아니라는 게 아니다.

-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 주요한 이렇게 말할 수 있나?
△그렇다. 그리스도다라 할 수 있다.

- 이런 주장이 공개가 되면 바로 이단시비가 나올만한 내용이다. 어떻게 생각하나?
△이단이라고 하든, 삼단이라고 하든 나와는 상관이 없다. 기독교계는 자신들의 교리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이단이라고 하지 않는가? 이단을 제일 많이 만들어낸 종교가 기독교다. 나는 기독교 교인이 아니다. 나는 기독교와 상관이 없다. 그러나 기독인은 된다는 말이다.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어떤 것은 되지만 교인은 아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당신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다 이 말이다. 자기 자신들이나 바로 세워라. 남 정죄하지 말고.

- 사이트에 ‘사사 입다의 딸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글에서 ‘제물로 바쳐진 사사 입다의 딸이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로 환생했다’고 써놨더라. 그에 대해 설명해 달라.
△예수께서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었을 때 사람들이 ‘더러는 엘리야, 세례요한이라고 하더이다’고 답한다. 죽은 사람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 당시 유대인들도 죽은 사람이 환생한다는 환생설을 믿고 있었다. 인도, 중국 등 고대 종교에도 환생설이 존재한다. 기독교인들이 인정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 사람들과 모임을 갖거나 집회를 하지는 않는가?
△나 스스로 모임 갖는 것도 원치 않고 조직도 필요없다. 개인이 알아서 자기 길을 가면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집단과 세력을 만들 생각이 없다. 그러나 이곳을 찾아오고 싶다면 누구에게나 개방한다. 이곳에서 바람도 쐬고 산도 구경하자.

- 사진 좀 찍자.
△교계를 이미 떠난 사람이다. 사진 찍어서 무엇 하겠는가? 그리고 나의 과거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말아달라. 십자가 사건과 관련된 것만 다뤘으면 좋겠다(이후 주 씨는 2회 정도 기자에게 더 전화를 했다. 그리고 그 때마다 자신과 만민중앙교회와의 관계성을 언급하지 말아달라고 강조했다).

- 참고로 하겠다. 인터뷰에 응해줘서 고맙다.

 

만민중앙교회 부목사·중국선교사 출신 주요한 씨

문경 십자가 사건의 최초 목격자로서 주목을 받으며 전직목사(현 양봉업자)로 알려진 주요한 씨(본명 주현수)는 한국교회가 이단으로 규정한 이재록 씨의 만민중앙교회 출신이다.

그 동안 대다수의 언론은 문경 십자가 사건을 처음으로 발견한 주 씨의 직업을 ‘전직목사’로 기재해왔다. 그러나 그가 과연 어떤 교단·교회에서 교역자 생활을 했다는 것인지는 아무도 확인하지 못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그의 전력을 파악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를 기자(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가 입수했다.

이재록 씨의 만민중앙교회는 1999년 5월 일부 신도들이 MBC 방송사에 난입한 사건으로 세간의 화제가 됐었다. 당시 MBC PD수첩이 ‘목자님, 우리 목자님’이란 제목으로 이재록 씨와 관련한 문제점을 보도하려 하자 일부 신도들이 국가 기간시설인 방송사에 난입하여 방송을 중단시키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그만큼 1999년을 전후해서 만민중앙교회는 교회 안팎으로 큰 혼란을 겪던 상황이었다.

이런 혼란의 와중에 주요한 씨는 한정애 전도사 등 일부 교회 설립 멤버들과 함께 만민중앙교회를 탈퇴하고 1999년 2월에 교회를 하나 개척한다. 교회 명칭이 ‘시해선 교회’였다. 주 씨가 현재 ‘길을 찾는 사람들’이라는 사이트를 개설하고 그곳에 글을 쓰면서 사용하는 대화명 역시 ‘시해선’(屍解仙)으로서 동일한 명칭이다. 시해선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주 씨가 교회를 개척하면서 사용했던 명칭으로서 시체에서 해방돼 신선이 된다는 도교적 의미가 있는 단어로 해석된다.

만민중앙교회 요람에도 주 씨와 관련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다. 기자가 확보한 만민중앙교회 1997년, 1998년 요람에 따르면 그는 만민중앙교회 전도사 생활을 하던 중 1988년 10월에 목사 안수를 받고 이듬해 4월에 부목사로 취임한다. 1993년 4월에 중국 선교사로 파송받았고 1998년까지 중국으로 파송된 선교사로 소개돼 있다. 요람을 토대로 정리하면 적어도 15년 이상을 만민중앙교회에서 교역자 생활을 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만민중앙교회의 핵심 멤버 중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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