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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체험, 그것이 진리인가?
정윤석  |  unique44@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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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0.04.14  08: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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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이 여탕에 들어갔다는 체험을 기록한 블로그

그녀는 늘 하늘을 보고 외쳤다. “아버지~.” 그러면 곧바로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것이 떨어지는 듯했다. “OO원장아!” 그녀는 스스로 그렇게 말하고 사람들에게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때로 집회를 하면서 참석자들에게 찬양을 시키다가 점수를 매기기도 했다. “50점!!··· 벌서라고 하시네!” 그러면 참석자들(그들 대부분이 목회자였다)은 군말없이 집회 장소 한켠으로 물러가 두 손을 들고 무릎을 꿇고 벌을 섰다.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이 그렇게 명령했다는 것이다. 그 명령에 불순종하면 당장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처럼 여겨지는 분위기였다.

영성 훈련을 한다는 사람 중에 음성뿐만 아니라 직접적으로 예수님이 자신의 속으로 임재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장로교단에 소속했다가 2008년 연말 탈퇴한 한 목회자는 자신의 체험담을 블로그에 올리기도 했다. 자신에게 임재한 예수님·성령님과 함께 목욕탕에 갔다는 것이다. 음성이 들리는 것을 넘어 영으로 옆에 와 계시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체험의 가장 황당한 대목은 ‘목욕탕 사건’이다. 예수님과 성령님과 이 목회자의 가족들이 함께 목욕탕에 갔는데 예수님이 목욕탕 앞에서 ‘난 여탕이 좋아’라며 여탕으로 들어가고 성령님은 남탕으로 들어가셨다고 한다.

이외에도 예수님이 장미꽃보다 더 밝은 빨간 색의 스포츠카를 타고 카레이서 복장을 하고 자신에게 왔다고 주장하는 사람, 하나님이 자신에게 직접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의 98%를 입혀 줬다고 주장하는 사람 등등 영적 체험을 했다는 사람들은 무척이나 많고 그 체험의 종류도 천태만상이다.

 

   
▲ 예수님이 빨간 스포츠카를 타고 나타났다는 어떤 신도의 체험

중요한 것은 이런 소위 영적 체험을 한다는 사람들의 체험에 대한 의식이다. 기자(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가 만난 사람들은 그 대부분이 “갈 데까지 가보자”고 하는 사람들이었다. 교인들이 천국을 오간다고 하고 예수님이 빨간 색 스포츠카를 타고 나타나셨다는 등의 체험을 하자 K목사는 “한번, 체험의 깊은 바다로 들어가자고 결단하게 됐다”며 “하나님이 체험케 해주시는 데까지, 즉 갈 데까지 가보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영적 체험에 대한 이와 같은 태도는 기자가 최근에 취재한 ‘로또영성’ 조명호 목사(대구 광음교회)에게서도 발견된다.

조 목사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창조주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교인들에게 임재하는 소위 ‘내주의 역사’라는 게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내가 이것을 포기할 수 없다. ‘2011년 얘기하셨으니까 2011년 여정까지는 마음대로 해보자’고 말했다”고 한다. 즉 체험되는 것을 모두 수용하고 체험할 수 있는 데까지는 모두 해 보겠다는 것이다. 칼빈은 ‘성경이 가는데 까지 가고 멈추는 데서 멈추라’고 말했다고 한다. 말씀에 살고 말씀에 죽겠다는 너무도 겸허한 자세였다. 그런데 영적 체험을 한다는 사람들은 말씀이 아니라 ‘체험할 수 있는데까지 하고 그 체험이 멈추는 데서 멈추겠다’는 자세다. 이들에게서 적절한 영적 분별은 뒷전인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영들을 다 믿지 말고 분별하라”
기독교를 체험의 종교라고 한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어서다. 그러나 그 체험에도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오덕교 교수(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는 ‘조나단 에드워즈 입장에서 본 빈야드운동’(교회와신앙 1996년 3월 1일자)이란 글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인간은 죄 아래 태어나므로 죄의 영향으로 하나님의 뜻보다는 사단의 지배를 받을 확률이 높다. 죄 없던 아담이 사단의 꼬임에 빠졌다면, 죄 아래 태어난 인간이 넘어질 수 있다는 것은 부언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체험을 강조하는 주관주의는 부패한 죄성의 영향을 받는 자율주의로 나가게 되고 자율주의는 극단적으로 변질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하고 있다.”

죄 아래 있는 인간의 체험은 영적체험조차도 부패한 죄성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영적체험에는 반드시 그에 대한 성경적인 분별이 뒤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극단으로 갈 가능성이 커진다. 영적 체험을 한다는 사람들의 자세와는 사뭇 다른 주장이다. 그렇다면 성경은 뭐라고 말씀할까?

성경도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요일 4:1)고 말씀한다. “영을 다 믿지 말고”라는 말씀은 헬라어 ‘메 피스듀에테’로서 ‘진실한 것으로서 받아들이지 말라’는 의미이다. 모든 영을 대할 때에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잘 분별하여 받아들여야 함을 시사한다(후크마 주석).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저가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개역한글, 골 2:18).

“남들이 겸손과 천사 숭배를 주장하면서 여러분을 정죄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런 자는 자기가 본 환상에 도취되어 있고, 육신의 생각으로 까닭 없이 교만을 부립니다”(표준새번역, 골 2:18).

“겸손한 체하며 천사를 숭배하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환상을 보았다고도 하는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마십시오. 그들은 자신들의 인간적인 생각과 어리석은 교만으로 들떠 있으며”(쉬운성경 골 2:18).

“‘그 본 것을 의지하여’라고 번역된 바울의 말은 주후 최초 2~3세기 동안 유행했던 기술적 표현으로서 성전의 비문에 발견된 것이었다. 그 말의 의미는 ‘더 높은 영적 생활’로 들어가는 길을 가리킨다. ‘그 본 것을 의지한’ 자들은 ‘영적인 만남’을 통해 영지주의 혹은 신비종교를 특별히 체험한 자들이었다. 이 선생들은 특정하고도 높은 영적 생활을 누렸으면서도 실상은 죄악에 물든 그들의 마음 때문에 뚜렷한 이유도 없이 교만해지거나 헛된 과장을 일삼았다”(레날드 맥컬리·제람바즈, <인간 하나님의 형상>, IVP, 77페이지, 1992).

본 것을 의지하는 행위에 대해 성경은 ‘더 높은 단계로 가는 것’이라고 말씀하기 보다 주의하고 분별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씀한다.

 

   
▲ 2011년까지 영적체험의 여정을 가보겠다는 조명호 목사(대구 광음교회)

영적 체험을 했다는 사람들을 성경의 조명을 받아 분별해 보면 답이 어렵지 않게 나온다. 기자(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가 최근에 취재한 로또영성 조명호 목사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교회를 탈퇴한 사람들을 향한 ‘저주행위’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즉, 탈퇴자들의 영을 불러서 죽이고, 그 탈퇴자들 속에 귀신을 넣는 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이런 행위는 성경적 지지를 받을 수가 없는 일이다.

교인들이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체험을 했다는 K목사, 그 또한 천국에 들어가서 체험한 한가지가 있다. 천국에서 바울을 만났는데 그가 “본인이 감동을 받아 쓴 바울서신들보다 주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4복음서가 훨씬 더 유익하니 그 말씀들을 더 깊이 보라고 겸손하게 당부”했다는 것이다. 이 체험도 역시 말씀에 비춰보면 문제가 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17)고 말씀하기 때문이다. 성경에 어떤 게 더 유익하고 어떤 게 덜 유익하다는 말씀은 없다. 그렇다면 K목사의 영적 체험이 거짓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겠는가?

“성경의 유익을 일시적인 것으로 여기는 것이야말로 악마적인 광란이다”
영적으로 무척이나 혼탁한 시대다. 수많은 사람들이 특별한 영적 체험을 했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건전성 여부를 분별하는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꼭 필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영적 체험을 했다는 사람들은 자신을 신격화시키기도 하고 성경의 권위를 약화시키기도 한다. 예언을 해 놓고 자꾸 틀리니까 변명을 늘어 놓기도 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 키가 클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런데 안 크니까 ‘영적인 키를 의미하지 육적인 키가 아니다’고 하는 식이다. 누군가 죽을 병에 걸려서 병원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예언자가 “내가 보니 저 사람의 몸은 병상에 누워 있지만 영은 기뻐 뛰고 있다. 주님이 살려 주신다”고 예언했다. 그런데 산다던 그가 죽었다. 그러면 예언자는 “내가 언제 영적으로 산다고 했지 육적으로 산다고 했느냐”며 되잖은 변명을 늘어 놓는다. 영적체험과 금전을 연결시켜 어떻게든 추종자들의 금전적 헌신을 유도하기도 한다. 저주를 퍼붓고, 예를 들어 자식이 교통사고를 당할 운명이니 헌금 5천만원을 바치고 금식기도를 하라는 방식이다.

칼빈은 이미 500년 전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최근 경솔한 자들이 출현하여 주제넘는 자부심을 가지고 성령의 교사로서의 역할을 높임으로써 성경읽는 것을 무시하고 그들이 표현하는대로 ‘죽은, 그리고 죽이는 문자’만을 따르는 경건된 자들의 단순성을 비웃고 있다. 그러나 그 영을 받고 저들이 그렇게 높임을 받아서 성경의 교리를 유치하고 단순한 것으로 감히 멸시하고 있는 이 영은 도대체 어떠한 영인가를 그들에게 묻고 싶다. ··· 바울은 삼층천까지 올라갔다 왔지만(고후 12:2) 율법과 예언자들의 가르침에 의한 혜택을 여전히 받았다. 그는 뛰어난 교사 디모데에게 마찬가지로 성경을 읽는데 유의하라고 권면하였다(딤전 4:13). ··· 하나님의 자녀들을 궁극적인 목표로 인도하는 성경의 유익을 무상하거나 일시적인 것으로 여기는 것이야말로 어찌 악마적인 광란이 아니겠는가?”(<기독교강요>, 성문 刊, 177페이지, 1996).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사도들 속에 거하시고 말씀하시는 성경, 즉 그 성령의 신탁에 의하여 날마다 말씀을 듣도록 그들을 부르시는 성령 외에 다른 영은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위의 책, 183페이지).

어떤 영적 존재에 의한 새로운 가르침, 소위 계시를 받는다는 것, 그리고 계시를 통해 받은 것을 기록하면 먼 후대에 성경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런 주장을 받아들이는 순간 이미 그 사람은 ‘속은 것’이라는 결론이다.

< 기사 제공 © 교회와 신앙(www.amennew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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